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롯데칠성음료가 지난해 회사 창립 이래 최초로 연매출 4조 원을 넘었지만 증권가는 '내수 부진'에 더 주목하고 있다. 사진은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 <롯데칠성음료>
증권가는 ‘내수 부진’을 이유로 롯데칠성음료를 향한 눈높이를 계속 낮추고 있다.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는 수년 동안 수익성 악화와 관련한 해법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소비 심리 악화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재로서는 기댈 만한 구석이 해외시장 밖에 없어 보인다.
11일 증권가 의견을 종합하면 롯데칠성음료가 실적과 관련해 내수 부진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김혜미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롯데칠성음료의 경우 해외 실적은 계속해서 긍정적이지만 내수 침체와 높은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주영훈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소비 침체로 수요가 감소했고 일부 원재료의 가격 상승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국내 영업 상황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롯데칠성음료 목표주가도 줄줄이 하향조정되고 있다. 현대차증권은 이날 롯데칠성음료 목표주가를 기존 17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내렸다. 2년 전만 해도 25만 원이던 목표주가는 계속 미끄럼틀을 탔다. KB증권과 신한투자증권도 이날 롯데칠성음료 목표주가를 기존보다 각각 2만 원, 1만 원 내려 15만 원으로 정했다.
롯데칠성음료를 향한 기대가 낮아지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일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연매출 4조 원을 넘어선 사실을 강조했다. 종합음료기업이 연매출 4조 원을 넘은 것은 롯데칠성음료가 최초다. 하지만 외형 성장보다는 수익성 개선에 더 초점을 맞춰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가 증권가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내수 부진이 업계 최초의 연매출 4조 원 달성이라는 성과를 가렸다는 평가다. 롯데칠성음료의 주요 사업인 음료사업을 보면 지난해 내수에서 매출 2.9%, 영업이익 35.7%가 빠졌다. 영업이익 감소 폭은 금액으로 579억 원인데 이는 지난해 주류사업에서 거둔 영업이익의 1.7배에 이른다.
주류사업에도 곳곳에 경고등이 들어와 있다. 지난해 4분기 주류 내수사업만 보면 2023년 4분기보다 매출이 늘어난 제품군이 소주(6.5%)밖에 없다. 맥주 매출이 28.4% 빠지며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즉석섭취음료(RTD)와 스피리츠의 매출도 각각 20.8%, 16.9% 뒷걸음질했다. 지난해 주류사업에서 거둔 영업이익은 2023년보다 3.4% 늘어난 347억 원이지만 이는 음료사업에서 빠진 영업이익의 공백을 메우는 데는 턱없이 역부족이다.
롯데칠성음료의 내수 부진은 박윤기 대표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는 최고경영자(CEO)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상무에 오른 지 2년 정도 된 2020년 11월 전무로 승진하며 대표이사에 발탁됐는데 이는 선배급 임원 10명가량을 제치고 선임된 ‘깜짝 발탁 인사’였다.
박 대표는 롯데칠성음료에서 마케팅팀장과 마케팅부문장, 경영전략부문장을 역임한 영업과 전략 전문가로 평가받는데 실제로 취임 이후 롯데칠성음료의 성장을 주도하며 기대에 부응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2년 사이 분위기가 반전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이 시기 매출 2조 원 시대에서 3조 원 시대, 4조 원 시대를 열었지만 공교롭게도 영업이익은 2년 연속 후퇴해 연간 영업이익 2천억 원이라는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고금리와 고환율 탓에 내수 부진의 흐름이 언제 끊길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박 대표가 기댈 곳은 해외 자회사밖에 없다. 내수 곳곳에 경고등이 들어온 것과 달리 해외사업에서는 청신호가 많다.
롯데칠성음료가 지난해 연매출 4조 원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일등공신인 필리핀사업에서 매출 1조294억 원, 영업이익 74억 원을 냈다. 2023년보다 매출은 9.0% 늘었고 영업이익은 흑자로 돌아섰다. 필리핀사업보다 외형이 작은 파키스탄과 미얀마사업은 오히려 수익성 측면에서 효자다. 롯데칠성음료가 미얀마와 파키스탄에서 번 지난해 영업이익은 각각 186억 원, 149억 원인데 이는 필리핀사업보다 2~3배 많은 수치다.

▲ 롯데칠성음료는 해외사업을 더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사진은 2024년 5월2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IFC 2024' 행사에서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오른쪽에서 여섯번째)가 글로벌 음료회사 펩시코의 '2023 APAC 올해의 보틀러'에 선정된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롯데칠성음료>
박 대표는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해외사업의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앞으로 글로벌 사업 확대에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음료기업 펩시코와 협력한 보틀러 사업 확대가 한 축으로 파악된다. 보틀러 사업은 펩시코 등 음료 제조사에서 음료 원액을 받아 여기에 물과 탄산가스 등을 넣어 완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유통·판매하는 사업을 말한다.
롯데칠성음료는 1976년부터 펩시코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데 최근 아시아권에 한정해 펼치던 보틀러 사업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표도 보틀러 사업의 확대에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펩시코가 선정한 ‘올해의 보틀러’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이런 이력을 감안할 때 해외사업 확대의 기회를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꿈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한 미얀마에서도 순항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미얀마법인은 페트라인 증설을 완료했으며 올해는 생산능력 확대에 맞춰 에너지음료 ‘스팅’과 ‘펩시콜라’ 등에 영업역량을 집중해 매출 확대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회사는 현재 펩시 보틀러 사업을 국내뿐 아니라 필리핀과 파키스탄, 미얀마에서 운영하고 있다”며 “현재 글로벌 사업 확장을 검토하고 있으며 미국 등 선진시장의 보틀러 사업 확대도 기회요소로 살펴보고 있지만 현재 구체적으로 확정되거나 진행되는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