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한미·한일 정상회담을 마무리짓고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대미 외교의 불확실성을 잠재웠고 신뢰 관계를 돈독히 했을 뿐 아니라 한일 관계에서도 '정상화'의 밑돌을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철저한 준비'와 '실용외교'가 빛을 발한 것인데 다만 '뒤로 밀린 과제'도 만만치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재명 정상회담 성공적 마무리, '실용외교' 빛났으나 '미룬 과제' 만만치 않아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오전 3박6일의 일본·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28일 오전 3박6일간의 방일·방미 일정을 마치고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각) 일본 도쿄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첫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25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이번 한미·한일 정상회담의 결과를 두고 정부여당뿐 아니라 여론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리얼미터가 27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한미 정상회담을 전반적으로 잘했다’는 응답은 53.1%로 과반을 넘어섰다.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는 60.7%에 이르렀다. 주요 성과로는 조선업·제조업 등 경제 협력 확대(18.0%), 정상 간 신뢰 구축(14.0%), 북미 대화 및 한반도 평화 진전(13.9%), 한미일 동맹 협력 강화(10.5%) 등이 꼽혔다. 

한일 정상회담도 의미 있는 첫발로 평가됐다. 미디어토마토가 2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8%는 이번 회담을 “17년 만에 공동선언문 채택 등 상징적 진전”으로 바라봤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에 큰 외교적 성과로 평가 된다. 이 대통령이 처음으로 외교 무대에 본격 데뷔하는 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불가능한 외교 공세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라면 나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웃음짓게 만들었다. 또한 방명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의자를 손수 빼주는 장면이 연출됐으며, 이 대통령이 준비해 간 만년필에 관심을 보여 즉석에서 선물하기도 했다.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17년 만에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는 성과를 냈다. 

양국 정상은 공동언론발표문을 통해 △정상 간 교류 확대 △경제·미래산업 협력 강화 △인적 교류 확대, △대북 대응 및 한반도 평화 △역내·글로벌 협력 강화 등 주요 현안에 공감대를 표시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에도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

앞서 이시바 총리는 이번달 15일 패전 80주년 추도식에서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다시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밝히며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일본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한국 정부를 배려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정상외교의 성공은 '철저한 준비' 때문에 가능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웃음짓게 한 '피스 메이커' 발언은 그가 노벨평화상을 원한다는 점을 파고들기 위해 미리 준비된 발언으로 보인다. 한미 조선업 협력의 상징인 '마스가'를 강조해 미국 제조업 부활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기분좋게 만들었다. 

특히 이재명 정부는 돌반 변수에도 대응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3시간 전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며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그곳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는 돌발 발언을 올렸다. 하지만 회담에서 “오해라고 확신한다”며 '없던 일'이 됐다.
 
이재명 정상회담 성공적 마무리, '실용외교' 빛났으나 '미룬 과제' 만만치 않아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며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로즈 와일리 백악관 비서실장과 긴급하게 소통해 오해를 조기에 차단한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강 비서실장은 관례를 깨고 미리 워싱턴D.C.를 찾아 백악관 비서실장과 '핫라인'을 구축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 밖에 이 대통령은 예측이 어려운 돌발 사태 방지에도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홀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각각 ‘디스 맨’, ‘이지 맨’이라는 호칭을 들어 국내 언론의 표적이 됐다.

이번 정상회담이 성과를 낸 핵심 요인은 ‘실용 외교’라는 평가도 나온다. 보수진영에게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면서 '실익'을 챙기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특히 이 대통령은 25일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경제적 실익은 다른 곳에서 취한다’는 질문을 받고 “과거 한국은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태도를 취한 게 사실이지만 이제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이는 새로운 한미, 한중 관계 구축을 공개 천명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관세 전쟁을 벌이는 등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친중 노선을 걷지 않을까 의심해 왔다. 

한일 관계에서도 일본 정부가 껄끄러워하는 과거사 문제를 뒤로 미루며 협력의 틀을 우선 세웠다.
이재명 정상회담 성공적 마무리, '실용외교' 빛났으나 '미룬 과제' 만만치 않아

▲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 소인수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19일 진행한 보수 성향의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문제 처리와 관련해 “정책 일관성과 국가 대외 신뢰를 생각하는 한편 국민과 피해자·유족 입장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책임을 동시에 지고 있다”면서도 “국가로서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일본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려는 제스처로 해석됐다.

이로써 이 대통령은 그간 제기돼 온 친중·반일 ‘셰셰 외교’ 프레임을 잠재우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실용외교는 '공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벌써부터 과거사 문제를 외피하는 듯한 모습에 진보 진영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21일 서울 종로구 향린교회에서 693개 시민단체와 함께 참여한 ‘한일정상회담에 바란다 역사정의평화를 위한 시민사회 시국선언'에서 “국민이 이 대통령에게 바란 것은 윤석열 정부의 과오를 바로잡고 피해자 편에 굳게 서는 것”이라며 “잘못된 합의에 메이지 않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합의나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관련한 시민단체의 반발도 이어졌다.

대중국 관계의 불확실성도 큰 과제로 남았다. '페이스 메이커' 발언도 한국 정부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외교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 한반도 외교의 주도권을 미국에 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중국은 이날 베이징에서 9월3일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행사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청하며 북·중·러 라인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대중 외교의 폭이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는 큰 문제 없이 넘어갔지만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언제든 ‘청구서’를 보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규모 대미 투자, 방위비 분담 협상, 한미동맹 현대화 같은 현안은 트럼프 임기 내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요컨대 실용 외교가 첫 고비를 넘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뒤로 미룬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향후 이 대통령의 외교 행보에서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 인용된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8월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는 무선(100%)·RDD(임의전화걸기)·ARS(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다.

미디어토마토 여론조사는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25일과 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31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는 무선·ARS(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