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무역 소액주주 상법 개정에 기대감 높아져, 성기학 '오너일가 기업' 오명 씻을까

▲ 상법 개정안의 여야 합의가 완료되며 오너일가의 영향력이 큰 기업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사진은 2022년 7월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진행된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국내 론칭 25주년 행사에서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이 축사하는 모습. <노스페이스>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이 오너일가 중심 경영을 고수해온 기업들에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지배구조 전반에 제도적 압박이 가해지며 그간 주주환원에 인색하다는 이유로 저평가됐던 기업이 다시 조명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노스페이스로 잘 알려진 영원무역도 이 흐름의 중심에 있다. 성기학 대표이사 회장을 정점으로 한 오너일가 체제를 유지해온 영원무역은 안정적 실적에도 불구하고 낮은 배당성향과 제한된 주주 소통으로 줄곧 ‘소액주주 홀대 기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상법 개정안으로 소액주주 역할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상법 개정안 합의 소식에 영원무역 소액주주들의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영원무역은 글로벌 아웃도어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분야에서 손꼽히는 강자로, 수익성과 재무 안정성 모두 탄탄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매년 연결기준 수천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꾸준히 내고 있으며 실적 면에서는 업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볼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실적 대비 배당이 적어 주주친화 기업과의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영원무역의 결산 기준 배당성향은 2022년 10.0%, 2023년 11.1%, 2024년에도 14.0% 수준에 그쳤다.

이는 동종업계 기업과 비교해도 다소 낮은 수치다. 미스토홀딩스는 같은 기간 각각 27.62%, 153.84%, 84.0%에 달하는 배당성향을 기록했고, 한세실업도 22.91%, 17.58%, 33.93% 수준을 유지했다. F&F 역시 13.81%, 15.25%, 17.72%로 영원무역보다 꾸준히 높은 배당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통상적인 결산 배당 외에 눈에 띄는 주주환원정책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영원무역은 2023년 3월30일 정관에 중간배당 조항을 신설했지만 아직까지 시행한 적은 없다. 지난해 6월엔 7년 만에 5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으나 그 외에는 이렇다 할 추가 정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동종업계와 비교하면 영원무역의 주주환원 기조는 더욱 뚜렷한 대비를 보인다. F&F는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별도 순이익의 20% 이상을 현금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활용하겠다고 공언했다. 미스토홀딩스 역시 2023년 3분기부터 분기 배당을 도입하며 주주친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소극적 주주환원 행보 뒤에는 창업주 성기학 회장을 중심으로 한 견고한 오너일가 지배체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성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50%를 넘어서며 이사회 구성, 배당 정책, 보수 체계에 이르기까지 일반 주주보다 오너일가의 이해관계를 우선한 구조가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실제 영원무역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2023년보다 50.3% 줄어든 2853억 원에 그쳤으나 성기학 회장과 성래은 영원무역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의 보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성 회장은 27억 원, 성 부회장은 63억 원을 수령하며 2023년보다 보수가 30% 이상 늘었다. 실적이 급감한 상황에서도 오너일가의 보수는 예외 없이 올라간 것이다.  
 
영원무역 소액주주 상법 개정에 기대감 높아져, 성기학 '오너일가 기업' 오명 씻을까

▲ 지난해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과 성래은 영원무역홀딩스 부회장의 보수가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상승했다. 사진은 성 부회장이 2020년 10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적 경제기업을 돕기위한 ‘핸드인핸드’ 캠페인에 동참하는 모습. <영원무역>


일각에서는 이번 상법 개정안 합의가 영원무역을 비롯한 일부 기업들에 대한 재평가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오너 친화적 경영 행태로 저평가돼 왔던 기업들이 지배 구조 전반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이에 이사들은 향후 주요 의사결정을 내릴 때 소액주주를 포함한 전체 주주의 권익을 고려해야 할 법적 책임이 커진다. 배당, 자회사 내부거래 등 민감한 사안에서도 정당성을 더 엄격히 검토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감사위원 선임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는 조항 등도 포함됐다. 특히 ‘3% 룰’은 영원무역처럼 오너일가 지분율이 높은 기업에 일정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치로 평가된다. 

기존에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각각 3%씩 의결권을 행사하며 ‘지분 쪼개기’를 통한 영향력 행사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모든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이 합산 3%로 제한된다. 성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와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을 총동원해 감사위원회를 장악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진 셈이다.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영원무역과 같이 대주주 중심 의결 구조가 고착된 기업에서는 그동안 소액주주의 주주총회 참여율이 낮아 의결권 행사 자체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전자 주주총회가 의무화되면 온라인으로 쉽게 참여할 수 있어 소액주주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정관 변경, 배당 확대 등 민감한 안건 처리에서 오너 측 독주를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는 조항 역시 이사회 내 실질적 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법제화 의지를 담고 있다.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실질적으로 검증돼야만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동안 영원무역 이사회는 오너일가와 친분이 깊은 외부 인사를 선임하려 한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실제 2015년 성 회장의 오랜 친구로 알려진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을 사외이사로 추천했으나 검찰 수사 논란이 불거지며 자진 사퇴한 사례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실적보다 구조가 주가를 가로막았던 대표 사례가 영원무역”이라며 “상법 개정 이후에는 주주를 위한 실질적인 환원정책이 없다면 외부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어 이는 기업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