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세 사람이 보수야권 대통령선거 구도의 고차방정식을 놓고 그리는 그림이 짝을 맞출 수 있을까?
윤 전 총장의 ‘X파일’ 의혹, 야권의 대안주자 출현 등 변수도 많아 세 사람의 이해관계에서 공통분모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부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9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선정국으로 접어들수록 윤 전 총장과 이 대표, 김 전 위원장 세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시선이 나온다.
실제 세 사람 사이 접촉면이 넓어질 조짐도 보인다.
이 대표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윤 전 총장과 6일 서울 서초동에서 단 둘이 만났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 퇴임 뒤 어떤 행보를 했는지 물어봤다”며 “윤 전 총장이 상식선에서 8월 말까지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 대표는 “윤 전 총장같이 야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 전 위원장에게 매달려야 한다”며 “김 전 위원장은 나중에 야권 후보가 선출되면 후보 옆자리에 있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영환 전 의원도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전날 윤 전 총장을 만난 사실을 알렸다. 김 전 의원은 줄곧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하다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을 거쳐 지난해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서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여·야 진영을 넘나들었던 4선 의원 출신 정치인이다.
김 전 의원은 “윤 전 총장에게 김 전 위원장을 만나는 일이 늦어진다고 했더니 윤 전 총장이 ‘먼저 만났어야 하는데 여러 사정이 겹쳤다’며 ‘곧 만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윤 전 총장은 현재 보수야권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이고 이 대표는 야권 대선판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제1야당 대표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미 수차례 선거에서 솜씨를 발휘한 노련한 ‘킹메이커’다.
그동안 세 사람이 서로 놓인 형편이 달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셋 모두 야권에 몸담고 있는 이상 대선 정국이 무르익을수록 접점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들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접점을 찾기는 의외로 어려울 수 있다.
이들의 1차적 관심사는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여부다. 윤 전 총장이 어떤 결정을 하는지에 따라 야권의 대선 판도는 크게 달라진다.
이 대표는 당대표로서 윤 전 총장의 입당이 가장 시급한 과제 가운데 하나다. 국민의힘을 보수야권 빅텐트로 만들어 모든 야권 대선주자가 당 안에서 경쟁하도록 만들고 흥행에 성공한다면 대표로서 큰 업적이 된다.
다만 이 대표에게 윤 전 총장은 유일한 대안이 아닌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윤 전 총장이 높은 대선주자 지지율을 유지하는 이상 소중한 카드인 것은 맞지만 윤 전 총장이 낙마하거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이 온다면 그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또 만약 윤 전 총장이 끝내 국민의힘 입당을 거부한다면 이 대표로서도 자기 당 후보를 밀며 윤 전 총장과 맞서야 한다.
당사자인 윤 전 총장은 입당을 놓고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다음 대선에서 야권 최종 후보가 된 뒤 본선에서도 승리하는 것 외에 다른 정치적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운 형편이라 입당 시점과 유·불리를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
최근 불거진 ‘X파일’ 논란으로 고민거리가 더 늘었다. 이미 장모의 법정구속, 부인의 부실 논문 의혹이 터져 나왔는데 앞으로 더 큰 문제들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에 입당한다면 당이 윤 전 총장의 방어막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이는 윤 전 총장이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가 됐을 때 성립되는 얘기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의혹이 거론되고 날 선 검증이 이뤄진다면 윤 전 총장은 더 곤란한 처지가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 대선경선 후보로 꼽히는 홍준표 의원은 7일 “한국의 대선후보 1,2위가 모두 무상 연애 스캔들, 쥴리 스캔들에 묶여 있다”며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 전 총장을 싸잡아 비판했다.
당내 검증이 더 매서울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전 위원장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다. 공식적 직책이 없어 되레 운신의 폭도 크다.
김 전 위원장과 가까운 이 대표가 국민의힘 당권을 잡았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 다시 일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김 전 위원장은 여전히 국민의힘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으로서는 서둘러 윤 전 총장과 손을 잡기보다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보다 최종적으로 야권 후보에 오른 사람을 도와주면 그만이다. 윤 전 총장은 여전히 유력한 대선주자이지만 X파일 논란으로 대표되는 각종 불안요인도 많다.
김 전 위원장은 8일 공개된 신동아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의 입당 뒤 경선 참여 여부를 놓고 “지지율을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다면 입당 없이 지금 상태로 가는 수밖에 없다”며 윤 전 총장이 당내 경선을 피해 11월 경 국민의힘 후보와 야권 단일화에 나설 수 있다고 봤다.
이 대표의 ‘8월 경선버스 탑승론’과는 결이 다른 시각이다.
김 전 위원장은 다른 야권 대선주자에 힘을 싣는 행보도 보였다.
그는 7일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지지 모임격인 ‘희망오름’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며 “대통령으로서 갖출 자질은 다 갖췄다”고 추켜세웠다. 김 전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윤 전 총장의 높은 지지율을 놓고 “지금 나타난 지지율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도 말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새로운 야권 대선주자의 거취 역시 세 사람의 관계설정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 전 원장은 윤 전 총장이 X파일 논란 등으로 도덕성에 흠집이 난 상황에서 도덕적 흠결 없는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최 전 원장은 부친상을 당해 상중에 있는데 이를 계기로 6·25 참전용사인 아버지 고 최영섭 예비역 대령과 얽힌 일화 등이 주목 받고 있다.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문상하며 자연스럽게 정치권과 접촉면도 넓어졌다.
최 전 원장이 국민의힘에 조만간 입당한다면 이 역시 윤 전 총장의 입당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안주자의 부각은 윤 전 총장에게는 경쟁자가 늘어난 것이지만 이 대표와 김 전 위원장에게는 손에 든 패가 다양해진 것이기도 하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