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선 지식재산처장이 6월29일 정부대전청사에서 '기술유출·탈취 대응체계 확대개편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반도체와 같은 기술력 확보가 생존을 좌우하는 첨단 분야에서는 기술 유출이 치명적인 타격으로 이어지는 만큼, 입법적 보완과 처벌 강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산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핵심기술 유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반도체 기업 전직 임직원들에게 실형이 선고되고 있으나, 범죄의 파급력에 비해 형량이 낮다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8월13일 SK하이닉스 전 직원 A씨는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확정받았다.
중국 현지 법인에서 고객지원(CS)을 맡았던 A씨는 2022년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으로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영업비밀 자료 186장을 출력하고 사진 5900장을 촬영해 유출했다.
1심 재판부는 기술 유출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유출된 정보가 제조에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양형에 참작했다. 아울러 유출 자료 중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두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첨단기술이라는 의견을 냈으나 법원은 근거 부족을 이유로 들어 무죄로 판단했다.
2016년 삼성전자 전 임직원들이 국가핵심기술인 1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을 유출한 사건 역시 사회적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2016년 설립된 직후 삼성전자 출신 인력을 영입하면서 기술 확보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기술 반출 행위가 적발됐다.
당시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D램 연구소 직원이었던 B씨 등은 창신메모리로 이직하기 전 4일에 걸쳐 '10나노급 D램 공정 정보'를 노트에 수기로 옮겨 적어 유출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일부는 6~7년 징역형을 받았고 일부 인원은 지금껏 재판을 받고 있다.
10나노 D램 공정기술은 삼성전자가 5년 동안 1조6천억 원을 투자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국가핵심기술이다. 이에 국가 핵심기술을 뺀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솜방망이가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그 뒤 CXMT는 2023년 중국 최초이자 세계 4번째로 10나노 D램 양산에 성공했다. CXMT는 올해 2분기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점유율 10%를 달성하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 2016년 설립된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삼성전자 등 메모리 선두 업체에서 빼낸 기밀 기술을 활용해 7년 만에 세계에서 4번째로 10나노 D램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파악된다. <창신메모리>
대만 법원은 TSMC의 2나노 공정 기술을 빼돌려 일본 도쿄일렉트론으로 이직한 전직 직원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기술을 넘겨받은 도쿄일렉트론 대만 법인에도 1억5천만 대만달러(약 64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미국도 마이크론의 D램 영업비밀이 대만 UMC를 거쳐 중국 푸젠진화로 유출된 사건을 경제간첩 행위로 규정했다.
미국 정부는 푸젠진화를 기소함과 동시에 거래를 제한하는 수출통제 대상에 올렸고, UMC에는 6천만 달러(약 94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주요 반도체 경쟁국은 개인을 처벌할 뿐만 아니라 기술을 가져간 기업을 대상으로도 벌금, 거래 제한, 수출통제 등 강력한 제재를 병행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기술유출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이 논의되고 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2026년 2월5일 국가핵심기술 유출과 관련한 법정형을 대폭 끌어올리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국외 유출 시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및 65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한 가중처벌 체계에서 하한선을 '7년 이상'으로 상향하고 벌금 상한을 '100억 원 이하'로 확대하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개정안을 발의한 김원이 의원 등 10인은 법률안 제안이유를 두고 "최근 반도체·바이오 등 첨단 분야에서 국가핵심기술·영업 비밀 유출 사건이 반복적으로 적발되고 기술유출 범죄에 대해 실형 선고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평균 선고형이 낮다는 지적이 지속되는 등 현행 법정형만으로는 억지력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국가핵심기술 및 산업기술 유출·침해범죄에 대한 법정형 수준을 상향함으로써,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의 실효성을 제고하고 국가경제 및 산업경쟁력에 대한 위해를 예방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