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인공지능(AI) 등 첨단전략산업에 10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공약한 바 있다. 여기에 AI 산업 성장에 필수적인 에너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과 신재생에너지를 모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에너지 정책 불확실성도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주요 경제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 재정 확보를 둘러싸고 진통이 예상된다.
3일 밤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면서 그의 1호 공약이었던 ‘100조 원 AI 투자’ 프로젝트에 경제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100조 원 AI 투자’ 프로젝트는 국가와 민간이 협력해 100조 원 규모의 투자 펀드를 조성한 뒤 AI 인프라, 데이터, 인재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대한민국을 AI 3대 강국으로 끌어올리고, 모든 국민이 AI를 무료로 활용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 당선인은 이를 위해 대통령실 내 AI정책수석을 신설하고, 국가 최고인공지능책임자(CAIO)를 임명하겠다고 했다. 또 범국가적 AI 대전환 전략을 수립, 추진하기 위한 ‘AI 전략기구’도 설치한다.
새롭게 출범할 정부는 AI 반도체 생태계 확보에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AI 시대에 중요성이 커진 팹리스(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 대만 등과 비교해 경쟁력이 낮다.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 팹리스 시장 매출 점유율은 2024년 기준 2.1%에 불과하다. 게다가 2027년에는 0.8%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AI 반도체가 중요해지는 환경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는 셈이다.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설계, 생산(파운드리), 후공정 등 각기 다른 전문기업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분업 구조를 갖고 있다. 한 기업이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독자적으로 생태계에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 지원과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 당선인은 AI 데이터센터를 차세대 국가 사회간접자본(SOC)으로 규정하고, 행정절차 간소화와 인허가 타임아웃제 도입을 통해 지원에 총력을 기울겠다고 공약했다.
또 모든 국민이 AI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대표 거대언어모델을 개발해 오픈소스로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민 누구나 AI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AI 산업 육성을 위해 기존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활용하는 ‘에너지믹스’ 정책을 펼친다.
이재명 당선인은 재생에너지 태양광·풍력을 활용한 ‘RE100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2030년까지 서해안을 가로지르는 초고압직류송전망(HVDC) 송전선로를 완공해 호남권의 재생에너지를 주요 산업단지에 공급한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현재 10% 수준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AI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안해, 원자력 발전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 당선인은 5월23일 대선 TV 토론에서 “이미 지어진 원전들은 계속 잘 쓰고, 가동연한이 지났더라도 안전성이 담보되면 더 쓰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규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재명 후보는 2022년 대선 당시 감원전을 내세웠으나 현재는 원전을 에너지 믹스의 주요 축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AI 분야 100조 원 투자를 공언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 당선인이 대규모 투자 공약을 이행할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올해까지 3년 연속 세수결손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모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5년 동안 210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당선인은 이를 조세지출과 재정지출 구조조정, 세금 탈루와 체납 적발 강화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증세 없이는 사실상 대규모 재정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당선인은 증세 공약을 내놓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국채 발행을 통해 투자 재원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지만, 이 역시 국민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 나라 빚이 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모든 대선 주자들이 선심성 공약을 봇물 터지듯 쏟아내면서 역대 대선 중 가장 늦은 정책공약집과 부실하기 그지없는 대차대조표(공약가계부)를 제시했다”며 “10대 핵심공약의 재원조차 추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