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저널] 하나금융지주 '이사 70세 룰' 손질, 금융지주 왜 '연령 제한' 스스로 묶었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오른쪽)이 2025년 2월13일 서울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열린 사외이사 양성 및 역량 강화 업무협약식에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왼쪽)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씨저널] 4대 금융지주가 최고경영자 연령 제한을 도입한 이래 만 70세 이후에 회장 자리를 유지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2011년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만 69세의 나이로 4연임에 성공하자 만 70세 자동 퇴진 조항이 주목 받았다.

당시 유력 후계자였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진국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등이 사법 리스크에 휘말린 만큼 김 전 회장이 임기 3년 보장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함 회장의 승계 구도가 안정되자 1년 뒤 퇴진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뒤 하나금융지주는 2024년 12월 지배구조 내부규점 개정을 통해 만 70세 자동 퇴진 조항을 삭제했다.

◆ 70세 연령 규정 삭제 추진하는 금융지주사들

금융당국은 하나금융지주가 규정을 개정해 70세 이후 임기를 보장한 것을 놓고 부정적인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2024년 12월20일 서울 여의도 주택건설회관에서 건설업계 및 부동산 시장 전문가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함영주 회장은 혹여 연임에 도전하더라도 본인이 개정된 규정을 적용받지 않겠다고 하실 분”이라며 “선도 금융사가 일부에서 우려할 정도의 의도로 내부규범을 개정한 건 아닐 것”이라며 연령 제한 규범 삭제 조치에 탐탁지 않아 하는 발언을 남겼다.

이 원장은 과거에도 최고경영자의 나이 규정을 건드리는 금융지주를 향해 강력한 경고를 보낸 바 있다.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 시도에 급제동을 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2023년 10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 추진을 위한 협약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DGB금융에서 나이 제한을 다른 금융사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지만 이미 회추위가 열린 상황에서 현재 회장의 연임을 가능하도록 바꾼다는 것은 축구 시작하고 중간에 룰을 바꾸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최고경영자 만 70세 연령 제한 규정에 수술칼을 들이댄 금융지주로는 JB금융지주도 있다. 전북은행, 광주은행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JB금융지주는 2023년 12월 지배구조 내부규범 내 ‘사내이사의 연령 관련 조항을 ’재임 연령 만 70세 미만‘에서 ’재선임 때 연령 만 70세‘로 변경했다.

조항 변경으로 인해 1957년 1월생으로 만 68세인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은 연임에 성공한다면 3년의 임기를 모두 채울 수 있게 됐다.

금융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금융지주들이 최고경영자 연령 제한 규정 변경에 꾀하는 이유는 정력적으로 활동하며 역대급 성과를 내고 있는 최고경영자가 나이와 그로 인해 짧아진 임기로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한 고민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하나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규정 손질 논란에도 불구하고 함 회장을 차기 회장후보로 단독 추천하며 함 회장의 능력을 향한 높은 신뢰를 보냈다. 물론 금융당국이 특정 인물을 반대하지 않은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회추위는 “함영주 회장은 효율적인 경영관리를 통해 창사 이래 최대 경영 실적을 달성하는 등 그룹을 양적·질적으로 성장시켰다”며 “금융 환경 급변 속에서 경쟁력 강화를 통해 그룹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며 함 회장을 단독 추천한 이유를 밝혔다.
 
[씨저널] 하나금융지주 '이사 70세 룰' 손질, 금융지주 왜 '연령 제한' 스스로 묶었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2024년 9월24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후위기 대응 등의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 연령 제한 왜 생겼나

국내 금융지주사가 최고경영자(CEO)의 연령 제한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지배구조 모범규준 제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던 2011년의 일이다.

최고경영자 연령제한 규정이 도입된 가장 큰 원인으로는 신한금융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이 소송전을 벌인 ‘신한 사태’가 꼽힌다.

라 전 회장은 2010년 9월 신 전 사장이 회삿돈을 횡령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이에 신 전 사장은 라 전 회장의 지시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건넬 당선 축하금 3억 원을 마련하다가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며 맞불을 놨다.

금융사고와 내부통제 문제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금융지주회장의 과도한 연임이 꼽혔다. 당시 라 전 회장이 금융권 최초로 4연임에 성공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2010년 2월 금융지주의 윤리경영과 내부통제 강화를 뼈대로 하는 그룹내부통제기준 모범규준을 제정하며 압박을 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장 발 빠른 움직임을 취한 것은 은행장 3연임, 회장 3연임을 이어가던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초대회장이었다.

하나금융지주는 2011년 1월 회장의 연령 제한을 만 70세로 정하는 규범을 채택했다. 임기 중간에 만 70세가 되면 해당일 이후 최초로 소집되는 정기주주 총회일에 자동 퇴진하는 조항도 넣었다.

신한 사태가 터졌던 신한금융지주는 내부 수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2011년 4월 회장 연령 제한 규정을 도입했다. 회장 신규 선임 때의 연령 제한은 만 67세로 하고 이후 연임을 하더라도 만 70세에는 무조건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이후 KB금융지주가 2015년, 우리금융지주가 2019년 70세 연령 제한 규범을 받아들이며 금융지주 나이 제한은 대세로 자리잡았다. KB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자동 퇴진 조항을 넣지 않아 기존 임기를 그대로 보장하도록 했다.

다만 KB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에서 규정 도입 이래 실제로 만 70세 이후에도 회장을 유지한 이는 현재까지 한 명도 없다.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은 만 68세이던 2023년 연임을 포기하며 2014년부터 유지해 오던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8년부터 우리금융지주의 회장을 지내던 손태승 회장 또한 2023년 만 64세의 나이로 퇴진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