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강업계가 수출 규제, 가격 덤핑, 입법 지연이 겹치며 구조적 위기 속에 시름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철강업계는 미국과 유럽의 수출 규제, 중국의 가격 덤핑, 국내 정치권의 입법 지연 등이 겹치며 구조적 위기 속에 시름하고 있다.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통상부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및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정부는 이날 글로벌 공급과잉과 경쟁력 약화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철강업계를 살리기 위해 5700억 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피해기업은 지원하되 경쟁력이 떨어진 품목은 설비 규모를 조정하고 고부가·저탄소 제품으로 전환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계획도 함께 내놨다.
구윤철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철강 관세 피해 기업을 대상으로 4천억 원 규모의 수출 공급망 강화 보증을 추가로 신설해 총 5700억 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철강산업 고도화를 위해 5700억 원 규모의 금융지원 외에도 △관세 피해 기업을 대상으로 2차 보전 사업 및 긴급 저리융자 신설 △덤핑방지관세 부과 △'특수탄소강 연구개발(R&D) 로드맵' 수립 △10개 특수탄소강 대상 2천억 원 R&D 투자 △수소 환원 제철 실증 기술 및 철강 특화 인공지능(AI) 모델 개발 △범용 철강재 중심의 선제적 설비 규모 조정 지원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이처럼 철강업계 지원 방안을 내놓은 것은 한미 관세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철강업계가 이번 협상 과정에서 제외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9일 미국과 관세협상에서 세부 내용에 합의했다. 상호 관세는 7월30일 합의 이후 이미 적용되고 있는 대로 15%로 인하해 지속 적용하기로 했으며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관세도 15%로 인하됐다.
품목 관세 가운데 의약품, 목재 제품은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으며 항공기·부품, 복제 의약품(제네릭 의약품),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 등은 무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 반도체의 경우에는 우리의 주된 경쟁국인 대만에 견줘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한미 협상에서 철강 문제는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중국산 저가품 과잉 공급과 미국의 50% 철강 품목 관세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 함께 한국 철강의 주요 수출처로 꼽히는 유럽연합(EU)도 관세 인상을 예고한 터라 수출 경쟁력은 물론 수익성까지 심각하게 위협 받고 있다.
철강산업은 우리나라 주력 산업의 근간이 돼 왔지만 최근 몇 년간 지속된 글로벌 공급과잉과 업황 침체의 여파로 관련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
대규모 장치산업 특성상 산업이 성숙기로 접어들면서 범용재 경쟁력이 약화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철강 수출 '밀어내기'로 인한 덤핑 문제와 미국·유럽 등의 관세 장벽 등으로 철강업계의 어려움은 가중됐다.
▲ 경북 포항시 남구 제철동에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 한 직원이 용광로에서 쇳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날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미국뿐 아니라 EU도 쿼터를 줄이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라 수출 여건은 계속 악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불공정 수입재 대응을 위한 반덤핑을 하기는 했지만 우회로를 거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보니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출하기에는 다른 나라에서 무역장벽을 세우다 보니 힘들고 내수에서는 불공정 수입으로 시장 교란이 일어나 힘들다"고 덧붙였다.
철강업계는 정부의 이번 방안에 반가움을 표시하고는 있지만 업계의 시름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철강업계의 구조적 문제 등 핵심 사안은 여전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별도로 이른바 'K-스틸법'도 입법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어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K-스틸법(철강산업 진흥 및 탈탄소 전환 촉진을 위한 특별법)은 1970년대 '철강공업육성법' 이후 50여 년 만에 나온 철강산업 특별법으로 철강업계의 '마지막 숨통'이라고 평가받는다.
법안은 철강산업을 국가 경제와 안보의 핵심 기반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신설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또 수소 환원 제철 등 녹색 철강 기술을 지정해 세제감면·보조금·융자 지원을 가능하게 하고 '녹색 철강 특구'를 통해 인허가 간소화 및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등 규제 완화도 포함됐다. 부적합 철강재 수입 규제, 덤핑 대응 등 무역 방어 장치를 강화하는 조항도 들어가 있다.
앞서 여야 의원 106명은 지난 8월 K-스틸법을 공동 발의한 뒤 권향엽·어기구·김정재 의원 등이 보완 입법안을 잇달아 냈다. 하지만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논의가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철강업계는 K-스틸법 제정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중국산 저가 공세와 글로벌 공급과잉, 각국의 보호무역 강화 속에서 산업 경쟁력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회생이 어렵다는 경고가 잇따르면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소 환원 제철 등 신기술 투자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정부의 제도적 지원 없이는 탈탄소와 경쟁력 강화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K-스틸법에 대해 "녹색철강 전환을 위한 실효성을 담보하기엔 미흡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녹색철강시민행동(광양환경운동연합, 기후넥서스, 기후솔루션, 당진환경운동연합, 빅웨이브, 액션스픽스라우더, 충남환경운동연합, 포항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은 8월7일 공동 성명을 통해 "K-스틸법은 녹색철강을 핵심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녹색철강의 정의와 기준, 온실가스 감축 책임에 대한 규정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조성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