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팅 본부장 인재전략 제언, “혁신과 변화 위해선 본질부터 바꿔야”

▲ 커리어케어 헤드헌팅 본부장들이 2024년 국내 주요 기업들의 조직관리 및 핵심인재 동향에 관한 좌담회를 가졌다. <커리어케어>

[비즈니스포스트] 연말연시를 지나면서 기업들의 위기의식이 계속 커지고 있다. 작년 말부터 진행된 임원인사에는 기업들의 이런 분위기가 짙게 배어있다.

2024년 기업들이 봉착한 위기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기업들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어떤 인재전략을 구사하고 있을까?

비즈니스포스트는 23일 국내 주요 기업들의 조직관리와 핵심인재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 국내 최대 헤드헌팅회사인 커리어케어의 헤드헌팅 본부장들과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에는 윤문재 부사장(PEPG 본부장), 장대훈 부사장(파이낸스 본부장), 곽훈희 전무(헬스케어 본부장), 박선정 전무(디앤서 본부장)가 참석했다. 

- 2023년 기업들의 성적표는 어떠했나?

윤문재 본부장 (이하 ‘윤’): 대부분의 기업들이 지난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PE(사모펀드)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고금리 여파로 투자시장이 빙하기에 접어들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형 딜은 손에 꼽을 정도고 중간규모 회사의 인수가 간간히 나타날 뿐 거래가 없어 개점휴업 상태였다. 올해도 빠르게 상황이 개선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하반기에는 기지개를 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나타나고 있다. 

박선정 본부장(이하 ‘박’): 스타트업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국내 스타급 스타트업이나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회사 매각을 고려할 만큼 한계상황에 봉착했다. 살아남은 기업들의 상당수는 내년 상반기까지 추가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함께 스타트업을 선도하던 중국은 물론 인도와 동남아 쪽 분위기도 침체돼있다. 다만 AI(인공지능)나 환경테크 같은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곳은 IPO(기업공개)를 시도하는 등 움직임이 활발하다. 

장대훈 본부장(이하 ‘장’): 국내 거래소에 상장된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9개가 제조업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는 제조업 비중이 커서 글로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삼성전자의 분기실적이 어닝 쇼크를 기록하면서 적자 직전까지 간 것은 10여 년 만에 처음이다. 작년 우리나라 기업들의 성적표는 수-우-미-양-가 가운데 ‘가’에 해당된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원인으로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을 지목하고 있다. 

곽훈희 본부장(이하 ‘곽’): 헬스케어기업들 중 바이오벤처는 타격이 심했지만 주요 상장기업은 이익이 70% 정도 증가했다. 이전 해와 비교해 이익의 증가 폭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미’정도는 되지 않나 생각한다. 제약기업의 경우 다른 산업군에 비해 경기를 크게 타지 않는다. 다만 코로나 시기 워낙 강한 호황을 누렸기 때문에 거품이 꺼지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다. 

- 대부분 기업들이 정기 임원인사를 마쳤다. 이번 인사에서 보인 특징이 있다면?

윤: 전반적으로 대기업들이 임원인사를 앞당겼다. 또 그룹의 핵심경영진들을 대거 교체하면서 쇄신과 세대교체에 나섰다. 주목할 점은 임원 승진 규모가 예년에 비해 훨씬 작아졌다는 것이다. SK의 경우 신규 임원 승진자가 82명으로 전년 대비 42% 감소했고 삼성전자도 187명에서 143명으로 줄었다. 2023년 성적표가 임원인사에 반영된 것이다. 예년에 비해 여성 임원의 발탁과 약진도 눈에 띠게 줄었다. 

곽: 헬스케어의 경우 코로나로 원격회의가 일상화 하면서 중간 관리자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그동안 사장 밑에 본부장을 두고, 본부장이 지휘하는 팀장이 직원들을 관리하는 구조였는데, 이제는 원격회의를 통해 해외 본사 간부들이 직원들과 직접 소통한다. 또 지역과 질환군을 통합하면서 담당자를 아예 없애는 곳이 늘었고 성장잠재력이 큰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 비만 쪽에 집중하면서 나머지 사업부서는 정리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장: 국내 8개 금융지주회사 가운데 5곳의 회장이 바뀌었다. 이렇게 큰 지각변동은 근래에 처음이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일선에서 완전 물러났고 CEO나 대표는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 출생으로 넘어갔다. 실무 임원들은 이미 70년대 생으로 바뀌었다. 금융계 거목이라 불리던 이들이 모두 떠나는 바람에 누가 그 공백을 메꿀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인사를 통해 내다보는 2024년 시장상황은 어떠한가?

박: 2024년 들어 비상경영이라는 말이 더 이상 레토릭이 아닌 상황이 됐다. 그만큼 기업들의 위기의식이 심각하다. 이 때문에 기업이 임원에게 제공하는 처우, 퇴직임원에게 제공하는 예우를 이전에 비해 많이 축소하고 있다. 

윤: 금융회사나 경제연구소들은 완만하긴 하지만 하반기 경기 상승을 전망하고 있다. 최근 인사에서 임원 승진자가 역대로 적었는데, 1분기 정도 지나면 경기회복을 대비한 임원 채용 수요가 본격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 이제 터널 끝이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추가적인 금리 인상은 없고 두세 번 정도 인하가 예상된다. 현재 진행 중인 두 전쟁(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도 출구전략이 모색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금융뿐만 아니라 부동산 금융이나 건설과 맞물려 있는 PF(프로젝트파이낸싱)발 위기는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모델 삼아 큰 충격 없이 문제를 풀 수 있고, 제2의 태영, 제3의 태영이 나오더라도 연착륙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곽: 최근 OCI가 한미약품을 사고 오리온이 레고켐이라는 알짜 바이오벤처를 사들였다. 기업들이 여전히 바이오 헬스케어를 성장 동력이 있는 미래산업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새해부터 공동 프로모션 계약이 줄을 잇고 있고, 제약사들이 이를 통해 매출증대는 물론 신시장 진출과 시장입지 강화를 노리고 있다. CDMO 사업을 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롯데바이오로직스 같은 회사도 대규모 플랜트 건설 같은 성장플랜을 제시하며 빅파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중이다. 

- 어려운 시기인데 산업별 인재시장 동향이 궁금하다.

장: 디지털 전환 속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5년을 전후로 CDO(최고디지털책임자)를 뽑으면서 디지털 전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최근 기업들로부터 추천 요청을 받고 있는 금융부문 인재의 70%가 디지털 관련이다. 이제 금융계에서는 디지털을 모르면 임원이 되기 어렵다. 

윤: 미래의 캐시카우가 될 산업들의 인재 수요가 꾸준하다. 2차전지나 배터리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은 커리어케어에 지속적으로 인재 발굴을 요청하고 있다. 또 AI산업에 필요한 전문 인력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커질 것 같다. 누가 먼저 전문인력을 선점하느냐가 성공을 좌우하기 때문에 헤드헌팅회사들도 시장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미리 발굴하고 있다. 

박: 스타트업 쪽은 수익실현을 구체적으로 보여 줄 정도로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이 검증된 초격차 기업만 살아남을 것 같다. 올해는 어떤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지 옥석을 가리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2024년 기업에 제안하고 싶은 인재전략은 무엇인가?

곽: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사노피 같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경기침체에 대비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어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시장에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도래한 셈이다.

윤: 작년부터 CHRO(최고인사책임자) 추천 요청이 크게 늘었다. 그동안 인사 임원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로 생존을 위한 혁신과 변화가 불가피해지자 기업들이 인사와 재무 같은 핵심영역에서 본질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장: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비트코인 ETF를 승인한 것은 금융 화폐 역사상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은행도 몇 년 전부터 블록체인화를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다. 디지털 전환부터 AI, 블록체인은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이다. 미지의 영역에서는 누구나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앞서 나가는 글로벌 기업들은 가보지 않았던 길에 적극적이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그 영역에 있는 인재들을 먼저 선점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기존에 가보지 않았던 영역의 핵심인재 확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 

박: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여러 영역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범용성과 유연성을 갖춘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 또 데스밸리를 극복하려면 다양한 직무에서 기존의 관행을 깨고 실질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인재들을 영입해야 한다. 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확고한 비즈니스 모델에 기반한 장기적 비전과 커리어 성장에 대한 확신을 심어줘야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