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2년 11월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2022 코스모프로프 아시아 싱가포르 뷰티박람회’에서 펌텍코리아 부스. <펌텍코리아>
빠르게 변하는 K뷰티 시장에서 제품 콘셉트와 출시 속도를 좌우하는 ‘용기’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용기 기업은 더 이상 뒤에서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시장경쟁력을 결정짓는 전략적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펌텍코리아의 가치가 새롭게 평가받는 이유다.
29일 펌텍코리아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화장품 용기업계 선두 자리를 한층 더 공고히 다지고 있다. 매년 두 자릿수 실적 성장률을 이어가며 안정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모습이다.
펌텍코리아는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1972억 원, 영업이익 329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21.4%, 영업이익은 43.1% 늘었다. 지난해 연간으로도 매출 3375억 원, 영업이익 484억 원을 기록해 2023년보다 각각 18.6%, 37.1% 증가했다.
펌텍코리아의 성장을 이끄는 힘은 달라진 패키징 기업의 위상에서 찾을 수 있다. K뷰티 산업은 오랫동안 제품 기획, 원료 개발, 제조, 유통 등 전 과정이 브랜드사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판도가 바뀌었다. 소비자 경험과 브랜드 가치를 동시에 좌우하는 자리에 용기 기업이 올라선 것이다. 과거에는 완제품 뒤에서 단순히 ‘담는 역할’만 맡았지만, 시각적 차별성과 브랜드 정체성을 담아내는 용기 디자인이 제품 선택의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이런 변화는 협업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브랜드사들이 펌텍코리아와 제품 기획 단계부터 손을 잡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 주문형 생산을 넘어 콘셉트 제안과 기능 설계까지 함께하는 ‘전략적 전방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펌텍코리아는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고객사 요구에 맞춘 다양한 용기를 선보여 왔다. 2002년 국내 최초 펌프튜브 개발을 시작으로, 2009년 세계 최초 에어리스 콤팩트, 2010년 세계 최초 오토드로퍼, 2014년 국내 최초 선블럭용 스틱을 잇달아 출시하며 화장품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신제품을 꾸준히 내놓았다.
이렇게 쌓아온 기술은 ‘프리몰드(자체 금형)’ 형식으로 지식재산권(IP)이 펌텍코리아에 귀속돼 다른 브랜드에도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 여기에 주요 부품을 표준화해 다양한 제품으로 조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조립 공정의 자동화 비중도 높였다.
이 같은 구조는 인디 브랜드의 다품종 소량생산부터 글로벌 대형 브랜드의 대량생산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실제로 현재 매출의 76%가 프리몰드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자동화율도 70%에 이른다.
여기에 뷰티 트렌드 주기마저 짧아지면서 용기 기업의 영향력은 더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신제품이 출시되기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이제는 1년 안에 새로운 제품으로 교체되는 흐름이 일반화됐다.
제품 주기가 짧아지면서 용기 제작 속도와 유연성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일부 브랜드는 시즌마다 색조 제품을 전면 교체한다. 히트 상품의 경우 2차·3차 후속 제품 출시로 이어가는 경우가 잦다.

▲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펌텍코리아 본사. <펌텍코리아>
이런 흐름 속에서 펌텍코리아의 수주도 빠르게 늘고 있다. 선행 개발력과 생산 리드타임 단축 능력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경쟁력을 입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중소 브랜드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대형 브랜드사들의 의존도까지 높아지는 추세다. 로레알, 에스티로더, 샤넬,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이 대표적이다. 펌텍코리아는 차별화된 기능성 펌프, 친환경 리필 구조, 특수 소재 개발 등에서 이미 다수의 선도 기술을 확보하며 글로벌 브랜드의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생산 현장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3년 75.8%였던 가동률은 2024년 81.4%로 올랐다. 올해 상반기에는 86.3%까지 확대됐다.
이에 맞춰 생산능력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펌텍코리아의 올해 상반기 투자활동현금흐름은 –25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1·2·3공장을 운영 중이며 4공장은 올해 4분기 완공을 앞두고 있다. 내년에는 6공장도 완공될 예정이다.
패키징사의 높아진 위상은 사모펀드의 움직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KKR은 최근 국내 화장품 용기 전문기업 삼화를 인수했다. 삼화는 펌텍코리아, 연우와 함께 국내 톱3 용기 기업으로 꼽힌다.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PEF 운용사 TPG는 삼화 지분 100%를 약 8천억 원에 KKR에 매각했다. 이번 거래에는 블랙스톤, 칼라일 등 글로벌 대형 PEF도 경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품 용기 산업의 성장 잠재력에 대한 방증인 셈이다.
한유정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화장품 공급망에서 패키징은 가장 후방에 위치해 협상력이 떨어지는 산업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브랜드 차별화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패키징 업체들의 위상도 단순한 후방 OEM에서 독자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파트너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