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에서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여소야대 2막`이 펼쳐지게 됐다. ‘규제완화’와 ‘세금감면’을 앞세워 경제활성화를 도모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입법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경기침체 장기화 우려 속에 소비와 기업투자 촉진을 유도할 수 있는 장치들이 거대 야당의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21대 국회에서 계류되고 있는 민생법안들도 사실상 폐기 수순에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가 22대 국회 출범에 즈음해 경제 이슈를 중심으로 주요 쟁점들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
▲ 제22대 국회에서도 이른바 '여소야대' 국면이 지속되면서 여야의 입법대치 속에서 국내기업이 경영환경 악화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에서 175석을 확보하면서 6월 본격 출범하는 제22대 국회 역시 21대에 이어 ’여소야대 2막’이 펼쳐진다.
여당과 야당 사이에는 감세 정책을 통한 투자 확대와 이에 따른 '낙수 효과'와 관련한 견해 차이가 크다. 주요 산업정책과 관련한 입법 과정에서 난항을 겪으면 자칫 산업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가 선거 전 입법을 전제로 추진해온 각종 감세를 바탕으로 한 투자유치 정책이 거대 야당과 견해 차이로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기업의 설비투자에 최대 15%의 세액공제를 지원하는 이른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여야 사이에 의견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물론 큰 틀의 국가 경쟁력 제고 측면에서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기존 K-칩스법이 이미 국회 문턱을 한번 넘은 점도 이런 시각에 힘을 싣는다.
다만 K-칩스법이 올해 말 일몰된다는 점은 기업에게 불확실성을 높이는 점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K-칩스법의 일몰시기를 2024년 말에서 2030년으로 6년 연장하는 개정안을 발의해 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했으나 본회의 문턱을 넘어가지 못했다.
21대 국회 임기가 약 1개월 밖에 남지 않아 법안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K-칩스법이 이대로 일몰되면 반도체 대기업의 설비투자에 지원되는 세액공제율은 15%에서 8%로 다시 줄어들게 된다.
또한 K-칩스법이 22대 국회에서 재논의된다고 하더라도 후속 입법과정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세액공제 비중을 놓고 여당과 야당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길 공산이 크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 이해찬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오른쪽 2번째), 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왼쪽 2번째) 등 당 지도부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 민주당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민주당은 기존의 정강정책으로 볼 때 대기업보다는 중소·중견기업의 지원이 더 중요하다고 바라볼 여지가 크다.
반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세액공제를 통해 이뤄질 수 있는 낙수효과를 강조한다. 대기업에 세금을 깎아줘 투자를 늘리면 중소·중견기업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K칩스법뿐 아니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도 제22대 국회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금투세는 주식과 채권, 펀드와 파생상품 등에 투자해 발생한 양도소득에 20~25%의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이 결정된 뒤 여야 합의로 2025년까지 도입을 유예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네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금투세 폐지와 양도소득세 기준 상향을 공언 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경제논리에 맞지 않는 금융관련 세제를 과감하게 바로 잡아나갈 것이다”며 “자본시장을 통한 국민자산 형성지원을 위해 2025년 도입예정인 금융투자세를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지도부는 금투세 폐지에 부정적 입장을 지니고 있어 제22대 국회에서 의견 충돌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금융소득으로 5천만 원 이상을 버는 사람은 극히 적어 금투세 폐지는 사실상 부자 감세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수익률을 10%로 잡았을 경우 5억 원 이상의 종잣돈을 보유한 투자자가 금투세 폐지 혜택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2년 추계에 따르면 2025년부터 금투세를 시행하면 3년간 4조328억 원의 세수가 증가한다. 연평균으로 환산해보면 1조3443억 원 가량으로 금투세가 폐지되면 거대한 세수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민생 예산을 현재보다 늘려야 늘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민주당으로서는 금투세 폐지에 강력 반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 국민의힘 지도부가 10일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개표 예측 결과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
현재 국회에 머물러 있는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관련 논의도 여야 사이에 의견 차이가 크다.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은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자국 내 반도체 생산설비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천문학적 보조금을 주는 것에 대응해 우리나라도 세액공제를 현금으로 직접 지급하고 기업들이 이를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기존 투자세액공제가 법인세를 공제하는 방식이라 영업손실을 입은 기업은 당장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민주당도 큰 틀에서는 세액공제 등 반도체 산업에 지원에 긍정적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보조금을 비롯한 직접적 지원정책은 지금껏 내놓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도 여야 갈등이 나타날 수 있는 지점이다.
건설사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정부의 세컨드홈 규제완화와 재건축 재개발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사업 전략을 짜왔는데 이를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주택 정책에서 여야 대립이 격화할 경우 주택입주에 수반되는 국내 가전사업 위축과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할 수 있어 기업들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국내 한 전자기업은 모듈형 주택을 통해 국내외 가전사업 확장을 노린 바 있고, 건설기업들도 재건축 재개발 완화에 따른 수주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 횡재세 도입 여부도 기업에 미칠 영향이 큰 이슈로 꼽힌다.
한국형 횡재세는 2023년 11월 이후 논의가 멈췄으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의 총선승리로 재논의에 대상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횡재세는 기업이 호황기에 얻은 일정 규모 이상의 이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영국과 루마니아,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에서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한국형 횡재세 도입과 관련해 "유가 상승과 고금리로 정유사와 은행들이 사상 최고 이익을 거뒀으니 민생고통을 분담할 수 있도록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횡재세가 도입되면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한 뒤 다시 수출하는 한국 정유사의 경우 원유가격의 변동에 따라 오히려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금융업계에선 국내 진출한 금융 사업자가 해외로 이탈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제22대 총선에서 야당의 압승으로 주요 현안에서 정부여당과 마찰을 빚을 경우 관련 정책이 지연되며 산업 경쟁력이 크게 위축될 우려가 있어 협력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2대 총선 결과 여야 사이 의석 격차가 사상 최대 수준이 됐다"며 "야당이 선거에서 크게 승리했고 이미 제정된 법안을 고치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을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