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주석(왼쪽)이 2017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을 만나 악수를 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글로벌 기후대응 논의에 주도권을 잡으며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26일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유럽연합은 11월10일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을 앞두고 내부 입장을 정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그리스가 COP30 유럽연합 공동 의결안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COP30과 별도 기후대응 안건인 국제해사기구(IMO) 넷제로프레임워크(NZF)와 관련해서도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과 상반되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12일 국제해사기구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그리스가 유일하게 넷제로프레임워크 도입에 반대표를 던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유럽 언론 유랙티브는 "그리스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가 국제해사기구 넷제로프레임워크를 지지하는 모든 국가들에 추가 입항 수수료, 비자 제한, 벌금 등 제재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넷제로 프레임워크는 전 세계 배수량 5천 톤 이상 선박에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초과하면 탄소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기후대응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 행정부는 넷제로프레임워크가 미국의 국익을 해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는 유럽연합이 미국과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넷제로프레임워크 반대에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COP30 의결안을 사실상 인질로 잡고 있는 셈이다.
미국도 이번 COP30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표단을 COP30에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의회 차원에서 파견되는 미국 양당 대표단은 참석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미국 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중단)' 사태가 장기화되며 이마저도 불투명해졌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양당 대표단을 이끌 것으로 예상됐던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과 존 커티스 공화당 상원의원이 일정을 모두 취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쿤스 의원실은 폴리티코에 "모든 사항을 고려하고 있지만 셧다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계획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 루이스 이나시우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브라질 브라질리아 대통령궁에서 열린 오찬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리슈오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 중국 기후허브 소장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기후대응 후퇴와 유럽연합의 내부 과제로 중국과 신흥 경제대국들은 글로벌 기후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됐다"며 "서방 국가들과 달리 이들은 탈탄소화 및 산업 개발을 모두 추진하는 데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재생에너지 산업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과 막대한 인프라를 갖춘 만큼 글로벌 에너지 전환을 주도할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은 중국일보를 통해 "중국은 지난 10~15년 동안 재생에너지 가격을 90% 낮추는 데 기여했다"며 "중국이 재생에너지 발전을 주도한다면 속도감 있는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에 COP30을 개최하는 브라질은 국제협의체 '브릭스(BRICS)'를 통해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이 이번 기후총회에서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기 유리한 위치에 놓인 셈이다.
루이스 이나시우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7월 브릭스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통해 "브릭스는 기후문제에 공동의 리더십을 발휘해 기후문제 해결에 헌신하고 있다"며 "브릭스 소속 경제 강국 중국은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가장 모범적 국가"라고 말했다.
중국은 개도국 기후협력 문제에도 브라질과 함께 서방 국가들의 자리를 대체하려 시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2015년 파리협정을 통해 자체적으로 기후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개도국에 자금을 지원하는 '기후재원' 설립에 합의했다. 서방 국가들이 산업화와 경제 발전 과정에서 배출한 온실가스로 기후변화를 주도했다는 책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기후재원 규모는 지난해 11월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합의된 내용에 따라 연간 1조3천억 달러(약 1871조 원) 규모까지 충원돼야 한다.
하지만 최근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유럽 국가들은 이행을 유보했고 미국은 아예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며 국제 지원을 모두 중단했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브라질을 비롯한 개도국들이 서방 국가들의 약속 이행을 기다리는 대신 '자체 굴기'를 통한 기후 적응에 나서야 한다며 자국과 협력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안드레 코레아 두 라고 COP30 의장은 6월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 "선진국 기후재원 기여금 삭감과 미국의 기후총회 사전회의 불참은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며 "중국과 브라질 등 개도국은 국제 지원을 기다리는 대신 자체 노력으로 기후대응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은 기후변화 대응 방안에 다른 어느 곳보다 더 많은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국가"라고 덧붙였다. 손영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