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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가운데)이 2011년 4월1일 열린 현대건설 사장단 및 임원진 만찬에 참석해 걸어가고 있다. <뉴시스> |
기아자동차의 이미지는 프로야구로 치면 현대자동차의 ‘1.5군’ 같다. 기아차는 현대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현대차가 글로벌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데 기아차가 프로야구 2군처럼 현대차의 배후지원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차는 기아차를 인수해 글로벌 자동차회사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국내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시너지를 확대해 글로벌시장에서 위상을 높였다. 기아차도 현대차를 ‘형’으로 만나 국내외 자동차 판매량 3천만대를 눈앞에 둘 정도로 성장했다. 부도직전에서 살아나 현대차에 버금가는 ‘아우’가 됐다.
그러나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기아차를 현대차의 쌍둥이 동생처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계속 간다면 기아차는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말을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한다. 이는 기아차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든다.
프로야구에서 1.5군은 존재하기 힘들다. 1군들과 경쟁을 할 실력이 안되니 1군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그렇다고 1군의 미래를 책임지는 2군의 역할을 하기에 너무 아까운 존재다.
기아차의 현재 존재가 딱 현대차의 1.5군처럼 자리잡고 있다. 정 회장이나 정 부회장은 기아차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인가?
◆ 기아차 저가브랜드 탈피 위해 안간힘
기아차는 전 세계 판매량 3천만 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아차는 지난달 말까지 총 2990만 대를 팔았다. 올해 기아차의 월평균 판매량은 26만 대 수준이다. 이런 추세라면 이달 안에 판매량 3천만 대를 돌파할 것이다. 지난 2월 미국 컨슈머리포트의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도 20위에 올라 현대차(19위)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기아차로서 놀라운 변신이다. 한때 부도직전까지 몰렸던 기아차의 모습은 기억조차 희미할 정도로 눈부신 성장이다.
그러나 기아차는 그동안 거둔 성과만큼이나 더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다. 바로 기아차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현대차와 차별성을 획득하는 일이다.
이순남 기아차 마케팅팀장(상무)은 최근 미국 자동차전문지와 인터뷰에서 “2018년까지 기아차를 폭스바겐이나 도요타같은 유명 브랜드로 키울 것”이라며 “K9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이라고 밝혔다.
기아차는 지난 3월 북미시장에 플래그십 세단 K9(현지명 K900)을 출시하면서 고급차시장 공략에 나섰다. 플래그십 자동차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최고급 차종을 말한다.
기아차는 지난해 상반기 K7 출시에 이어 올해 K9을 출시하면서 고급차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기아차는 기존 중소형차종과 함께 최고급모델을 출시하는 ‘투 트랙(Two-track) 전략’을 쓰고 있다. 이순남 상무는 “기아차가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기아차의 영역을 중소형차시장에서 고급차시장까지 넓히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아차의 브랜드 차별화가 절박한 과제라는 사실을 기아차 스스로도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아차는 일단 브랜드 고급화를 시도해 현대차의 그늘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을 세워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의 브랜드 가치가 예전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북미시장에서 기아차는 현대차의 저가 브랜드로 인식된다. 현대차보다 값이 싼 대신 품질이 떨어지는 차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012년 5월 “기아차는 높은 판매 신장률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의 동생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현대차보다 딜러 인센티브를 2배나 많이 제공하고 신차 구매자의 선호도도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기아차가 현대차의 ‘동생’으로 인식되면서 위기의 징후가 판매량에서 나타난다. 지난달 기아차는 국내에서 3만9천 대를 팔았다. 지난해 12월 이후 4개월 연속으로 판매량이 4만 대를 밑돌았다. 기아차는 내수부진에 따른 한시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기간에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회사 4곳은 모두 판매량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기아차가 현대차와 차별화할 요소를 만들지 못하면 내수시장에서 ‘현대차의 하위 브랜드’로 전락해 승용차 판매량이 급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산업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국내 소비자들은 현대차와 기아차의 차량이 모두 속은 똑같다고 여긴다”며 “둘 중 브랜드 파워가 더 큰 현대차 제품을 고르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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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아차 사장 시절 '디자인 경영'을 이끈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
◆ 기아차 홀로서기의 한계
기아차는 엔진과 부품, 그리고 생산 라인의 상당부분을 현대차와 공유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두 회사의 실력있는 인재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두 회사가 플랫폼을 공유하면서 기아차의 ‘하위 브랜드’ 인식은 더욱 강해졌다. 현대차가 먼저 새 부품을 사용한 차량을 출시한 뒤 기아차가 외양만 바꿔 신차를 내놓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가령 2000년 기아차는 ‘옵티마’를 출시했는데 현대차의 ‘EF쏘나타’ 플랫폼을 그대로 들여와 만들었다. 옵티마는 출시 직후 EF쏘나타 판매 실적의 70%까지 올라가는 등 기세를 올렸으나 곧 판매량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같은 플랫폼에서 나온 쏘나타의 선점효과를 완벽히 뒤엎기에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이런 현상은 이후 현대차의‘NF쏘나타’와 기아차의‘로체’에서도 반복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아차가 현대차와 차별화하려면 아예 다른 차종을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차가 만들지 않는 차종 생산에 특화해 ‘서로 다른 차를 만드는 회사’라는 인식을 뚜렷히 소비자에게 심어야 한다는 뜻이다. 보통 양산형 브랜드를 주력으로 갖춘 자동차기업이 다른 자동차기업을 인수하면 대개 이런 전략을 선택한다.
대표적 기업이 일본 도요타다. 도요타는 지금까지 두 개의 일본 자동차 브랜드를 제휴형식으로 기업에 편입했다. 1965년부터 제휴를 이어온 히노자동차는 오직 소형트럭만 생산한다. 2년 후 지분을 사들인 다이하쓰도 도요타의 주력차량이 아닌 경차생산에 집중한다.
기아차도 내수시장에서 어느 정도 도요타식 전략을 따랐다. 기아차는 국내에서 ‘모닝’과 ‘레이’ 등 경차생산을 전담한다. 현대차와 겹치지 않는 특정 소비층을 노린 ‘카렌스’와 ‘쏘울’도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국내에서 경차를 판매하지 않는 것은 기아차에 대한 일종의 배려”라며 “상대적으로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기아차에 수익성은 다소 낮더라도 많은 물량을 보장하는 경차시장을 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아차가 경차에만 집중하기에 위험부담이 크다. 국내 경차시장에서 수입차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기아차의 주요 경차라인인 레이와 프라이드가 차지했던 자리를 폭스바겐의 ‘뉴비틀’이나 르노닛산의 ‘큐브’ 등 수입차에게 내주고 있다.
경차에만 집중할 경우 영업이익이 대폭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생산회사 입장에서 볼 때 경차 여러 대를 파는 것보다 중대형차 한 대를 파는 것이 더 이익이다. 단순 비교했을 때 보통 경차 7~8대를 팔아야 대형차 한 대를 판 이윤이 남는다.
◆ 디자인 차별화, 가능성을 보여주다
기아차는 여러 자동차 생산라인을 ‘K시리즈’로 통합한 2009년 이후 실적이 크게 뛰어올랐다. 2010년 38조 원이었던 매출이 2년 만에 47조 원대로 증가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디자인 차별화 전략이 국내외 판매확대로 이어졌다”며 “해외에서 현대차와 함께 7%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디자인의 승리”라고 말했다.
기아차의 ‘디자인 경영’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이끌었다. 그는 2005년 기아차 사장이 되자마자 위기에 부딪혔다. 사장 취임 다음해 기아차는 적자가 났다. 적자의 외견상 원인은 기아차의 주요 수익원인 레저용 차량의 판매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원을 따져보면 기아차가 현대차보다 브랜드 파워가 약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정 부회장은 기아차만의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2006년 9월 파리모터쇼에서 “기아차 브랜드를 표현할 수 있는 독자적 디자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차량 라인업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고 감각적 요소를 가미해 세계무대에 기아차 경쟁력을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으로 꼽혔던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차 디자인 총괄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슈라이어는 당시 폭스바겐과 아우디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일했다. 정 부회장은 유럽까지 찾아가 슈라이어를 직접 설득했다.
정 부회장은 슈라이어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기아차 디자인센터를 별도건물로 분리하고 신차 기획단계부터 주도권을 건네줬다. 이를 반대한 임원들에게 “슈라이어 사장은 기아차의 히딩크”라며 적극 옹호했다. 한 전문가는 “기아차는 현대차로 인수된 뒤 조직논리 때문에 독창성을 내기 힘들었다”며 “정 부회장이 슈라이어 사장을 전폭 지원했기 때문에 많은 성과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슈라이어 사장이 내놓은 기아차의 고유한 디자인 ‘호랑이코 그릴’은 직선의 미학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부회장의 전폭적 지원 아래 호랑이코 그릴은 200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첫선을 보였다. 이후 2009년 출시된 ‘K시리즈’에도 채택되면서 기아차 성공을 이끌었다.
그런데 정의선 부회장이 2009년 8월 현대차로 자리를 옮기면서 기아차의 디자인 경영은 흔들렸다. 올해 초 슈라이어 사장이 현대기아차 총괄 디자인 책임자로 승진했다. 그러면서 디자인 경영이 그나마 구축해 놓은 기아차의 차별성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업계의 한 전문가는 “슈라이어 사장이 현대차와 기아차 양쪽의 디자인을 모두 맡은 것이 기아차의 차별성을 떨어뜨린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전향적이고 미래적이었던 기아차 디자인이 예전과 달리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기아차 디자이너 출신인 한 대학교수는 최근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 브랜드의 개성을 살린 ‘투 트랙 전략’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두 회사의 디자인 철학에 관해 “현대차가 흐르는 선을 강조한 동양화라면 기아차는 기하학적 추상화”라며 “이런 느낌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슈라이어 사장의 과제”라고 주문했다.
기아차가 현대차와 서로 다른 디자인 철학을 계속 고수해야 브랜드 파워가 생긴다는 것이다. 기아차의 디자인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현대차의 ‘동생 브랜드’라는 이미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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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좌측 세번째)이 지난 3월5일(현지시각) 독일 뤼셀스하임에 있는 현대차 디자인센터를 방문했다. |
◆ ‘따로 또 같이’ 경영의 성과와 한계
기아차의 오늘은 현대차에 인수되고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아차는 외환위기 당시 엄청난 적자를 내며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부실기업’이었다. 현대차에 인수되고 정몽구 회장이 “1년 안에 회사를 살리겠다”고 공언하며 직접 경영을 챙긴 덕분에 회생할 수 있었다.
정 회장은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따로 또 같이’ 효과를 추구했다. 이는 같은 사업을 추진하는 그룹 내 두 개 이상의 회사가 경쟁을 통해 시너지를 높이는 것을 뜻한다. 그는 기아차를 현대차에 합병하는 대신 ‘따로’ 독립된 기업으로 뒀다. 또 자동차 생산과정의 상당부분을 ‘같이’ 쓰게 해 비용을 아끼고 시너지를 만들었다.
이런 ‘따로 또 같이’ 전략 덕분에 기아차는 회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형성된 기아차는 ‘현대차 동생’이미지가 만들어졌고 지금은 오히려 그 이미지가 기아차가 미래를 향해 가는 데 발목을 잡고 있다.
정 회장은 기아차 인수 직후 직접 생산 공장을 방문하고 일주일에 2~3번씩 품질과 실적을 점검했다. 그는 비용을 아끼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현대차와 연구개발 및 플랫폼 공유를 지시했다. 기아차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작업인원 감축 등 구조조정도 진행했다.
그 결과 기아차는 부도 후 1년8개월이 지난 2000년 대우차를 제치고 업계 2위에 올라서면서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전문가들은 최소 5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됐던 기아차 경영 정상화 기간이 짧아진 것은 정 회장의 공이라고 평가했다.
정 회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 계속 현대차와 기아차 간 조직 통합을 이끌었다. 2004년 두 회사의 엔진 및 변속기 생산기술 조직을 통합해 현대차 생산개발총괄본부 안에 ‘파워트레인 생산기술센터’를 설립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아차 인수 후 중복조직을 통합한 것과 마찬가지로 생산기술 분야의 시너지를 높이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아차 일부에서 “생산기술이 현대차에 통합되면 기아차는 단순 조립만 하는 하청기지로 전락하는 셈”이라는 우려도 내놓았다.
정 회장은 2009년 기아차 등기이사 자리를 내놓으면서 기아차의 경영 독립성을 예전보다 더 보장했다. 그는 K9가 출시되자 회장 전용 차량으로 지정하는 등 기아차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정 회장은 그해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을 임명하면서 “기아차 브랜드를 현대차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회장의 이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의선 부회장의 디자인경영 이후 기아차의 차별화 전략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가령 현대차와 기아차는 여전히 엔진과 변속기 등 주요 부품을 같이 쓴다. 디자인 외에 실질적 차이가 없다. 폭스바겐그룹 아래 있는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엔진 일부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변속기를 사용해 차별화를 두는 것과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