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정부 주도로 조성된 최대 공업단지 신주과학단지에 다수의 TSMC 반도체 생산공장이 밀집해 있다. TSMC 제12 반도체공장 페이즈4, 페이즈5 건물. <비즈니스포스트> |
[대만 신주=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 9월21일, 대만 북부에 위치한 신주(新竹)시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고 신주과학단지로 진입하자 곧 TSMC 기업로고 간판이 붙은 거대한 반도체공장 건물이 보였다.
상당한 규모에 감탄하며 TSMC 공장을 지나치자마자 이에 못지않은 큰 건물이 보였다. TSMC의 또 다른 반도체공장이다. 그 다음 건물도 TSMC의 간판을 달고 있는 생산공장이었다.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있었던 TSMC 제12공장 페이즈4, 페이즈5 두 곳의 건물 면적만 따져도 약 8만3600㎡로 축구경기장 12개 넓이에 이른다.
택시에서 내려 길을 걷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로와 하늘 이외에 모두가 TSMC의 공장 외관의 일부였다. 신주과학단지가 대만, 특히 TSMC 반도체 생산의 '심장'이라는 표현이 그제서야 실감났다.
수도인 타이페이 남동쪽에 위치한 신주과학단지는 정부 주도로 1980년 조성된 최대 공업단지이자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의 본사 및 생산공장이 밀집해 있는 대만 반도체 산업의 ‘총본산’이다.
목적지인 바오샨(寶山) 제2저수지로 향하는 동안 다수의 TSMC 공장뿐만 아니라 미디어텍과 UMC, 리얼텍 등 글로벌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갖춘 대만의 주요 반도체기업 건물도 볼 수 있었다.
바오샨 제2저수지는 신주과학단지에 산업용수를 공급하는 주요 수원지다. 대만 정부가 신주과학단지를 조성한 뒤 수자원 부족 문제를 예상해 해당 지역에 물 공급을 위한 댐을 건설했다.
댐 건설이 처음 추진된 것은 1986년, 완공된 것은 2006년으로 약 20년에 이르는 시간이 걸렸다.
직접 확인한 바오샨 제2저수지와 댐의 모습은 예상과 달리 그리 크지 않았다.
신주과학단지에서 목격했던 TSMC의 여러 반도체공장 규모를 생각할 때 다소 의아할 정도였다.
▲ 대만 신주과학단지에 산업용수를 공급하는 바오샨 제2저수지와 댐 전경. <비즈니스포스트> |
반도체는 불순물 제거와 장비 냉각 등 생산공정에 대량의 물을 쓰는 자원집약적 산업이다. 특히 TSMC는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하는 만큼 수자원 사용량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대만 정부가 처음 바오샨 제2저수지를 조성할 때 예상했던 TSMC 등 반도체기업 공장의 물 사용량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기술 발전과 생산 능력을 반영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신주과학단지에 위치한 TSMC 공장은 제한된 수자원 보유량과 최근 수 년째 이어진 대만의 가뭄 사태 등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해답은 이러한 ‘워터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TSMC와 대만 정부의 긴밀한 팀플레이에 있었다.
◆ 반도체업계 물 관리 '모범사례' TSMC, 대만 정부와 협업 성과
“TSMC 반도체 생산공정에 쓰이는 물 한 방울은 평균 3.5회 재사용된다. 90%에 육박하는 수자원 공급량이 재활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단계에서 물 부족에 대응하는 절차를 갖추고 있다.”
대만 본사에서 근무하는 TSMC 홍보담당자 율릭 켈리(Ulric Kelly)는 비즈니스포스트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와 같이 언급하며 수자원 보전을 위한 회사의 여러 노력을 강조했다.
그는 “TSMC는 수처리 및 물 재사용 시스템 구축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물 소비와 방류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2021년 최악의 가뭄에도 사업 운영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TSMC는 △물 사용량 감소 △폐수 재활용 설비 증가 △물 재사용률 상승 △폐수 방류량 감축 등 수자원 관리의 4가지 기본 원칙을 두고 있다. 이는 수자원 수급처 다변화, 효율성 관리, 재활용을 포함하는 3가지 관리 프로세스와 통합되어 운영된다.
▲ TSMC 대만 신주 본사에 위치한 'TSMC 혁신박물관' 내부에는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여러 노력과 성과가 기술되어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38가지로 구분해 분류하고 관리하는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다. 수자원 관리가 상당히 체계적인 기반을 두고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율릭 켈리는 TSMC가 2015년부터 물 재활용 기술에 투자하며 대만 정부 기관과 협력해 왔다고 전했다. 정부 지원을 받는 ITRI(공업기술연구원)과 관련 분야의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등 방식이다.
TSMC는 지속가능한 수자원 관리 글로벌 표준인 AWS(워터스튜어드십연합) 표준을 적용하고 있다. 3년 연속으로 AWS에서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최초의 반도체기업이다.
또한 2022년까지 국제 환경기구인 CDP(탄소공개프로젝트)의 물 안보 A리스트 기업에 포함되고 있는 소수의 반도체기업 가운데 하나로 세계적으로 워터리스크 대응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율릭 켈리는 TSMC가 이에 그치지 않고 소비하는 물보다 더 많은 수자원을 보충하는 ‘워터 포지티브’를 중장기 목표로 두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물 관리체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TSMC 대만 신주 본사 건물에 위치한 'TSMC 혁신박물관' 입구 사진. <비즈니스포스트> |
◆ 대만의 '실리콘 방패'도 결국 TSMC 물 관리 노력에 달렸다
TSMC와 대만 정부가 이처럼 워터리스크 대응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것은 반도체산업의 안정성을 지키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에도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산업, 특히 TSMC의 첨단 시스템반도체 생산공장은 중국의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대만의 안보를 지켜내는 ‘실리콘 방패’ 역할을 한다.
미국의 애플과 엔비디아, 퀄컴 등은 물론 다수의 중국 IT기업과 반도체기업도 TSMC 대만 공장에 반도체 공급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만약 TSMC의 대만 반도체 공장이 가동 불가 상태에 놓인다면 미국과 중국은 물론 전 세계 IT기업과 전자업체, 자동차기업 등이 모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도 쉽게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하기 어렵고 미국도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대만을 지키기 위해 군사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2021년 대만에 ‘100년 만에 최악의 사태’로 불리는 가뭄이 벌어지면서 TSMC의 반도체 생산에는 지정학적 리스크뿐 아니라 워터리스크 역시 중요한 대응 과제로 떠오르게 됐다.
TSMC는 선제적으로 대만 정부와 협력해 수자원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물 재사용량을 높인 덕분에 이러한 가뭄에도 큰 타격을 받지 않으며 세계 반도체업계의 물 관리 ‘모범사례’를 증명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 악화 등 리스크가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는 만큼 TSMC는 여전히 물 관리 역량을 더욱 키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 대만 신주과학단지에 위치한 TSMC 반도체공장 건물. <비즈니스포스트> |
9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TSMC 반도체공장은 대만 타이중 지역에서 ‘님비(NIMBY)’ 현상에 직면했다. 지역 주민들이 현지에 새 공장 건설을 반대하는 여론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TSMC 반도체공장이 대만 국가 차원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 지역경제에도 상당한 기여도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상황은 다소 이례적으로 꼽힌다.
타이중 주민들이 새 공장 건설에 반대해 온 중요한 이유는 결국 물 부족에 대한 우려다. 수자원이 제한된 지역에 공장이 들어서면 생활용수 등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TSMC는 그동안 다른 지역에서 이뤄낸 물 재활용률 등 성과를 앞세워 타이중시 정부를 적극 설득한 끝에 가까스로 공장 설립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만 내 반도체공장 신설을 추진할 때마다 이러한 논란을 겪게 될 수 있다.
율릭 켈리에 따르면 TSMC는 2022년부터 처음으로 대만 남부에서 ‘재생수 공장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같은 해 12월까지 38만 톤 분량의 폐수를 재활용해 도시에 공급했다.
그러나 2022년 연간으로 TSMC가 대만 사업장에서 사용한 물의 양은 총 1억500만 톤이다. 외부에 환원한 재생수의 양이 전체 사용량의 0.36%에 그친다. 근본적인 수자원 사용량을 줄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김용원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폭우와 가뭄 등 극단적 기후현상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한반도에 몰아친 115년 이래 최악의 폭우로 포항제철소 고로는 사상 처음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공장 운영에 필요한 수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 계획을 고심하고 있다. 물이 너무 많아도, 부족해도 문제다.
인구 증가와 산업 활성화, 기후변화로 ‘워터리스크(water risk)’, 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산업 안보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워터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반도체, 철강, 화학, 발전 등 주요 산업은 물론 국가와 지역경제도 위험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는 CDP한국위원회를 맡고 있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함께 국내외 주요 기업 및 물 관리 선진국의 리스크 관리 및 대응사례를 발굴해 보도한다. 최신 동향과 해법 관련 기사들은 비즈니스포스트 워터리스크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