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LG에너지솔루션이 빠른 외형 성장의 속도를 조절하고 내실 위주의 경영전략으로 선회하며 이전보다 악화된 업황에 대응하고 있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최고경영자(CEO) 사장은 업황 불확실성이 커진 어려운 시기에 사령탑을 맡아 질적 성장에 더욱 더 속도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최고 수준에 다다른 생산능력뿐 아니라 기술력에서도 글로벌 리더십을 확고히 하는 데 더 많은 경영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LG엔솔 양적 성장 ‘속도조절’ 모드, 김동명 당분간 기술 ‘초격차’ 집중

▲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최고경영자(CEO) 사장이 당분간 기술의 초격차에 집중한다.


11일 LG에너지솔루션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김동명 사장 체제에서는 증설 전략을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운영하며 질적 성장에 초점을 둔 경영계획이 채택될 것으로 전망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북미 시장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증설을 진행하며 경쟁사를 크게 뛰어넘는 생산능력을 갖춘 배터리 기업으로 꼽힌다. 

현재 북미에서만 연간 60GWh 생산체제를 구축했고 2025~2026년 현지에서 연산 342GWh 체제를 완성한다는 계획도 마련해 놓았다. 

북미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현지 생산체제를 가장 잘 구축해 둔 상태다. 중국을 제외한 주요 시장에서 가장 많은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새로 LG에너지솔루션의 지휘봉을 잡게 된 김동명 사장 체제에서는 그동안 진행됐던 양적 성장의 속도를 조절하고 내실을 다지는 데 더 힘을 기울이는 질적 성장으로 전략 기조를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김동명 사장은 이달 초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게시된 취임사를 통해 “지난 3년이 양적 성장과 사업의 기반을 다진 엔솔1.0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강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 경쟁 우위를 확보해 진정한 질적 성장을 이루는 엔솔2.0의 시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LG에너지솔루션이 전략 기조를 바꾼 가장 큰 배경으로는 전방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를 꼽을 수 있다. 이미 김 사장의 최고경영자 내정 전부터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큰 틀의 방향성을 바꿔야 한다는 내부적 공감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이 증설에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배터리 생산공장의 인력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유럽 내 생산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었던 튀르키예 생산공장(LG에너지솔루션·포드·코치 합작) 건설 계획도 철회됐다. 

전방 고객사인 전기차 제조사들이 전기차 생산 계획을 축소하거나 미루고 있는 만큼 배터리 업체들의 증설 속도 조절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고객사인 제너럴모터스(GM)과 포드 모두 당초 계획보다 전기차 생산 목표치를 낮추며 속도 조절에 나설 태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동명 사장은 기술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질적 성장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생산능력 측면에서는 글로벌 선두권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을 제외한 북미·유럽 등 주요 시장의 현지 생산체제가 경쟁사들보다 크게 앞서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술력 측면에서는 최고라 단언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경쟁사인 삼성SDI와 비교해 보면 생산능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확실히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에서 이미 연산 60GWh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는 반면 삼성SDI는 아직 본격적으로 현지 생산체제를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다만 기술력 확보에는 삼성SDI가 오히려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해 온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는 지난해 연구개발 비용으로 1조764억 원을 썼다. 매출의 5.4% 규모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이 연구개발에 쏟아 부은 금액은 8761억 원(매출의 3.4% 규모)으로 절대치에서 삼성SDI에 밀린다. 

당장에 영업 성과로 이어질 생산능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더 많은 투자를 했지만 미래에 시장 주도권을 가를 수 있는 기술력 확보에는 삼성SDI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다.

삼성SDI는 가장 유력한 차세대 전지로 꼽히는 전고체 전지의 양산 시점을 국내 배터리기업 가운데 가장 이른 2027년으로 잡으며 미래 기술의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김동명 사장이 취임 일성으로 질적 성장을 강조한 만큼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이 양적 성장을 위해 투입됐던 자원과 역량은 상당 부분 기술력 확보에 할애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대학과 연구기관과 협력해 차세대 기술력 확보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카이스트와 함께 꾸린 공동 연구팀은 최근 리튬메탈전지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원천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리튬메탈전지는 기존 흑연계 음극재를 리튬메탈로 대체한 것으로 기존 리튬이온전지보다 음극재의 무게와 부피를 줄여 에너지밀도와 주행거리를 대폭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이 때문에 리튬메탈전지는 차세대 전지 후보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과 카이스트 공동 연구팀은 리튬메탈전지의 수명과 안전성을 제한하는 덴드라이트(리튬 전착 현상)를 해결할 수 있는 '붕산염-피란(borate-pyran)기반 액체 전해액'을 세계 최초로 적용하며 기존의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통해 리튬메탈전지의 충방전 효율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1회 충전에 900km 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에너지밀도를 높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카이스트뿐 아니라 독일 뮌스턴 대학,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UCSD) 등 국내외 대학 및 헬름홀츠 연구소 등 연구기관들과 함께 차세대 배터리 관련 집중 연구개발(R&D) 과제를 설정해 연구하는 공동 연구센터 FRL(Frontier Research Lab)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포항공과대학, 연세대 등과도 산학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와는 계약학과를 설립·운영하며 미래 인재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계약학과는 맞춤식 직업교체제를 도입해 산업체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이 산업체 등과 계약해 설치·운영하는 학과를 말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에너지밀도가 높은 리튬황 전지를 비롯해 전고체 전지 등 차세대 전지에 관한 연구개발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배터리업계에서 유일하게 고분자계와 황화물계 전해질 모두 연구개발을 진행하며 전고체 전지 시대에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엔솔 양적 성장 ‘속도조절’ 모드, 김동명 당분간 기술 ‘초격차’ 집중

▲  LG에너지솔루션이 글로벌 기술허브인 '마더 팩토리'로 육성하려는 오창 에너지플랜트 전경.

이를 위해 기술 허브인 ‘마더 팩토리’를 충북 오창에 구축하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마더 팩토리는 글로벌 기업의 국내외 생산시설 가운데 중심이 되는 곳을 말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마더 팩토리를 통해 차세대 설계·공정 기술이 적용된 제품의 단순 시험생산에서 양산성 검증까지 가능하게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오창 공장을 그동안 글로벌 각지에 구축했던 생산시설들의 마더 팩토리로 삼아 연구개발과 공정·제조의 중심지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예상을 뛰어넘는 전기차 수요 둔화의 여파로 일부 완성차 제조사들이 전기차 생산 계획을 연기하고 있는 만큼 LG에너지솔루션 역시 보수적 증설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수요 반등의 방아쇠(트리거)인 정책, 금리, 인프라, 기술 등의 변수가 앞으로 업황에서 더욱 중요해졌다”고 바라봤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