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신동근 위원장이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지지부진하던 비대면 진료 법안(의료법 개정안)이
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를 계기로 법제화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비대면 진료는 이해당사자간 견해 차이로 법제화 전망이 불투명했지만 올해 국감에서 이례적으로 관련 증인 및 참고인을 대규모로 채택한 만큼 격론이 예상된다.
3일 국회에 따르면 12일 열릴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는 고승윤 비브로스(똑닥) 대표, 김성현 올라케어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권영희 서울시약사회장, 김대원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같은날 참고인으로 출석한다.
비브로스, 올라케어, 닥터나우는 건강 및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으로 비대면 진료 축소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기업들이다. 이들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은 비대면 진료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한편 의사협회와 약사협회는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는 9월21일 전체회의에서 일반 증인 15명과 참고인 33명에 대해 국감 출석을 요구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비대면 진료 관련 증인 및 참고인은 지난해 1명에서 올해 6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관련 증인 및 참고인이 늘어났다는 것은 이를 국감에서 보다 심도있게 다루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법제처는 보건복지부(복지부) 소관 의료법 개정안을 정부가 국회를 설득해야 하는 주요 법안으로 지정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비대면 진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며 “의료계와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 첨단기술의 혜택을 국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 과제’에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 추진 계획이 포함되기도 했다.
법제처에서 추진 중인 비대면 진료 법안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복지위 법안소위에서 3월21일을 시작으로 6월27일, 8월24일 총 세 차례에 걸쳐 심사를 받았지만 잇따라 계속심사(보류) 판정을 받았다.
또 최근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9월20일로 예정된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는 의료법 일부개정안을 심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야당 의원들이 정부가 비대면 진료 법안 관련 부작용 대책 등 수정안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정에 반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는 비대면 초진 대상을 현재 허용 중인 거동불편자, 격오지(도서·산간 지역) 거주자 등에서 야간·심야와 공휴일 기간까지 허용 시간을 넓힐 계획을 세웠다.
복지부는 다만 야간·심야·공휴일에 비대면 초진을 어떤 질환까지 허용할지는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소아과 진료까지만 허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전체 질환 모두 허용할 것이란 추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소아과 질환까지 확대하는 안은 복지부가 앞선 시범사업 운영안을 세울 당시 포함했던 것으로 의료계 반대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최종안에서 삭제한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8월28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건강과 의료체계를 위협하는 초진 비대면 진료는 불가능하다는 대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초진 대상을 확대하면 △안전성 문제 △개인정보 확인 △법적 책임에 대한 안전장치 미비 △의료사고 가능성·소송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강태경 가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9월10일 기자간담회에서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의 보조수단으로 재진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고 초진 진료는 대면 진료만 가능케하며 의원급 의료기관 위주로 시행한다는 것이 정부와 의료계가 논의한 원칙"이라며 "이는 비대면 진료가 의학적 효과성 및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했음에도 소위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의료계가 전향적으로 제시한 바로 이런 원칙들 이외의 것은 더 이상 의사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문배 가정의학과의사회 총무이사는 특히 노인 및 소아환자들의 경우 일반 성인보다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비대면 초진확대 움직임에 경계심을 나타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2월24일부터 2023년 1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된 비대면 전화·화상 진료 건수는 3661만 건으로 1379만 명이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정부는 시범사업 차원에서 섬·벽지 환자와 65세 이상 장기요양등급을 판정받은 환자, 장애인, 감염병 확진 환자 등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초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예외적으로 초진 진료도 허용했지만 질병 단계 격하로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정부가 올해 5월 재진위주·약 배달 제한적 허용 조치를 실시한 뒤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의 폐업은 가속화되고 있다. 8월 데일리팜에 조사에 의하면 30개 플랫폼 가운데 8곳이 서비스를 종료해 3곳 가운데 1곳이 폐업한 것이다.
이에 비브로스, 닥터나우 등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은 정부에 지속적인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장지호 닥터나우 이사는 7월27일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연 '스타트업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규제개선 방안' 심포지엄에서 "1회 이상 방문했던 의료기관에서 30일 이내에 동일질환으로 진료를 받도록 하는 현재 안 대로 법제화가 이뤄진다면 이는 공식적인 사형선고와 다름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비대면 진료는 이해당사자간 견해 차이가 커 법제화 전망이 불투명했지만 올해 국감에서 이례적으로 비대면 진료와 관련한 증인 및 참고인을 대규모로 부른 만큼 전향적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복지위 의원들은 국감장에서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 당사자들로부터 의견을 청취한다. 또 의료계 인사들로부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를 듣기로 했다.
이번 정기국회 이후 국회는 사실상 총선 체제로 전환되기 때문에 이번 국감이 비대면 진료 법안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22일 개최한 ‘해외 거주자를 위한 비대면 진료 확대 가능할까?’ 토론회에서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는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규제 샌드박스 사업으로 소수의 의료기관이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외국인 비대면 진료 역시 일부 의료기관에서 실시하고 있지만 물리적 거리로 인해 대면진료와 병행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비대면 진료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대면진료의 보완재라고 말했다.
환자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8월22일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의료 플랫폼이 아닌 정부가 공공 플랫폼을 구축해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