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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금융포럼 에필로그] 토론 이끈 이충열 "해외환경 급변, 현지화 뒤처지면 K-은행 미래 없다"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 2023-10-30 1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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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금융포럼 에필로그] 토론 이끈 이충열 "해외환경 급변, 현지화 뒤처지면 K-은행 미래 없다"
▲ 이충열 고려대 교수가 25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2023 BP금융포럼' 패널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전쟁터에 나가는 마음으로 해외사업에 임해 달라.”

25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비즈니스포스트 주최로 열린 ‘2023 BP금융포럼, 다시 뛰는 K-금융: 아세안시장 안착을 위한 생산적 현지화 전략’에서 패널토론 좌장을 맡은 이충열 고려대학교 경제통계학부 교수는 은행을 향한 이 같은 당부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은행의 해외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인데 이 교수가 도전정신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지, 국내 은행의 해외사업 확대 과정에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이 교수는 당시 행사에서는 좌장의 특성상 패널들의 의견을 요약하며 토론을 이끄는 역할을 맡아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30일 학사일정 등으로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 있는 이 교수를 줌(ZOOM)을 통해 만났다. 토론 좌장에서 내려온 이 교수는 아세안 은행산업 전문가답게 K-은행의 아세안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따끔한 조언과 충고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과거에는 우리보다 소득이 10배 많은 나라에 갔지만 지금은 소득이 우리의 10분의 1인 나라에 간다.”

이충열 교수는 K-은행의 해외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은행원(뱅커)들이 최근 들어 해외사업 환경이 완전히 바뀐 것을 먼저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우리보다 잘 사라는 나라에 가서 국내 해외진출 기업의 거래를 돕는 것이 은행 해외사업의 주된 일이지만 지금은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현지 고객들을 상대로 하는 영업활동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한국에서 일을 열심히 해 성과가 좋은 사람을 대상으로 좀 쉬라는 보상 차원에서 보내는 게 해외지점이었다. 사실상 운영업무인데 이런 행태가 지난 30~40년 동안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게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이제는 현지화가 목표이다보니 가서 다른 은행과 경쟁을 해야 하고 이에 따라 해외사업 업무 강도가 예전과 달리 굉장히 강해졌다. 예전과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교수는 해외사업을 편한 자리로 바라보는 예전의 인식이 은행권에 여전히 퍼져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은행의 해외사업 경쟁력 강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국내 은행이 해외사업 진출에 벤치마크해야 할 대상으로는 1960년대 한국에 진출한 씨티은행을 꼽았다.

이 교수는 “씨티은행은 1967년 외환은행 출범으로 상업은행이 외환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한국에 들어왔는데 당시 한국은 1968년 1월 김신조 일행이 청와대 800미터 앞까지 침투하고 그해 10월에는 울진 삼척지구 연안에서 북한 무장공비 120명과 총격전을 벌일 정도로 위험한 나라였다”며 “그런데도 씨티은행은 한국에 들어왔고 사업을 확장했다”고 말했다.

이런 도전정신이 K-은행에도 필요하다는 것인데 동시에 씨티은행이 오랜 기간 공들인 현지화 과정에서도 배울 요인이 많다고 조언했다.

씨티은행은 1967년 한국에 처음 들어와 외환업무를 중심으로 하다가 1986년 처음 소매금융을 시작했고 2004년 한미은행을 인수하며 소매사업을 확장했다. 최근에는 다시 소매금융을 철수했는데 이 기나긴 과정 속에서 한국에 선진금융기법을 알리는 동시에 지속해서 미국에 있는 주주들의 이익 확대를 위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씨티은행은 한국에서 떼돈을 벌지 않더라도 수익성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현지화에 성공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업을 유지한 채 또 다른 국가로 사업을 확장했고 이런 과정을 지속해서 거치면서 어느 순간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BP금융포럼 에필로그] 토론 이끈 이충열 "해외환경 급변, 현지화 뒤처지면 K-은행 미래 없다"
▲ 이충열 교수가 25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2023 BP금융포럼' 패널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성헌 법무법인 오킴스 대표변호사, 이준교 금감원 국제업무국장, 이 교수, 이규선 한화생명 글로벌전략실 부장, 이윤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비즈니스포스트> 

이 교수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 아세안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은 당분간 그곳에 진출한 국내 제조기업들을 기반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성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경제성장에 따른 인건비 등 비용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국내 제조기업이 떠나게 되면 현지화에 뒤쳐진 은행은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서 아세안으로 공장을 옮겼는데 향후 아세안에서 인도나 다른 곳으로 옮기면 은행은 또 따라만 갈 것인가”라며 “한국 기업이 아세안에 진출해 은행에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데 이 시간을 현지화에 활용하지 못하면 정말 K-은행의 해외사업 미래는 쉽지 않을 것이다”고 경계했다.

그는 “국내 제조업은 아무 것도 없던 나라에 진출해 정말이지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을 해가면서 해외사업을 키웠다”며 “은행 역시 해외사업을 편하게 가려고 하며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사업 경쟁력 확대를 위해서는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인력 육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이 교수는 “파키스탄을 예로 들면 국내에서 파키스탄 금융시장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며 “그 나라에서 한국에 와서 공부하는 친구들, 혹은 현지 금융인들을 1년에 한두 번 불러 VIP고객 서비스 하듯 은행 설명회를 하고 교류하다 보면 향후 사업 진출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사업에서 성과가 나기까지 기다려주는 경영진의 신뢰도 인력 육성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이 교수는 K-은행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마지막 조언을 묻는 질문에도 이 지점을 지적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해외사업에 시간을 줘야한다고 말하는데 실제 경영진 입장에서 이는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믿음을 가지고 시간을 줘야 한다”며 “해외사업을 한국에서 지점 체크하는 시스템하고 똑같이 수익성을 평가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세안에서 K-은행의 위상이 전반적으로 높지 않다고 바라봤다. 자본 규모에서는 중국에 치이고 자본 질적 측면에서는 일본에 밀리며 정보에서는 유럽에 뒤쳐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바라봤다. 한국을 향한 아세안 국가들의 호감도, 인지도, 정부 신뢰도과 함께 뛰어난 순발력 등을 K-은행의 강점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아세안에서 K-문화 호감을 바탕으로 한 K-은행의 소매사업 인지도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며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바를 빨리 파악하고 관련된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순발력도 K-은행의 큰 강점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아세안 국가들은 일본, 중국 등 자기들을 통치했던 나라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란 부담감을 지니고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게 없다”며 “그래서 그들은 한국을 ‘위협이 되지 않는 나라’라고 부른다. 이 역시 협력의 큰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으로 석사학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금융연구원 등을 거쳐 1998년부터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포스트차이나, 아세안을 가다(2017)’라는 책을 낸 것은 물론 최근 연구 자료만 봐도 ‘아세안 은행의 은행성과에 대한 연구-상업은행을 중심으로(2021)’, ‘아세안에 진출한 해외은행에 관한 연구(2020)’ 등 아세안 금융 전문가로 꼽힌다.
 
[BP금융포럼 에필로그] 토론 이끈 이충열 "해외환경 급변, 현지화 뒤처지면 K-은행 미래 없다"
▲ 이충열 교수가 25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2023 BP금융포럼' 패널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 교수는 아세안 등 개도국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묻자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곳에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의미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결정적 계기는 2000년대 초반 한 국제경제회의에 갔을 때다. 당시 한국의 IMF 극복사례를 발표했는데 발표 이후 많은 개도국 관계자들이 몰려들어 이것저것 물어봤다. 실제 첨단 경제 분석기법을 배운 나 같은 사람이 런던이나 뉴욕에는 많은데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는 많이 없다. 그때부터 아세안 등 개도국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기 시작한 것 같다.”

이 교수는 디안 에디아나 레이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 은행감독담당청장, 헝 보마카라 캄보디아중앙은행 은행감독국 1부국장 등이 연사로 참여한 이번 비즈니스포스트 포럼을 놓고도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아세안 금융시장 진출과 관련해 현지 금융당국 고위급 인사가 한국에 직접 와서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얘기를 한 적이 별로 없다. 좋은 교류의 기회였다고 평가한다”며 “국내 은행업이 국내 사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은행 글로벌사업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의 자부심 측면에서도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31일에도 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향한다. 이 교수는 여전히 분기에 한두 번 이상은 아세안을 향하며 현지 금융시장 상황을 직접 살펴보고 있다. 이한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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