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미국 반도체공장 가동 연기, 삼성전자 파운드리 반사이익 될지 불투명

▲ TSMC가 미국 애리조나에 신설하는 반도체 생산공장 가동을 늦추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대만 신주과학단지 TSMC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전문인력 부족과 인건비를 비롯한 비용 부담 등 악조건을 고려해 미국 애리조나에 신설하는 반도체공장 가동 시기를 늦추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삼성전자가 TSMC보다 먼저 미국에 첨단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운영하며 고객사 수주에 유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커졌지만 수혜를 낙관하기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23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TSMC의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을 두고 회의적 시각이 떠오르고 있다. 대만 내 공장과 비교해 사업 운영에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TSMC는 최근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을 통해 미국 신공장 가동 시기를 기존에 계획한 2024년에서 2025년으로 늦춘다는 발표를 내놓으며 부정적 관측에 더욱 힘을 실었다.

애리조나 공장은 TSMC가 대만 이외 국가에 처음으로 첨단 반도체 미세공정을 도입하는 생산설비다. 그만큼 전략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충지로 평가받아 왔다.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TSMC가 반도체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는 동시에 미국과 대만 사이 협력 강화를 주도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TSMC는 2022년 말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장비 반입식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초청해 투자 규모를 원래 계획된 120억 달러(약 15조4600억 원)에서 400억 달러(약 51조5600억 원)까지 늘린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자연히 해당 공장은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미국의 첨단 제조업 부흥을 이끌고 중국 반도체산업을 견제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다.

TSMC가 이처럼 중요성이 큰 애리조나 반도체공장의 가동 시기를 과감히 미루기로 한 것은 그만큼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류더인 TSMC 회장은 미국 내 전문인력 부족과 높은 비용 등을 미국 파운드리공장 가동 지연에 이유로 들며 이외에도 몇 가지 이유를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TSMC의 애리조나 공장 투자가 원활히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은 이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세계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TSMC 미국 반도체공장 가동 연기, 삼성전자 파운드리 반사이익 될지 불투명

▲ TSMC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건설현장 사진. < TSMC >

미국에서 심각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지며 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재비와 인건비도 가파르게 상승해 왔다. 미국 달러화 강세도 TSMC에 금전적 부담을 키웠다.

대만과 달리 현지에서 다수의 반도체 분야 전문인력을 단기간에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잠재적 리스크로 꼽혀 왔다.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침체되면서 TSMC를 비롯한 다수의 반도체기업이 시설 투자를 대폭 축소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미국 공장 투자가 축소되거나 늦춰질 만한 배경으로 지목됐다.

결국 TSMC의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가동 시기가 지연된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TSMC의 이러한 결정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약 21조 9100억 원)를 들여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신설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향후 전략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는 현재 신설하는 미국 반도체공장에 TSMC와 마찬가지로 4나노급 첨단 미세공정을 도입할 계획을 두고 있다. 당초 예정됐던 가동 시기도 2024년으로 TSMC와 일치한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테일러 반도체공장 건설현장 사진을 올리며 “내년 말 4나노 반도체 출하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했다.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2024년 공장 가동 계획에 변화가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애플과 엔비디아, AMD 등 미국에 위치한 파운드리 주요 고객사는 바이든 정부 정책에 맞춰 미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를 적극적으로 수급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있다.

이들은 현재까지 TSMC의 첨단 미세공정을 모바일 프로세서와 그래픽반도체(GPU), 인공지능 반도체 위탁생산을 주로 활용해 왔다.

자연히 TSMC가 미국 내 신공장을 통해 이러한 고객사들의 주문을 수주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공장 가동 시기가 삼성전자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커지며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TSMC 미국 반도체공장 가동 연기, 삼성전자 파운드리 반사이익 될지 불투명

▲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건설현장 사진.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양산을 TSMC보다 먼저 시작하며 고객사 주문을 수주하기도 그만큼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는 의미다.

경계현 사장은 “미국 주요 고객사들은 자신들의 제품이 이곳에서 생산되기를 기대한다”며 현지 고객사 주문 확보에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역시 전문인력 확보와 인건비, 공사비 부담 등 측면에서 대부분 TSMC와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반사이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TSMC가 공장 가동 시기를 늦추는 것은 미국 정부와 시설 투자 보조금 규모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정부가 TSMC 등 반도체기업에 중국 투자 제한과 사업기밀 공유, 초과이익 반환 등 조건을 내걸고 보조금 규모도 축소할 조짐을 보이자 TSMC에서 ‘강수’를 둔 것이라는 의미다.

TSMC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을 기대하고 미국 내 시설투자 규모를 확대했는데 인텔과 마이크론 등 현지 기업에 투자 규모가 밀리면서 수혜가 다소 불투명해지고 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현재 전 세계 첨단 반도체 공급량의 약 90%를 책임지는 TSMC의 공장 가동 시기가 늦어지는 일을 적극적으로 방지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블룸버그는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업 활성화를 전략적인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다”며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TSMC를 지원하는 데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