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창규 KT 회장이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시절 반도체시장 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황창규 회장이 KT 회장 자리이 되는 과정에서 그가 삼성전자에서 만든 ‘신화’가 크게 작용했다.
황 회장은 반도체 부문에서 이견이 없는 최고의 전문가였다. ‘황의 법칙’을 바탕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를 구축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반도체산업을 선도하게 됐다.
문제는 황 회장의 경영능력이다. 황 회장이 뛰어난 경영자인데도 반도체부분의 명성에 가려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황 회장의 반도체 전문가 명성이 탁월한 경영자라는 신기루로 이어진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황 회장은 삼성전자 기술총괄사장을 역임하고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초대단장도 맡았다. 하지만 임기 초 화려한 등장에 비해 임기 말 성적은 초라했다. 그래서 황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의 슈퍼스타
황 회장은 반도체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를 1위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황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1991년 256메가D램 반도체 개발책임을 맡았다.
황 회장은 3년 만에 세계최초로 256메가D램 반도체 생산에 성공했다. 미국과 일본 경쟁사보다 1년 앞선 것이다. 256메가D램 반도체 개발 성공으로 삼성전자는 단숨에 반도체산업의 선도기업이 됐다.
황 회장은 황의 법칙(Hwang's Law)을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황 회장은 2002년 국제 반도체회로 학술대회에서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에 2배 증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통용되는 법칙은 1960년대 인텔 공동설립자 마이클 무어가 주창한 ‘무어의 법칙’이었다. 메모리 용량이 18개월마다 2배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황 회장은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기존 이론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2007년 64기가 낸드플래시를 개발하며 8년 연속 황의 법칙이 성립함을 입증했다. 황 회장은 30년간 반도체업계를 지배해 온 과거의 법칙을 깨뜨린 것이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세계 1위로 군림하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황 회장은 2000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선임됐고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황 회장은 2008년 D램 반도체가 가격경쟁으로 실적부진에 빠지면서 반도체 부문에서 물러나 기술총괄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전자는 황의 법칙을 입증하는 기술개발보다 수익성 개선으로 사업방향을 전환했다.
▲ 황창규 KT 회장은 삼성전자 재임시절 반도체 사업을 이끌어 세계 1위로 올려 놓았다. |
황 회장은 2009년 삼성그룹 경영진 세대교체와 함께 사장에서 물러났다. 퇴임 연한보다 앞서 퇴임한 것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다. 삼성그룹은 황 회장이 2000년부터 오래 대표직을 맡아 왔기 때문에 물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후진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또 2007년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를 퇴임의 주요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반도체 생산 중단으로 수백억 원의 손해를 입은 것에 대한 책임을 진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경쟁사에게 생산성이 뒤졌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훨씬 규모가 작은 하이닉스가 반도체 수율에서 삼성전자에게 앞서면서 황 회장의 경영능력에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반도체 수율이 하이닉스에 뒤진다는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냈고 황 회장의 퇴임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지고 있다.
◆ 황창규 R&D전략기획단장의 공과
황 회장은 2010년 지식경제부 산하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초대 R&D전략기획단장으로 취임했다. 황 회장은 당시 R&D전략기획단을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4조4천억 원이라는 대규모 예산을 가지고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투명성과 공정성,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인사라는 점에 모두 동의했다.
황 회장은 전략기획단장으로서 미래성장동력으로 ‘융복합 기술’을 꼽았다. 그는 2020년까지 ▲세계 5대 기술강국 도약 ▲10대 선도기술 발굴 ▲100개 세계1위사업 육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황 회장이 2011년 제시한 6대 기술 가운데 두 가지는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나머지 4개 기술에 대한 예산도 신청한 1560억 원에서 90억 원으로 94%나 대폭 삭감됐다.
정부가 전략기획단을 도와주지 않은 셈이지만 전략기획단의 한 관계자는 “황 단장은 추진력은 있지만 엘리트 의식과 독단 때문에 정부와 아랫사람들에게 신임을 잃었다”고 말해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또 R&D전략기획단이 진행한 사업에 대해 업무중복이라는 지적과 함께 대기업 몰아주기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전략기획단의 사업이 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 기존 R&D전담기관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은 전략기획단 출범 초기부터 꾸준히 나왔다.
사업과제의 대기업 편중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2011년과 2012년 전략기획단이 선정한 8개 과제 중 7개 과제 주관사가 대기업이었다.
대기업 출신인 황 회장이 재임한 기간 대기업 몰아주기가 논란이 되자 후임 전략기획단장은 벤처 출신인 박희재 서울대 교수가 선임됐다. 또 지식경제부에서 전략기획단 업무를 이관한 산업부는 연구개발 관련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황 회장이 이끌었던 1기 전략기획단은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황 회장은 전략기획단장 이임식에서 “창조경제의 초석을 어느정도 다져놓았다고 자부한다”고 자평했다. 그는 “성과도 있었지만 시행착오도 있었다”며 “공은 여러분이 갖고 과는 내가 갖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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