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최근 금리인하 결정이 가계부채, 부동산 금융 리스크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의원들의 지적에 이렇게 말했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오른쪽)가 14일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 생중계 영상 갈무리>
한국은행은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서 내수경기 부양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가계부채 증가 대응을 두고는 딜레마가 더욱 깊어진 상황이다.
이 총재는 앞서 두 번의 국감에서 통화정책과 가계대출 증가에 관한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노련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국감은 길었던 긴축정책에서 완화로 돌아선 뒤 맞이하는 첫 국감으로 가계부채 관리 과제가 더욱 부각되면서 이 총재도 한층 신중한 태도로 답변했다.
이날 한국은행 국감에서는 오전 내내 금리인하 결정이 가계부채에 미칠 영향에 관한 우려와 대응방안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했는데 가장 큰 걱정은 가계부채 증가 우려”라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증가폭이 줄었다고 하지만 주담대는 9월에도 5조 원이 증가하는 등 전체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 의원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금융상황보고서에서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낮아지면 1년 뒤 서울지역 주택가격은 0.83%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당장은 정부의 강력한 가계대출 억제 정책으로 기준금리 인하가 바로 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부동산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발표 뒤 이미 호가가 올라가고 매수 문의가 활발해지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내수부진의 심각성과 금리인하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세 우려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우려하고 있나”면서 “금융시장에 충격을 미치지 않고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냐”고 질의했다.
이런 의원들의 질의에 이 총재는 차분한 태도로 대응하면서도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하고 신중한 기조만을 이어갔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자체의 양을 줄이려고 하다보면 금융시장에 충격을 안 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가계부채는 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이번에 금리를 낮춘 것은 정부의 가계대출 정책 효과가 나타난 덕분이지만 낮은 금리를 유지하면 또 정책 효과가 희석될 수 있다”며 “중동 사태 불안정성, 11월 이후 미국 대통령선거 등 대외적 상황과 수도권 부동산 가격, 가계부채 증가 추세 등에 금리인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유심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은행들이 부동산대출로 쉽게 수익을 높이는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이날 국감에서 쏟아진 금리인하 ‘무용론’에는 크게 반박하지 못했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금리인하는 정책 효과로 보면 실패작”이라며 “선제적이지 못하고 후행적 인하로 시장에 이미 인하 기대가 선반영돼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오히려 금융당국의 대출규제 행정지도로 가산금리가 높아지면서 대출금리가 상승하는 추세”라며 “가계부채와 수도권 집값은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고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내수부양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정부의 부동산 부양정책에 강력히 대응해야 했는데 미온적 대처로 일관했다고 꼬집은 셈이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여러 요인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올해 상반기까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상승, 가계부채 증가 시점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다만 이 총재는 부동산시장을 포함한 가계대출 관리에 있어 금리인하 속도를 조정하는 것으로 대응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한국은행의 경제, 시장 데이터로 정부 정책 집행을 도울 수 있다고 봤다.
이 총재는 이번 금리인하가 내수부양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에는 “금리인하가 만병통치약이 아닌 것은 사실”이라며 “한 차례 인하로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당국이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와 총량 관리에 실패했고 가계부채 관리를 못해서 내수가 극심한 정체를 겪고 있다”며 “그래서 한국은행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도 가계부채와 관련해 한국은행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했다.
최 의원은 “한국은 현재 가계부채의 질이 많이 악화돼 있다”며 “또 가계부채에서 나아가 기업, 정부부채 등 국가총부채에 한국은행이 경각심과 책임감을 지니고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 속에서도 이 총재는 추가 금리인하 시기, 금리인하 폭 등과 관련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총재는 “부동산, 특히 수도권 집값은 한 번 올라가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금리인하를 기대하는 수요층의 심리를 잘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금융시장 안정에 주는 영향을 본 뒤 (추가 금리인하) 판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135조7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보다 5조7천억 원 늘었다.
9월말 기준 은행권 주담대 잔액은 896조8천억 원으로 전달보다 6조2천억 원 증가했다. 8월(8조2천억)보다는 증가폭이 축소됐지만 전체 증가세는 지속되고 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