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대 총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 원을 영수회담 주요 의제로 내세울 뜻을 보이고 있지만 현실화되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민생회복지원금과 같은 현금 지원에 대해 '마약'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감이 크다. 또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건전재정’ 기조 확립에 방점을 찍고 있는 데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많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르면 이번주 안으로 성사할 것으로 예상됐던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영수회담이 전날 대통령실 정무수석 교체로 의제설정을 위한 실무회동이 취소되면서 좀 더 뒤로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오섭 전 정무수석의 자리를 이어받은 홍철호 신임 정무수석은 기자들에게 천준호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을 바로 만날 것이라고 하면서도 의제와 관련해서는 준비된 게 없다고 말했다.
홍 정무수석이 대통령실 내부의 조율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의제 설정과 관련해 앞으로 여러 차례 실무 회동이 필요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이재명 대표가 최근 당원과 유튜브 소통행사에서 민생회복지원금을 논의하겠다는 의사를 내보였는데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의 거부감이 커 영수회담 의제를 놓고 여야 실무진 사이에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24일 서울 송파구 잠실 새마을전통시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민생경제 비상사태 해결을 위해서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원, 가구당 평균 100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추진하겠다”는 총선공약을 발표했다.
이 대표는 “민생회복지원금 재원으로 약 13조 원이 추산된다”며 “윤석열 정권이 그동안 퍼준 부자감세와 민생 없는 민생토론회에서 밝혔던 기만적 선심 공약들 이행에 드는 약 900조~1천조 원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 손톱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방침을 뒷받침하기 위해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여당에 추가경정예산을 제안했다. 민생회복지원금 13조와 더불어 기타 대출 지원 등을 합하면 추경 규모는 2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에서 민생회복지원금을 추경까지 언급하면서 강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윤 대통령이 이를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뒤부터 ‘현금성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는데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인 지난 16일에도 국무회의에서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라며 “우리 미래에 비춰보면 마약과 같은 것이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런 윤 대통령의 포퓰리즘 발언에 대해 이 대표는 “국민 다수에 필요한 정책을 하는 걸 누가 포퓰리즘이라 하냐”며 반박하기도 했다.
추경 편성을 담당하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역시 홍 원내대표가 띄운 추경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 등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IMF 본부 건물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문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 부총리는 18일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하던 중 기자들에게 “추경은 경기침체가 올 경우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지금 재정의 역할은 경기침체 대응보다는 좀 더 민생에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많다.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은 23일 국회에서 열린 원대 대책회의에서 "사회 각계에서 민주당의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지급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며 "민주노총도 사실상 고물가 시대에 국가를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이라 할 정도"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에게 날을 세우고 있는 이준석 개혁신당도 이재명 대표에게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계획에 대한 철회를 요구했다.
이준석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작년 재정적자가 87조 원에 달했다는 충격적인 수치가 총선 직후에 발표됐다”며 “물가 문제마저도 매우 심각한 상황인데 그런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서 돈을 풀어야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까지 겹치다 보니 나라가 파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득 기준을 정해서 꼭 필요한 분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도록 조정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말처럼 민생회복지원금과 관련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돈을 더 풀게 되면 물가가 더욱 상승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물가가 높은 인플레이션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선 높은 금리를 유지하면서 정부의 지출을 줄일 필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민생회복지원금과 같은 현금성 지원은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 당시 문재인 정부가 전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의 형태로 실시한 바 있다.
▲ 2021년 9월6일 서울 용산구 전통시장의 한 가게에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사용 가능 안내 문구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당시 행정안전부는 2216만 가구에 총 14조2357억 원을 지급했다.
그 뒤 한국개발연구원은 2020년 5월 지급한 1차 재난지원금의 효과를 분석했고 지원금이 사용가능한 업종에서 전체 투입 예산 대비 26.2~36.1%의 매출 증대 효과가 나타났다고 했다.
즉, 푼 돈에 비해서는 기대했던 소비 진작 효과가 미미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코로나19 당시 미국 역시 대규모 양적 완화정책으로 1조 달러 규모의 부양책을 실시했고 그 결과 40년새 가장 큰 폭의 인플레이션을 맞았다.
이에 미국은 코로나19 안정기에 접어든 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4연속 0.75%씩 기준금리를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같은 초강수들 덕분에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조금씩 잡아왔고 지난해 9월부터 기준금리를 다섯차례 연속으로 동결했다. 미국 연준(Fed)은 현재 연내 3차례 금리 인하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미국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가시적으로 안정화되기까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금리 인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금리 인하를 추진하지 못할 정도로 물가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가 추진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이 추경을 통해 현실화 될지 미지수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협상을 어떻게 끌고갈지 시선이 쏠린다. 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