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에 이례적으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조계 출신의 강한승 대표이사(사진)의 의중이 반영돼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
[비즈니스포스트] 쿠팡이 ‘검색순위 조작’과 관련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와 각을 세우는 모습을 놓고 사기업의 대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쿠팡의 이런 움직임은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의 의중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강 대표의 결단 없이는 정부의 판단을 정면으로 거스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강 대표가 법조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던 만큼 공정위의 판단을 놓고 법원에서 ‘다투어 볼 만하다’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행보일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다.
18일 쿠팡의 최근 움직임을 살펴보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검색순위 조작’과 관련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나온 직후부터 여태까지 쿠팡은 예상보다도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쿠팡은 과징금 1400억 원 부과 조치가 내려진 13일부터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의 입장자료를 통해 공정위의 판단이 잘못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영업일로 따지면 매일 공정위의 시각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도 공정위의 판단이 부당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쿠팡 모회사인 쿠팡Inc는 14일 관련 공시를 통해 “공정위는 검색순위와 관련해 한국 및 전 세계의 모든 이커머스 플랫폼이 행하는 관행과 관련해 쿠팡이 한 행위가 기만적이며 한국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했다”며 “쿠팡은 우리의 관행이 기만적이거나 한국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론전에도 주력하고 있는 모양새다.
쿠팡은 “공정위가 쿠팡의 이러한 상품 추천 행위를 모두 금지한다면 우리나라에서 로켓배송을 포함한 모든 직매입 서비스는 어려워질 것이다”며 “쿠팡이 약속한 전국민 100% 무료배송을 위한 3조 원의 물류투자와 로켓배송 상품 구매를 위한 22조 원의 투자 역시 중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약 3달 전에 발표한 물류인프라 3조 원 투자 계획을 철회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쿠팡은 2026년까지 새 풀필먼트센터 확장과 첨단 자동화 기술 도입, 배송 네트워크 고도화 등에 모두 3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3월 말에 밝힌 바 있다.
쿠팡은 실제로 부산에 지으려던 물류센터의 기공식을 취소하기도 했다. 내부적으로 기공식을 진행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행사를 취소했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를 향한 강한 반발의 차원에서 움직임을 보였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쿠팡의 이런 움직임을 놓고 다소 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소비자의 편익을 앞세워 정부의 조치에 으름장을 놓는 태도가 적절하지 않은 모양새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커머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다른 플랫폼이나 업계에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며 “내부적으로 위기감이 상당하겠지만 이런 정도로 강하게 반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쿠팡 입장에서 보면 공정위의 조치에 강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은 맞다고 볼 수 있다. 공정위가 쿠팡에 잠정 부과한 과징금 1400억 원은 지난해 기준 500대 기업에게 내려진 과징금의 절반이 넘는 규모일뿐 아니라 쿠팡이 지난해 낸 영업이익 6200억 원과 비교해도 상당한 부담이 가는 금액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쿠팡의 검색순위 조작 사태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2021년 3월 이후 약 3년 만에 마주한 가장 큰 악재라는 평가도 있다.
쿠팡은 2021년 6월 이천물류센터 화재 탓에 해당 분기에만 약 2억9600만 달러를 회계에 손실로 반영했다. 보험에 가입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대부분 보상받았지만 당시에는 쿠팡의 주가가 급락할 정도의 큰 위기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쿠팡 주가는 12일까지만 하더라도 주당 22.69달러였으나 13일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17일까지 모두 9.6% 빠졌다. 이 시기 증발한 시가총액만 모두 40억 달러(약 5조5천억 원)가 넘는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쿠팡이 강한 대응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쿠팡의 최고사령탑인
강한승 대표이사의 의사가 강하게 개입됐을 수 있다는 시각도 내놓고 있다.
강한승 대표는 유통업계를 통틀어 몇 안 되는 법조인 출신의 전문경영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법조인으로서 제법 굵직한 경력을 쌓았다. 판사로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해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파견, 미국대사관 사법협력관, UN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정부대표 등을 지냈다.
헤이그 국제사법회의 정부대표를 거쳐 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냈고 이후 판사옷을 벗고 국내 최고 로펌으로 꼽히는 김앤장법률사무소로 이직해 변호사로 활동한 뒤 2020년 쿠팡에 합류했다.
▲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오른쪽)이 2022년 9월28일 광주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 발표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강한승 대표 페이스북> |
이런 이력을 살펴보면 강 대표가 공정위의 판단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단순히 전문경영인으로서의 반발을 넘어 법조 전문가로서의 자신감이 반영된 행보일 수 있다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쿠팡의 행동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는 곳이 공정위가 아닌 만큼 이 사건을 법원으로 끌고간다면 공정위의 부당함과 쿠팡의 억울함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강한 대응의 밑바탕에 깔려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강 대표는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일하던 시절 자신이 사건을 맡았던 쿠팡 관련 소송에서 쿠팡의 승소를 이끌어낸 경험도 지니고 있다.
쿠팡은 2016년 5월 CJ대한통운 등 택배기업 10곳으로부터 운송금지 소송을 당했다. 당시 택배업계는 쿠팡의 자체 배송서비스인 로켓배송이 운송사업에 주장한다며 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송 초기만 하더라도 ‘쿠팡이 택배사업을 하는 것은 맞지 않느냐’는 시각이 많았지만 김 대표는 당시 쿠팡의 법률대리인을 맡아 ‘쿠팡의 로켓배송은 상품 판매를 위한 행위이기 때문에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이 아니라’는 논리를 펼쳐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승소했다.
강 대표는 과거에도 쿠팡을 향한 의혹이나 지적이 나올 때마다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도 했다.
쿠팡이 물품을 직매입하는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플랫폼의 영향력을 앞세워 수수료를 착취한다는 문제가 제기됐을 때에도 SNS에 “쿠팡은 소상공인들과 동반 성장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여러 차례 올렸다.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