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슨 황 엔비디아 CEO(오른쪽)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8일 서울 서초구 현대차 본사에서 로봇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현재 세계 휴머노이드 공급망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 기업들에 가장 우수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도 제시됐다.
◆ 글로벌 로봇 공급망 '탈중국' 추세, 한국이 수혜 국가로 주목
25일(현지시각) 증권사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내고 한국이 앞으로 중국 이외 지역의 휴머노이드 공급망에서 핵심 국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국 공급망을 거쳐 생산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2030년 약 7만4천 대, 2035년에는 약 41만2천 대로 세계 시장에서 30% 안팎의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자동차와 전자제품 및 부품 제조업 분야에서 우수한 기반을 갖추고 있어 휴머노이드 공급망에서도 강점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을 전했다.
현재 세계 휴머노이드 공급망은 중국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관련 기업의 연구개발 및 생산을 적극 지원해 온 결과다.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밍 쉰 리 중국 산업분석 책임은 11일 뉴욕타임스에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부품의 최소 70%를 중국 제조업체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도체와 전기차에 이어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도 기술 경쟁이나 안보 문제를 이유로 중국 공급망에 의존을 줄이려는 시도가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로봇업체 시어인텔리전트의 조너선 판 최고운영책임자(COO)는 22일 CNBC 방송에 출연해 “지정학 불확실성과 무역 갈등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미국 휴머노이드 개발사들이 한국을 더욱 주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세계 휴머노이드 출하량 점유율. <그래픽 제미나이로 제작>
◆ 미국 로봇 업계 한국에 '러브콜' 이어져, 엔비디아도 가세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특히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로봇 공급망 점유율을 높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은 전기모터와 센서, 제어장치 등 자동차 핵심 부품을 수직계열화했는데 대부분의 부품은 로봇 공학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기업은 주로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만큼 로봇 하드웨어 생산과 공급망을 담당할 파트너가 필요한데 한국 기업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골드만삭스는 전망했다.
실제로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기술 기업은 한국 업체에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8일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를 찾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회동한 뒤 “엔비디아는 AI와 현대차의 전문성을 결합해 로보틱스의 미래를 변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엔비디아의 로봇 개발용 AI 플랫폼인 아이작 GR00T를 활용해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개발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로봇 개발 플랫폼의 실증 사례와 핵심 고객사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보스턴다이나믹스와 협력은 중요한 기회로 꼽힌다.
차량용 광학 부품을 제조하는 LG이노텍은 지난해 5월12일 카메라와 3차원 감지 모듈 등을 결합한 ‘비전 센싱 모듈’을 보스턴다이나믹스와 함께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기와 현대모비스 등도 각각 미국 협력사를 겨냥해 카메라 모듈과 구동계(액추에이터) 등 휴머노이드 부품을 개발하고 있다. 다만 아직 구체적 고객사는 밝혀지지 않았다.
▲ 방문객이 2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이동통신 박람회 MWC 현장에서 중국 로봇기업 아지봇의 휴머노이드와 셀카를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 휴머노이드 '물리적 AI' 데이터 부족이 한국에 최대 약점, 중국 따라잡아야
AI 휴머노이드는 중장기적으로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해 기업의 인건비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일 제품으로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증권사 모간스탠리는 지난해 5월에 펴낸 보고서에서 세계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가 2050년 5조 달러(약 7727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이번 보고서에서 휴머노이드 시장이 더욱 커지는 과정에 물리적 데이터 부족을 걸림돌로 꼽았다.
휴머노이드가 실제 환경을 인식하고 이해해 행동하려면 물리적 AI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AI 모델 자체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로봇이 직접 경험하며 축적하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인간 수준의 능력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빠른 상용화에 힘입어 관련 공급망뿐 아니라 물리적 AI 데이터 확보에도 앞서나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에 출하된 1만6천여 대의 휴머노이드 가운데 90%가 중국산이었다. 반면 미국과 한국은 각각 수백 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 많은 로봇이 현장에 투입될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AI 성능이 향상돼 다시 더 많은 로봇이 보급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중국을 따라잡으려면 하드웨어 공급망뿐 아니라 실제 휴머노이드 상용화에도 속도를 내 데이터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물리적 AI 데이터 부족은 결국 휴머노이드 공급망 개발에도 병목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며 한국은 이미 공장과 같은 환경에 휴머노이드 상용화를 앞당기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