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최신 반도체 기술 대만에 유지" 의지 재확인, 트럼프 압박에 선제 대응

▲ 웨이저자 TSMC CEO가 최신 반도체 파운드리 기술을 대만 내 공장에서만 운영한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의 요구에 따라 미국 공장에 차세대 공정 생산투자를 서두를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된다. 대만 신주과학단지에 위치한 TSMC 연구개발센터.

[비즈니스포스트] TSMC가 가장 앞선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을 당분간 대만 내 공장에서만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TSMC에 2나노를 비롯한 신기술 투자를 압박할 가능성이 떠오르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TSMC의 반도체 기술은 대만의 국가 안보를 지키는 ‘실리콘 방패’에 핵심인 만큼 미국과 외교 및 무역 협상에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19일 공상시보 등 대만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TSMC는 반도체 사업의 주도권을 미국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TSMC의 해외 투자가 대만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전망은 미국 애리조나에 대규모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발표했을 때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미국이 대만에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의존하지 않게 되면 중국의 침공과 같은 위협에서 대만을 지키거나 외교 및 경제적으로 협력할 이유가 줄어든다는 이유다.

공상시보에 따르면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국립대만대에서 특별강연을 진행할 때도 TSMC가 ‘USMC’로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다.

TSMC는 대만 반도체 제조회사(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의 약자인데 사실상 미국(US) 반도체 기업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웨이저자 CEO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려면 “TSMC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짧은 답변을 내놓았다. 대만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뚜렷이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최근 TSMC 콘퍼런스콜에서도 최신 반도체 공정 기술은 대만 내에서만 운영되어야 한다며 미국 공장 가동이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TSMC 연구개발(R&D) 설비가 모두 대만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기술력이 충분히 안정화될 때까지는 새 공정을 대만 공장에서만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적 설명도 이어졌다.

웨이 CEO는 이런 상황이 대만 정부의 정책과도 무관하다며 TSMC는 고객사 수요에 맞춰 해외 투자에 나서는 지금의 전략을 앞으로도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만 정부는 최근 TSMC가 최신 반도체 공정 기술을 대만 공장에서만 운영해야 한다는 규칙을 완화해 해외에도 자유롭게 생산 투자에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는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해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TSMC "최신 반도체 기술 대만에 유지" 의지 재확인, 트럼프 압박에 선제 대응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 행정부가 TSMC와 대만 정부에 미국 내 첨단 반도체 투자 확대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TSMC가 최근 가동을 시작한 미국 애리조나 공장은 애플과 엔비디아 등 고객사의 4나노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21년 말 상용화된 기술이다.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첨단 군사무기 등에 필수적인 첨단 반도체 공급망 자급체제 구축을 목표로 한 만큼 현재 주력으로 쓰이는 3나노 또는 올해 양산이 계획된 2나노 파운드리를 애리조나 공장에 도입하라는 요구를 내놓을 이유가 충분하다.

TSMC는 이미 미국에 이러한 기술 도입을 예고했지만 양산 시기는 2028년 전후로 대만에서 생산을 시작하는 시점과 비교해 크게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기술을 빼앗아 TSMC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수입관세 부과를 비롯한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대만이 미국의 군사력 및 주요 산업에 국가 안보와 경제를 모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트럼프 정부가 본격적으로 압력을 넣기 시작하면 TSMC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웨이저자 CEO가 민감한 상황에도 TSMC의 최신 기술을 대만에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은 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전 세계 첨단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TSMC의 반도체 생산 능력은 대만의 실리콘 방패에 핵심이다. 반도체 기술 경쟁력으로 외교 및 경제적 지위를 지켜내고 있다는 의미다.

만약 TSMC가 트럼프 정부 요구를 받아 미국에 최신 공정기술 도입을 서두른다면 당장의 리스크는 피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만의 실리콘 방패를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웨이저자 CEO는 미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 소재 공급망과 전문인력 기반 부족도 분명한 한계로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 TSMC의 최신 기술을 도입하는 시기를 무리하게 앞당길 수 없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TSMC는 이른 시일에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 공장 가동식을 개최할 계획을 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참석할 가능성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과 TSMC 경영진도 대거 자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국 반도체 투자와 관련한 구체적 계획도 이 자리에서 논의될 공산이 크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