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대한상의 '탄소중립' 세미나, 최태원 "에너지 300조 수입에서 그만큼 수출로 바꿀 수 있다"

▲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4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는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 교수.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기업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궁리해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2024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돈 문제를 무시한 채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생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탄소중립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총회에서 세계 각국은 글로벌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아래로 억제하기로 협의했는데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탄소중립을 실천하기로 했다.

한국도 2018년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에 의거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국제적으로 탄소중립을 달성 수단으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전력화(electrification)’다. 기존에는 석탄이나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던 것을 무탄소 발전 수단으로 생산된 전기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조 교수는 “산업부문이 탈탄소화에 성공하려면 열 에너지 사용 분야와 수송부문에서 모두 전력화가 완료돼야 하는데 기존에는 운반이 용이한 에너지원이었던 석유와 달리 전기를 필요한 곳에 조달하는 것은 까다롭다"며 “전기라는 것은 굉장히 값비싸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자원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에서 전력 송전 효율은 평균 35%에 불과했다. 전기는 송전될 때 저항으로 손실이 일어날뿐 아니라 전압 조절 같은 여러 과정을 거쳐 날아가는 양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산업에 필요한 전력 생산량을 확보할 만큼 발전소를 세우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송전망"이라며 “송전망 확보 자체도 지역 사회와 갈등 때문에 해결이 난망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강원도와 경상남북도 등 동남권에 편중된 발전설비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인프라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2년 지역주민 반대로 공사가 중단됐던 ‘밀양 송전탑 사태'가 있다. 당시 주민들은 송전탑에서 방출되는 전자파가 미치는 건강 영향을 우려해 집단 반대 시위를 벌였다. 결국 송전탑은 일정을 한참 넘긴 2014년에 가서야 완공됐다.

조 교수는 “이같은 지역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돈 밖에 없다"며 “정부가 이런 곳에 돈을 투입하려면 국민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전력화 저해 요소를 돈으로 해결했다 하더라도 현행 정부 탄소중립 계획에 기업들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이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조 교수는 “미국 정부가 마련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기업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돈을 벌지 미리 분석해놓은 것과는 대조된다"며 “우리나라 정부는 기업들이 탄소중립 기업으로 재탄생했을 때 미래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 궁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 상대인 중국과 대만을 보면 이들은 국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무시할 수 있는 힘이 있거나 의무가 없기 때문에 저렴한 생산단가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열심히 비용 증가를 감수하고 탄소배출 차원에서 깨끗한 제품을 생산한다 하더라도 미래에는 몰라도 당장은 업계 경쟁력은 희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체 거버넌스(지배구조) 차원에서 정부 정책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을 보면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 전략을 명목으로 2030년까지 150조 엔(약 1360조 원)을 기업과 산업 분야에 지원하기로 했고 채권 발행을 통해 이미 1조5천억 엔을 조달했다.

유럽연합(EU)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친환경을 명목삼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과 삼림전용방지법(EUDR) 등을 도입하고 있다.

조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글로벌 탄소 무역 규제는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기조를 보일 것"이라며 “우리 정부의 현실적이고 실리적 판단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현장] 대한상의 '탄소중립' 세미나, 최태원 "에너지 300조 수입에서 그만큼 수출로 바꿀 수 있다"

▲ 발언하는 김소희 국민의 힘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비즈니스포스트>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이날 행사에는 최태원 회장,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김소희 국민의 힘 의원,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현장 토론에 참여한 김소희 국민의 힘 의원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말하는 유럽의 CBAM이나 미국 IRA 대응전략을 보면 굉장히 파편화돼 있고 반도체,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을 지킬 수 있는 산업정책이 없다"며 “이들 제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이 대기업이라 지원을 하면 정부가 대기업을 지키기 위해 싸고 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실상은 이들도 저탄소 전환에 허덕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기후대응은 국익 차원에서 대응을 해야 할 문제"라며 “우리가 지키고 싶은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을 지원할 수 있는 금융 조달을 이행할 산업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계와 민간 분야에서 자금을 조달해 기업들을 지원할 수 있는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민동준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탄소중립을 추진한다고 한다면 일부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좌초기업이 될 것"이라며 “이들 기업에게 문제를 자체 영업이익만으로 해결하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기 때문에 금융으로 이들을 지원해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교수는 “탄소중립은 피할 수 없는 길이고 여기까지 가는 데에는 그저 속도와 시간만 필요할 뿐"이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가는 녹색산업 국가가 되어 그 기술이 없는 국가들에 설비를 파는 먹거리를 가진 나라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박성택 산업부 차관은 "산업부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산업청책 수립을 준비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재생에너지는 내팽개치고 원자력발전만 추진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일도 있는데 이것은 틀린 일이고 산업부에서는 해상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의 가능성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폐회사에서 "대한상의는 탄소중립과 관련된 논의를 하고 있는데 아직 해결책이 마련됐다고 말하긴 어렵다"며 "솔직하게 말하자면 탄소중립은 하기 싫은 숙제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이 에너지 수입에 쓰는 돈이 매년 300조 원에 달하는데 탄소중립을 달성하면 300조 원을 수입이 아니라 수출로 바꿀 수 있다 생각하면 이게 굉장히 하고 싶은 일로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며 "따라서 우리가 탄소중립을 대하는 관점을 조금 바꿀 필요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화석연료 의존도를 하루아침에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땅속에서 나오는 자원이 아니라 기술로서 승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에너지 생산자에 의존하는 구도를 바꿀 수 있는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