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이 전 미국 대통령 2024년 6월1일(현지시각) 뉴저지주 뉴어크의 프루덴셜 센터에서 열린 UFC 302 경기에 참석하고 있다. 그가 남성적, 반(反)페미니즘적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그가 집권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다수의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해, 3년4개월 만에 2%대로 내려 앉았다. 무엇보다도, 물가가 잡혀야만 금리인하를 할 수 있다고 밝혀온 미국 연준도 9월 정책회의에서 금리인하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 이제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은 진정됐다는 합의가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23일 매년 연준의 정책방향을 시사하는 와이오밍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미국의 통화정책을 조정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지난 8월2일에는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7월 실업률이 4.3%로 예상보게 높게 나오면서, 경기 침체 우려로 미국 등 세계 증시가 폭락한 바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갑자기 경기침체 우려로 바뀐 셈이다.
어쨌든 인플레이션은 이제 통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잦아드는 형국이다. 이번 인플레이션이 원인이 코로나19 대확산 사태에 따른 공급망 교란이냐,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대적 재정지출 정책 때문이냐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대적인 지출도 따지고 보면, 코로나19 대확산에 대한 대처 차원에서 나온 것을 감안하면, 코로나19가 적어도 이번 인플레이션의 선행 원인임은 부정하기 힘들다.
파월 의장도 인플레이션을 두고 “코로나19 대확산과 관련된 왜곡들”을 지목했으며, “이런 요인들의 해소가 예상보다는 오래 걸렸으나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 해소에 큰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인플레이션의 책임을 당시 정부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경제에 대한 대중들의 심리와 기대를 측정하는 데 자주 인용되는 미시간대학교 소비자심리지수는 올해 상반기까지 부정적이었고, 바이든 대통령보다는 트럼프에 대한 호감을 보여줬다.
소비자심리지수는 7월까지 4개월 연속 하락했다. 바이든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기 전인 7월에는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51%가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예측한 반면, 바이든의 승리는 37%에 불과했다.
하지만 8월 소비자심리지수는 69.4로 7월의 66.4에서 상승 전환했다. 대선 승리 예측에서도 새롭게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카멀라 해리스가 54%, 트럼프가 36%로 역전했다.
지난 7월 초 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서 '인플레이션에 누가 더 잘 대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5%는 트럼프, 27%는 바이든으로 대답했다. 트럼프가 무려 18%포인트나 앞섰다. 하지만, 8월 조사에서 '의료보험, 주거, 식품 비용 등 문제에서 누구를 더 선호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4%는 해리스, 34%는 트럼프라고 답했다. 역전된 것이다.
인플레이션의 정치적 책임을 놓고 대중들은 이제 이전보다는 민주당에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오는 11월 대선에서 인플레이션 등 경제는 여전히 승패를 가를 최대 요인이고,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여전하다.
그럼, 만약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될까?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8월 경제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인플레이션이 악화된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 조사에 응한 월가와 학계의 50명 전문가 중 56%는 트럼프 정부에서 인플레이션이 악화될 것, 16%는 완화될 것, 나머지는 차이가 없다고 답했다.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주장하는 고율 관세 때문이다. 트럼프는 국내 산업과 일자리 보호를 위해 10% 보편관세, 특히 중국에게는 더 높은 관세 적용을 주장했다. 최근에는 20%까지 올렸다.
관세가 높아지면, 해당 품목의 가격이 오른다. 이에 더해, 보편적인 관세는 미국으로 오는 값싼 제품의 막아서, 추가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의 주장대로 20% 보편관세, 그리고 중국에게는 60% 관세를 물리면, 미국의 중위 소득 구간(40~60% 구간) 가정은 한해에 2600달러나 더 물가 부담을 준다.
트럼프는 보편관세를 인상하면, 무역적자가 줄고 무역흑자가 늘어나, 국내산업이 부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관세를 인상하면, 국내 산업에 필요한 수입 물품 비용도 올라가, 그런 효과가 날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관세인상은 달러의 가치를 상승시켜, 수출경쟁력을 더 약화시킨다는 것이 경제학의 입증된 원리이다. 트럼프는 또 달러 약세를 주장하고 있다. 고율 관세와 달러 약세는 양립할 수 없다.
트럼프가 주장하는대로 고율 관세에 달러 약세 유지가 장기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를 단기간이라도 억지로 관철하려고 한다면 금리인하를 해야 한다. 금리인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된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고율관세, 달러 약세, 금리인하 모두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집권시 발생할 인플레이션이라는 트럼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온다.
트럼프가 고율관세와 달러 약세를 주장하는 배경은 제조업 등 국내 산업과 일자리 육성이다. 외국의 제품들이 미국으로 몰려들어와 제조업 등 국내 산업을 약화했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서 제조업 등 국내산업이 약화된 근본적인 배경은 경제의 기본적 원리인 비용 때문이다. 즉, 외국에서 더 싼 비용으로 더 품질 좋은 제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제학의 기본원리인 비교우위에 입각해, 이제 금융이나 서비스 산업에 경쟁력을 가지고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추세가 미국 내 중하류층들을 위한 일자리를 악화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관세나 달러 약세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는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도 별로 차이가 없다. 그는 최근 일본 자본의 유에스스틸의 인수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였던 유에스스틸의 부진은 비용 등에서 경쟁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미국 제조업으로서는 상징적인 회사이기에 이 회사 하나 정도는 일본 회사로의 매각을 막을 수도 있고, 미국 경제에 큰 영향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미국 제조업 등 국내 산업을 육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트럼프의 재집권은 미국 경제에 또 다른 회오리를 몰고올 공산이 크다. 물론 해리스가 당선된다 해도, 미국이 요즘 꿈꾸는 제조업 등 국내 산업 부흥이 여전히 백일몽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