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만에 대형건설사 사망사고 3건, 중대재해법 완화 기조 제동 걸리나

▲ 8월에만 대형건설사 공사현장에서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해 중대재해법 완화 기조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8월에만 대형건설사 공사현장에서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며 추가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에 건설업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2분기 100대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11개사 13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명이 늘었다.

건설 성수기인 3분기 폭염·폭우가 예고되면서 건설사들이 사고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정부는 규제완화를 내세우며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타진하고 있는데 잇딴 사망사고로 동력을 잃고 오히려 처벌 강화 목소리가 힘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7일 건설업계 안팎을 종합하면 이달 들어 3곳의 대형건설사에서 잇따라 사망사고가 발생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는 말이 나온다.

현대건설에서 지난해 6월 이후 1년 2개월 만에, 포스코이앤씨에서 2021년 8월 이후 2년 만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DL이앤씨는 지난 7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사망사고가 나왔다. 
 
사흘 만에 대형건설사 사망사고 3건, 중대재해법 완화 기조 제동 걸리나

▲ 7월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현대건설이 시공하고 있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철근에 허벅지를 찔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 도중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황준하 안전보건최고경영자(CSO)가 경남 창원에 위치한 신축공사 현장에서 혹서기 현장 특별점검 및 온열질환 예방 캠페인을 실시했는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3일 DL이앤씨의 서울 서초구 아파트 재건축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물에 빠진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중대재해로 결론이 난다면 DL이앤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6건 7명의 사망자가 나온 건설사가 된다. 

이어 5일 포스코이앤씨가 짓고 있는 인천 송도 주상복합 신축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추락사고로 숨을 거뒀다. 

포스코이앤씨는 국토교통부의 ‘스마트얼라이언스’의 스마트안전 부문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10대 건설사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번 사고로 명예에 손상이 가게 됐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3곳의 건설사는 고용노동부 조사에 적극 협조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미 올해 대형건설사 공사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에서 건설공사 성수기 3분기를 맞이해 긴장감이 고조된다.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건설사의 대표이사, 안전보건책임자들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며 점검하고 있지만 속수무책인 셈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뒤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주요 건설사로는 동부건설, HJ중공업 건설부문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대형건설사 공사현장에서조차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사망사고가 줄지 않고 이어져 법 적용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4일 열린 2023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관한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할 때 킬러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킬러규제로 지목된 규제는 중대재해처벌법, 대형마트 의무휴업법,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 관리법 등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투자를 아예 못 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킬러규제는 없애야 한다”며 “단 몇 개라도 킬러 규제를 찾아서 시행령이나 법률 개정을 통해 신속히 제거해 성장동력이 되는 민간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6월17일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중대재해 예방 관련 특정 예방 조치를 마친 사업주의 형사처벌을 감경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선방안을 올해 6월까지 만들기로 했지만 일정이 상당히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와 야권은 정부의 중대재해법 개정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처벌대상과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다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건설업 사망자는 118명(1분기 55명, 2분기 6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8명보다 10명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사흘 만에 대형건설사 사망사고 3건, 중대재해법 완화 기조 제동 걸리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7월31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이행점검'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7월5일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들과 정의당 등은 '생명 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을 출범하고 내년 6월까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저지에 나섰다.

이들은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이 기업처벌은 완화하고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를 연장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개악을 즉각 중단하고 신속, 엄정한 법집행으로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완화가 아니라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5월25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법 시행 이후에도 노동현장과 산재사고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며 "지금 정부는 법 완화가 아니라 강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을 강화하는 엄벌주의를 통해 현장의 사고를 줄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즉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기업의 최종 결정자에게 안전을 챙기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처벌대상이 ‘경영책임자 등’으로 명시돼 기업의 오너인지, 대표이사인지, 안전보건책임자인지 명확하지 않다. 

또한 안전·보건 인력과 시설을 갖추기 위한 적정 예산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원청의 입장에서 어느 범위까지 하청을 관리해야 법을 준수한 것으로 인정되는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입법취지대로 산업재해 예방에 힘쓰기보다 처벌을 피하기 위한 대응에 급급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경영계는 지나친 엄벌주의라고 항변하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엄벌주의는 예방효과도 낮고 이미 발생한 피해를 복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방이 최선책인 만큼 기업이 스스로 안전경영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건의서를 지난 5월 제출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사망사고 감소효과가 뚜렷하지 않고 과도한 처벌규정으로 대표이사가 실형을 받으면 경영상 어려움이 따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 대상이 되는 사망자 범위를 현행 1명 이상에서 동시 2명, 최근 1년 동안 2명 이상으로 수정하고 경영책임자에 관한 조항도 대폭 축소할 것을 요청했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