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퇴직연금 실물이전 범위 확대가 예고되면서 은행권에서 증권사로 퇴직연금 자금이탈 속도가 한층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은 지속적 서비스 개선과 안정적 자산관리 역량을 앞세워 퇴직연금 고객 사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퇴직연금 이동 문턱 더 낮아진다, 은행권 자산관리 강화로 '고객 사수' 안간힘

▲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확대에 따라 은행에서 증권으로 자금 이동이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합뉴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금융권 협회(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등), 주요 퇴직연금 사업자 등으로 구성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개선 태스크포스(TF)’는 올해 10월부터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개선을 위한 전산 개발을 시작한다.

전산 개발이 완료되면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을 다른 사업자의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실물이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기존에는 DC형에서 DC형, IRP에서 IRP처럼 같은 제도 유형 내에서 이전이 가능했으나 이번 서비스 개선에 따라 실물이전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은 가입자가 기존 운용상품을 매도(해지)하지 않고도 다른 퇴직연금 사업자의 계좌로 그대로 옮길 수 있는 서비스다.

기존에는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사업자로 옮기려면 기존 상품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소비자가 손실을 볼 여지가 있었다. 중도해지에 따라 기대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받거나 투자상품 환매와 재매수 사이 가격 변동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24년 10월 도입됐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번 서비스 개선에 따라 퇴직연금 이동 장벽이 더욱 낮아지는 만큼 시장 내 ‘머니무브’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DC형 퇴직연금 계좌에 적립된 자금은 보통 가입자가 회사를 퇴직하는 과정에서 IRP로 수령하게 된다. 이 때 은행권에 적립됐던 자금이 증권사 IRP로 옮겨질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DC형에서 타사 IRP로 실물이전이 가능해지면 DC형 퇴직연금 수령 과정에서 증권사로 자금 이동이 발생할 수 있어 내부적으로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IRP에서는 이미 증권사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도입된 2024년 10월 이후 2026년 6월 말까지 은행권 IRP 계좌에서는 2조7544억 원의 자금이 순유출됐다. 반면 같은 기간 증권사 IRP로는 3조426억 원이 순유입됐다.

이 같은 자금 이탈 흐름 속 은행들은 퇴직연금 상품 확대와 서비스 고도화 등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KB국민은행은 6월 퇴직연금 편입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21종 추가해 260종으로, 7월에는 277종까지 늘렸다. 여기에 더해 8월20일부터는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를 매도한 당일 다른 ETF로 갈아탈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기존에는 은행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를 매도하고 매도대금으로 다른 종목을 매수하려면 다음 거래일까지 기다려야 했으나 당일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증권사 퇴직연금 계좌에서는 실시간으로 ETF를 거래할 수 있다.

은행권에서는 증권사를 상대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ETF 당일 매도, 당일 매수 서비스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 등 다른 은행들은 서비스 도입을 준비하거나 검토하는 단계로 전해진다.
 
퇴직연금 이동 문턱 더 낮아진다, 은행권 자산관리 강화로 '고객 사수' 안간힘

▲ 은행들이 퇴직연금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ETF 거래 편의성을 개선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은행들은 자산관리 서비스도 지속 강화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노후자산이라는 점에서 안정성과 수익성을 모두 챙겨야 하는 만큼 전문적 자산관리 서비스를 경쟁력으로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2026년 1월 고객이 본인의 투자성향에 맞춰 전문가 추천 포트폴리오에 투자할 수 있는 ‘전문가 픽(Pick) 포트폴리오’ 서비스를 도입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로 자동화된 자산관리 설루션도 제공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2025년 말 은행권 최초로 ‘AI 연금투자 인출기 설루션’을 선보였다.

AI 연금투자 인출기 설루션은 개인형 IRP 보유 고객이 연금 인출기간 동안 안정적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도록 AI가 포트폴리오 제안 등 운용 전략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박지홍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원은 5월 보고서에서 “향후 금융회사의 연금 사업 경쟁력은 계좌 유치나 상품 라인업뿐 아니라 가입 이후 운용과 은퇴 이후 수령을 연결하는 장기관리 역량에서 차별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은행업계 다른 관계자는 “추후 실물이전 범위 확대에 따라 증권사 IRP로 자금이 이동하는 상황 등을 주의 깊게 살필 것”이라며 “퇴직연금 경쟁력을 지속 강화해 고객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