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물량공세로 '덤핑' 본격화, 파운드리와 메모리 업황 변수로

▲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의 공격적 시설 투자 확대를 주도하며 구형 파운드리와 메모리반도체 '덤핑'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중국 SMIC 반도체 생산공장.

[비즈니스포스트] SMIC와 화훙반도체 등 중국 파운드리 기업이 미국 정부의 반도체 규제에 대응해 시설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며 점유율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들도 뒤를 따라 물량공세 전략에 힘을 실으면서 공급 과잉을 주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타격을 줄 가능성이 나온다.

2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반도체 조사기관 SEMI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 파운드리 생산 능력이 올해 15%, 내년 14%의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 전체 시장 성장률은 각각 6%, 7%로 전망되는데 중국이 두 배 이상의 성장폭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생산 점유율이 30%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시스템반도체뿐 아니라 메모리 설비 투자도 공격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이 미국 정부의 기술 규제에 대응해 물량공세 전략에 더욱 힘을 실으면서 이러한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바라봤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중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와 기술 수출을 제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뒤에는 이러한 규제가 더욱 강화돼 압박을 키웠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반도체 장비 수입에 더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고려해 자국 기업의 설비 투자를 지원하면서 선제적으로 생산 능력을 확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국 규제에 아직 영향을 받지 않는 구형 반도체 생산을 크게 늘려 저가에 공급하며 전 세계가 중국산 반도체에 의존을 높이도록 하는 ‘덤핑’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사기관 테크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시장에서 반도체 장비 매출은 연간 4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매출 증가율이 1% 안팎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중국은 이미 디스플레이와 전기차, 배터리와 태양광 제품 등 주요 산업에서 덤핑 전략을 시도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이고 다른 국가의 경쟁사에 타격을 입히는 전략으로 성과를 봤다.

이러한 전략이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및 메모리반도체까지 확대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와 마이크론 등 글로벌 주요 기업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구형 파운드리와 메모리반도체는 기술 격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상황에 따른 업황 변동이 반도체 제조사들의 실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심화에 따른 여파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퍼질 공산이 커진 셈이다.
 
중국 반도체 물량공세로 '덤핑' 본격화, 파운드리와 메모리 업황 변수로

▲ 중국 YMTC 낸드플래시 반도체 생산공장 조감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의 반도체 설비 투자 및 수출 확대가 앞으로 2년 동안 글로벌 시장에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을 이끌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이 생산 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리더라도 고객사 수주를 확보하지 못 한다면 이러한 전략은 효과를 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증권사 모간스탠리에 따르면 화훙반도체 같은 기업의 구형 파운드리 공정 생산라인은 이미 최대치에 가까운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목표로 현지 제조사들에 자국산 부품 사용을 꾸준히 압박하고 있는 점도 이러한 추세에 더욱 힘을 싣는다.

세계 반도체 최대 시장인 중국의 수요가 대부분 자국 기업의 제품으로 충족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 등이 현지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은 연간 21%, 마이크론은 34%에 이르는 감소폭을 보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은 네덜란드와 일본 등 동맹국과 힘을 합쳐 대중국 반도체 규제를 꾸준히 강화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에 집중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규제 강화가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노력을 더욱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실제로 이를 실행으로 옮기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조성한 3차 반도체산업 육성 펀드는 3440억 위안(약 65조6천억 원) 규모로 조성돼 자국 기업의 시설 투자 및 연구개발 자금 지원에 활용된다.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이 이에 힘입어 공격적인 생산 투자에 이어 기술력마저 글로벌 경쟁기업을 따라잡기 시작한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에 위기가 더욱 커질 수 있다.

다만 중국이 고대역 메모리(HBM)와 첨단 파운드리 등 고부가 반도체 사업에서 경쟁력을 얻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미국의 기술 규제가 점차 효과를 내며 구형 반도체 이외 분야로 영향력을 넓히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힘을 얻는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