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법 공정경쟁 촉진법안(플랫폼법안)’ 입법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플랫폼법안의 핵심내용인 지배적 사업자 선정제도를 포함해 다양한 대안을 열어놓고 의견수렴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플랫폼서비스 1위 사업자로 꼽히는 네이버와 카카오로서는 한숨 돌리게 됐는데 ‘지배적 사업자 선정’과 ‘규제사항의 입증책임 기업부담’ 등 문제가 됐던 쟁점사항을 놓고 정부 설득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플랫폼법안 사실상 물 건너가나, 공정위 후퇴에 네이버 카카오 한숨 돌려

▲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배적 사업자 선정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안' 입법 추진과정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네이버와 카카오 등 플랫폼 사업자들도 한숨 돌리게 됐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8일 플랫폼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플랫폼법안과 관련한 의견 수렴과정을 거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총선 뒤 정치 지형에 따라 당분간 처리가 쉽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플랫폼법안은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시장 지배력이 큰 대형 플랫폼 기업을 미리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자사 이용자에게 경쟁 플랫폼의 이용을 금지하는 것) 등의 행위를 집중 감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공정위는 애초 플랫폼 법안을 의원입법 형식으로 국회에 제출하려 했으나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이 부정적 분위기를 나타낸 것은 올해 4월로 다가온 제22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IT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읽힌다.

더구나 생성형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장세가 가팔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산업계에 찬물을 끼얹는 '행정편의주의적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미국 정부와 산업계도 구체적 공개단계를 밟지 않은 플랫폼법안에 대해 이례적으로 부정적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플랫폼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게 되면 한국 내 시장 점유율이 낮아 규제대상에서 제외되는 중국 플랫폼 기업들만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찰스 프리먼 미국 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수석 부사장은 성명을 내어 "미국 의회는 한국이 플랫폼법안을 통과하기 위해 서두르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한국정부는 투명하게 법안의 내용을 공개하고 미국 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의 규제 이슈에 대한 검토’ 현안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플랫폼 생태계의 혁신동력 저해 가능성 측면에서 우려를 표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현행 공정거래법 체계에서 시장지배력을 가진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행위를 규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하는 방식을 통해 규제할 시급한 필요성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짚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특정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하는 방식은 위법행위 유무를 판단하기 전에 불공정행위 잠재기업을 사전에 정하는 이른바 ‘낙인효과(Stigma effect)’를 가져올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플랫폼법안의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후속 진행 과정에서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와 비밀주의로 일관해 시장의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플랫폼법안 사실상 물 건너가나, 공정위 후퇴에 네이버 카카오 한숨 돌려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모습. <연합뉴스>


공정위는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 지정을 위한 기준도 확정되지 않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놔 지정대상이 개별 사업자인지 유튜브 같은 특정 플랫폼인지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공정위는 여당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와 상공업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홍선 공정거래부위원장은 7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국내외 업계 및 이해관계자와 폭넓게 소통하고 지정제도를 포함해 다양한 대안을 열어두려 한다”며 “법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추가 의견수렴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플랫폼법안이 사실상 무산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공정위가 규제 후퇴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네이버와 카카오 등 유력 플랫폼 서비스 사업자들은 추후 의견개진 절차에서 ‘지배적 사업자 선정제도’의 문제점을 정부에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플랫폼법안이 규제하려는 자사우대, 끼워팔기 등의 불공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업이 입증하도록 부담을 지운 것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점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네이버는 국내 검색엔진에서 56%의 점유율을, 전자상거래에서는 17%의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카카오는 국내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92%의 점유율로 플랫폼 1위 사업자에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