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지원법 팔 안으로 굽는다, 인텔 군사용 반도체에 대규모 보조금

▲ 인텔이 미국 정부에서 군사용 반도체 생산을 대가로 막대한 지원금을 선점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인텔의 미국 애리조나주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 <인텔>

[비즈니스포스트] 인텔이 국방 분야에 활용되는 군사용 반도체 생산설비를 구축하는 대가로 미국 정부에서 수조 원대 지원금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앞세워 전 세계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고 있지만 결국 자국 기업에 혜택을 몰아주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더욱 힘을 얻는다.

7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 예산 가운데 일부를 군사용 반도체 생산 지원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있다.

현재 군사무기 등에 사용되는 첨단 반도체가 대부분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수입되는 만큼 다른 국가에 의존을 낮춰 자급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목적이다.

아직 구체적인 지원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수십억 달러(약 수조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 대상 기업에 제공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현재로서는 인텔이 정부 지원금을 받을 가장 유력한 기업에 거론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관계자를 인용해 인텔이 애리조나 반도체공장에 군사용 반도체 생산설비를 별도로 설립하며 최대 40억 달러(약 5조2천억 원)를 들이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부분의 비용은 반도체 지원법 예산 가운데 시설 투자 보조금으로 사용되는 390억 달러(약 51조 원)의 예산을 통해 지원이 예정되어 있다.

첨단 군사용 반도체에서 자급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미국 정부가 처음 반도체 지원법 도입을 논의할 때부터 주요 목표로 삼고 있던 사안이다.

따라서 전체 예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은 당연한 수순으로 꼽힌다.

TSMC나 삼성전자 등 해외 경쟁사를 제치고 인텔이 군사용 반도체 생산을 맡는 것도 군사무기 특성상 국가 안보에 핵심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지다.

인텔은 이러한 경쟁사와 달리 미국에 첨단 반도체기술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와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앞세우고 있다.

다만 반도체 지원법 예산의 상당 부분이 월스트리트저널의 예상대로 인텔의 생산 투자에 활용된다면 해외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고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약 22조 원), TSMC는 애리조나에 400억 달러(약 65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시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이나 대만에 반도체공장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비용을 들이는 만큼 이들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인텔과 같은 기업이 지원금의 일부를 선점한다면 삼성전자와 TSMC 등에 돌아갈 몫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현재 130개 이상의 반도체기업이 시설 투자에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한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 팔 안으로 굽는다, 인텔 군사용 반도체에 대규모 보조금

▲ TSMC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 사진. < TSMC >

월스트리트저널은 “인텔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최대 수혜기업으로 떠오를 것”이라며 “자연히 다른 반도체기업들은 예상보다 적은 보조금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 정치권에서도 군사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별도의 설비가 반드시 필요한지를 두고 회의적 시각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분위기를 전하며 군사용 반도체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비용 측면에서 효율성이 낮다는 의견도 전했다.

결국 미국 정부가 군사용 반도체 생산설비를 신설하는 목적이 결국 인텔과 같은 미국 반도체기업을 차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미국 의회 의원들은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공동 성명을 내고 특정 기업에 지원을 몰아주는 것은 미국에서 다양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여전히 군사용 반도체의 보안이 중요하다는 점을 앞세우면서 해당 설비를 극비리에 운영되는 생산거점으로 두겠다는 태도를 앞세우고 있다.

인텔은 이뿐만 아니라 미국에 이미 1천억 달러(약 131조 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제시하고 이를 점차 실행에 옮기고 있다.

미국 메모리반도체기업 마이크론 역시 뉴욕주에만 1천억 달러를 들여 대규모 반도체 생산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정부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미국 정부가 투자 유치를 위해 앞세운 반도체 지원법이 대부분 자국 기업을 도와주는 데 그치면서 삼성전자와 TSMC가 불이익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