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합의서 빠진 '디지털 장벽 안건'에 IT업계 일단 안도, 11일 고정밀 지도 반출 결정이 재압박 뇌관 되나

▲ 정부가 오는 11일 결정할 고정밀 지도 반출 여부 문제가 한국과 미국 간 디지털 비관세 장벽 관련 통상 갈등에 불을 붙일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번째) 등 한국 협상단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미국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왼쪽 두번째) 등 미 협상단과 관세 협상을 진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한국과 미국 간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국내 IT 업계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그동안 관세 협상을 계기로 한국의 '디지털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해온 온라인플랫폼 제정, 고정밀 지도 반출 거부, 망중립성 무력화, 정부 클라우드 보안인증제 등 점들이 이번 관세 합의 의제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는 11일 우리 정부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여부 결정이 양국 간 디지털 무역 갈등을 재점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일 정보통신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고정밀 지도 반출 요청을 수용할지 여부에 따라 디지털 비관세 장벽 문제가 다시 양국의 통상 협상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IT 기업들은 이번 관세 협상에서 정부가 자동차, 반도체 등 수출 주력 산업의 이익을 지키는 대신, 미국 측이 문제 삼아온 디지털 비관세 장벽 안건들 일부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관세 협상 시작 전부터 USTR과 미국 주요 이익단체가 한국의 디지털 관련 규제를 핵심 통상 현안으로 삼고자 강하게 문제 제기해왔기 때문이다.

USTR은 그동안 미국 온라인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 콘텐츠 사업자에 대한 망 사용료 부과 입법 움직임,  클라우드 서비스 보안인증제도(CSAP) 등을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하며 우리 정부 측에 해소를 요구해왔다.

미국 전국납세자연합도 관세 협상 타결 직전인 지난달 28일(현지시각) 공개서한을 통해 한국 정부가 디지털 장벽을 세워 미국 빅테크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관세 협상에서 디지털 비관세 장벽 관련 이슈들은 의제에서 제외됐다.

IT업계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이번 협상에서 디지털 비관세 장벽 이슈가 테이블에 오르지 않은 것은 미국이 제조업 분야 이슈에 더 집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민감한 디지털 규제 문제들이 논의되지 않으면서 당장은 불확실성이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오는 11일 구글 등의 '고정밀 한국 지도 국외 반출' 허가 여부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디지털 비관세 장벽 논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를 포함해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국가정보원, 산업통상자원부,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8개 정부부처가 참여하는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는 구글이 신청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 여부를 11일 결정한다.
 
관세 합의서 빠진 '디지털 장벽 안건'에 IT업계 일단 안도, 11일 고정밀 지도 반출 결정이 재압박 뇌관 되나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 협상단과 관세 협상 타결 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악관 인스타그램>

고정밀 지도는 자율주행 차량, 정밀 네비게이션 등 첨단 기술에 필요한 인프라 데이터다. 

정부는 그동안 국가안보와 군사기밀 보호를 이유로 1: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의 해외 반출을 엄격히 제한해왔다. 

구글은 2007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고정밀 지도 반출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모두 불허했다.

이번에도 정부가 반출을 허가하지 않을 경우, 미국 IT 기업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 문제가 2주 뒤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식 의제로 다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고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여러 디지털 비관세 장벽 이슈와 맞물린다면 두 나라 간 디지털 통상 갈등이 다시금 불붙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고정밀 지도나 클라우드 인증제 같은 사안을 협상 카드로 남겨둘 가능성이 있다”며 “IT 관련 사안은 당장은 뒤로 밀렸지만, 향후 양국 통상 협상 과정에서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도 고정밀 지도 반출과 관련된 문제가 다시 거론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7월31일 관세 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에서 “고정밀 지도 등은 미국 USTR 대표와 제일 많이, 제일 일찍 논의한 분야인데 이번에는 통상 위주로 신속하게 급진전하면서 그건 우리가 방어한 것”이라며 “안보 등의 문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