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홈플러스 사태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신뢰 상실의 위기에 놓였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지난해 3월 투자자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한국과 일본을 아시아 주요시장으로 뽑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MBK파트너스는 한국시장에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홈플러스가 4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사태는 진정은커녕 유통업계를 넘어 금융권과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어서다.
김병주 회장이 이번 사태를 잘 넘기지 못하면 한국시장에서 신뢰를 잃으며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사업에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1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개시에 따라 금융채권 회수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일부 금융사와 MBK파트너스가 법적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나온다.
신영증권 등 홈플러스 단기채권를 취급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전날 첫 공동회의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홈플러스 카드 대금채권을 바탕으로 발행된 유동화증권 등에 투자한 투자자의 손실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일부 금융사는 MBK파트너스가 기업회생 등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유동화증권을 발행했다고 의심하며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홈플러스에 투자한 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와 관련, 금융권의 긴장감은 앞으로 점점 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전날 각 증권사에 공문을 보내 홈플러스 관련 채권을 개인에게 판매한 현황을 12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홈플러스 어음은 전날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부도 처리되기도 했다.
정치권도 홈플러스 사태에 적극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티몬 위메프 사태를 겪은 상황에서 홈플러스에 입점한 소상공인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8일 전체회의에서 금융당국 등을 상대로 홈플러스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를 할 계획을 세웠다. 정무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김병주 회장을 증인으로 부르는 안건도 채택했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수석부의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정무위 증인 출석 요구에 응하고 국민 앞에 나와 답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홈플러스 소유주인 MBK파트너스가 배를 불리는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 협력업체,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며 “국회는 지금까지 MBK파트너스가 한국사회에서 기업을 어떻게 ‘수익 창출 도구’로 악용해왔는지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홈플러스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는 등 MBK파트너스를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홈플러스 노조도 지속해서 MBK파트너스 책임론에 힘을 싣고 있다. MBK파트너스의 무책임한 경영과 기업회생신청에 따라 직영과 협력업체 노동자 10만 명이 해고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도 홈플러스에 납품을 재개하고 있지만 여전히 거래대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국민 여론 역시 국민연금이 홈플러스에 수천억 원이 물려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좋은 상황은 아니다.

▲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와 홈플러스지부 조합원들이 6일 MBK파트너스 사무실이 있는 서울 광화문D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주 회장이 국내사업에서 최대 위기를 맞은 것으로 평가된다.
김 회장이 그동안 기업 사냥꾼이라는 지적을 받는 동시에 매각 실패, 인수회사 노조와 갈등 등으로 시장참여자의 입길에 오를 때는 많았지만 이번 사태처럼 시장의 전방위적 압박을 받은 적은 없었다.
더욱이 이번 사안은 기업회생 신청 직전까지 채권을 발행했다는 점, 기존 채권자들과 상의 없이 기업회생을 신청했다는 점 등을 놓고 MBK파트너스의 신뢰가 걸려있는 문제로도 여겨진다.
MBK파트너스와 같은 사모펀드(PEF) 운용사는 결국 돈을 빌려 사업을 추진하는 금융사다. 신뢰를 잃으면 향후 사업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MBK파트너스는 가뜩이나 기업 사냥꾼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데 홈플러스 사태가 지속해서 악화한다면 정치권의 압박, 금융당국의 규제 등에 따라 국내 사업 여건이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시장에서는 당장 이번 사태가 현재 MBK파트너스가 진행 중인 고려아연 경영권 다툼과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부 인수전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바라본다.
중장기적으로 이미지 회복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요 기업의 매각 작업에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MBK파트너스가 동아시아 대표 펀드를 지향한다지만 김 회장이 한국을 기반으로 글로벌 사모펀드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만큼 한국은 MBK파트너스의 핵심 시장으로 평가된다.
김 회장은 1963년생으로 10대 때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해버포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영학으로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골드만삭스, 미국 사모펀드운용사 칼라일그룹 등을 거친 뒤 2005년 자신의 이름을 딴 MBK(마이클 병주 김, Michael Byungju Kim)파트너스를 세웠다.

▲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사태로 한국시장에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개시가 결정된 4일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 모습. <연합뉴스>
김 회장은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며 1994년 포항제철의 뉴욕거래소 상장에 크게 기여하고 2000년 칼라일그룹의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하면서 국내외 금융권의 주목을 받았다.
MBK파트너스를 세운 뒤에도 한국시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거래를 이끌며 MBK파트너스를 국내 최대이자 동북아 대표 사모펀드로 키워냈다.
MBK파트너스는 그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사세를 불려온 것으로 평가된다.
김 회장은 지난해 연례서한에서 “MBK파트너스는 300억 달러 이상의 자본을 관리하고 있다”며 “2005년 회사 설립 이래로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43건의 투자를 실현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187억 달러의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배분했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와 MBK파트너스는 기업회생절차를 통해 경영정상화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4일 공지를 통해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잠재적 자금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며 “최대한 빨리 회생 절차를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MBK파트너스 역시 “홈플러스 회생절차는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향후 잠재적 단기 자금 부담을 선제적으로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백의종군의 자세로 회생절차를 통한 홈플러스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협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