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창업주 '무노조 경영' 고집 꺾나,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에 변수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12월6일 TSMC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 EPA.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미국 바이든 정부의 지원을 노려 애리조나에 대규모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 설립과 관련한 변수를 안게 됐다.

TSMC는 장기간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노조 설립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대만 타이완뉴스 보도에 따르면 TSMC 경영진은 미국에 신설하는 반도체 생산공장에서 노조 설립 가능성이 거론되는 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장중머우 TSMC 창업주는 최근 대만에서 열린 산업포럼에 참석해 노조 문제를 언급하며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다소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말 TSMC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TSMC의 두 반도체공장에 모두 노조가 들어설 것이라며 “노조 조합원은 최고의 근로자”라는 말을 내놓았다.

TSMC는 400억 달러(약 52조 원)에 이르는 금액을 들여 애리조나에 두 곳의 반도체공장을 신설하고 있다. 공장 건설과 파운드리 생산라인 가동을 위해 상당한 인력을 고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라 미국 내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TSMC 등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 및 세제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상무부는 이 과정에서 반도체기업들이 공장 근로자들의 노조 가입을 장려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장중머우를 비롯한 TSMC 전현직 경영진은 오래 전부터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해왔던 만큼 미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타이완뉴스에 따르면 장중머우는 과거 구글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IT기업이 성공할 수 있던 배경으로 노조가 설립되지 않은 회사라는 점을 꼽기도 했다.

그는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임직원이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며 노조 설립은 이를 방해하는 행위라는 확고한 태도를 보였다.

장중머우는 현재 TSMC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TSMC 현 경영진이 노조를 바라보는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정부뿐 아니라 TSMC 내부에서도 노조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질 수 있다. TSMC의 임금과 근로환경이 지금보다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 데 따른 것이다.

타이완뉴스에 따르면 다수의 TSMC 근로자들은 하루 12시간 근무, 주말근무 등이 빈번하게 이어지는 데 불만을 느끼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자연히 미국 공장에서 근무하게 되는 근로자들도 노조 가입을 통해 조직적으로 임금 인상과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데 긍정적 태도를 보일 공산이 크다.

미국뿐 아니라 TSMC가 독일 드레스덴에 건설을 추진하는 새 파운드리공장 역시 노조 설립과 관련한 변수를 안고 있다.

류더인 TSMC 회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유럽의 강한 노조 세력이 향후 현지 반도체공장 투자와 운영에 어려움으로 남게 될 수 있다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TSMC가 현지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전담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며 노조 설립 관련한 문제를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 한국 등 주요 선진국에 소속된 기업과 달리 TSMC는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겠다는 점을 당당하게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TSMC 창업주 '무노조 경영' 고집 꺾나,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에 변수

▲ TSMC 반도체 생산공장 내부 사진. < TSMC>

TSMC 경영진은 무노조 경영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등으로 반도체 생산 거점을 다변화해야만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원칙을 고집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TSMC는 첨단 파운드리 생산공장을 세계 여러 지역에 분산해 위험을 분산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각국 정부도 자국에 TSMC 반도체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적 지원을 약속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만 이외 국가에서 단기간에 다수의 반도체공장 근로자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도 TSMC가 노조 설립을 비롯한 근로자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야만 할 이유로 꼽힌다.

장중머우는 TSMC가 해외 국가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짓는 데에도 오래 전부터 부정적 태도를 보여 왔다. 인건비를 비롯한 비용이 대만 내 공장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고 조직문화도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 때문이다.

결국 TSMC가 노조 설립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 가능성을 고려해 해외 반도체공장 투자 규모를 기존 계획보다 축소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이는 단지 TSMC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도 수 년 전까지 무노조 경영 원칙을 유지해 왔는데 미국에 새 파운드리공장을 건설하며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을 위해 노조 가입자들의 적극적 지지를 기대하고 있는 만큼 TSMC와 삼성전자 등 기업이 미국 반도체공장에 노조 설립을 장려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 차원의 압박이 더 커질 수도 있다.

한국과 대만 정부 및 반도체기업은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이러한 지원 조건을 두고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 상무부는 이를 두고 여전히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공장 가동 시기는 모두 내년부터로 예정됐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