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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상법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빙그레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디.
빙그레는 앞서 승계 작업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체제 전환을 추진하다 실패했는데 상법개정안에 따라 이사 충실 의무가 일반 주주에게까지 확대되면서 비슷한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기는 어려워졌다.
![[상법개정, 그 후⑩] 빙그레 지주사 전환 좌초에 '이사 충실의무'까지 덮쳐, 김호연 승계 전략 어디로](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2/20250217170809_7126.jpg)
▲ 상법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빙그레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김호연 빙그레 회장.
승계 시나리오가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빙그레는 승계의 열쇠가 될 계열사로 꼽히는 ‘제때’ 관련 부당 내부거래 의혹으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18일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상법 개정안 통과로 빙그레 승계 작업이 오리무중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상법 개정안이 공포되면 그 즉시 이사의 ‘충실 의무’ 적용 대상이 기존 회사 자체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회사의 의사결정이 주주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아 일반주주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 이사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은 물론 형사상 배임 혐의까지 적용받을 수 있게 된다.
앞서 빙그레는 지난해 11월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인적 분할을 통한 지주사 체제 전환을 추진했다. 빙그레를 분할 신설회사 빙그레와 분할 존속회사 빙그레홀딩스로 나누고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빙그레홀딩스가 빙그레 지분 공개매수를 통한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인적분할 방식은 기존 회사 주주가 신설 회사가 발행한 신주를 지분율에 따라 배정받는다. 이에 더해 김 회장과 특수관계자들이 공개매수에 응하면 보유하고 있는 빙그레 주식으로 자금 투입 없이 지주사 빙그레홀딩스 지분을 늘릴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김 회장(36.75%)과 김구재단(2.03%), 제때(1.99%), 현담문고(0.13%) 등 김 회장과 특수관계자들은 빙그레 지분 40.89%를 들고 있다.
빙그레는 오너일가 지배력 확대 수단이라는 지적이 일자 올해 1월 지주사 전환 계획을 철회했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환 빙그레 사장이 승진한 지 7개월 만에 지주사 전환을 발표한 점도 승계 작업을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분석에 힘을 실었다. 회사 측은 “인적분할 및 지주회사 전환 이전에 좀 더 명확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철회 이유를 밝혔다.
지주사 지분만 확보하면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어 지주사 전환은 재계에서 승계도구로 자주 활용돼 왔다. 빙그레로서는 상법 개정으로 인해 지주사 전환을 위해 넘어야 할 벽이 더 높아졌다.
다만 빙그레는 지금으로선 지주사 전환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빙그레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 계획 철회 당시와 바뀐 게 없는 상황이라 재추진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빙그레는 승계 로드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을 지나고 있다.
김호연 회장은 1955년생으로 칠순이 넘었지만 장남 김동환 사장과 차남 김동만 해태아이스 전무, 장녀 김정화씨 등 3자녀는 빙그레 주식을 전혀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다.
김 회장이 물려줘야 할 빙그레 지분가치는 약 3천억 원에 이른다.
▲ 빙그레는 최근 10년 동안 물류 계열사 제때 대표를 맡아온 김광수 사장을 빙그레 새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이에 김 회장의 자녀들이 지분 100%를 나눠 들고 있는 ‘제때’가 오너일가 승계 작업의 열쇠가 될 계열사로 꼽힌다. ‘제때’는 2006년 빙그레 오너일가가 인수한 냉동·냉장 물류 전문회사다.
빙그레가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당시 제때가 빙그레홀딩스 공개매수 참여와 추가 지분 확보를 통해 ‘옥상옥’ 지배구조를 구축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빙그레는 최근 10년 동안 ‘제때’ 대표를 맡아온 김광수 사장을 새 대표에 선임했다. 김 사장은 빙그레 대표에 오르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빙그레는 새 대표 선임 이유를 전창원 전 대표이사가 개인적 이유로 자진 사임 의사를 표명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전 대표는 지난해 빙그레의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 동시 달성을 이끌었고, 취임 당시 400억 대였던 영업이익을 1천억 원 대에 안착시켰다. 이에 전 전대표의 갑작스런 사임 배경에 지주사 체제 전환 실패가 깔려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 부회장을 빙그레 수장에 앉힌 데는 안정적 승계 기반을 다지기 위한 고려가 상당부분 반영됐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 부회장은 2015년 860억 원 수준이던 ‘제때’ 매출을 지난해 5704억 원으로 6배 넘게 키워냈다.
‘제때’의 성장을 이끌었던 김 부회장이 빙그레 대표에 올라 두 기업 사이 시너지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나온다. 상법 개정으로 승계 셈법이 한층 복잡해진 가운데 ‘제때’의 기업가치가 높아지면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빙그레 승계 과정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제때’와 관련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은 빙그레 승계 작업의 시계를 더욱 흐리고 있다.
빙그레는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내부거래 관련 공정거래법 위반 의혹을 조사받고 있다. 빙그레의 자회사 해태아이스크림이 ‘부라보콘’ 포장지 등 생산을 맡았던 업체와 거래를 끊고 ‘제때’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 부당 개입했다는 혐의다.
빙그레 관계자는 “승계와 관련해 구체적 계획이나 논의하고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