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월15일 서울시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근로시간 기록·관리 우수 사업장 노사 간담회에서 주69시간제 폐기 촉구 기습시위를 하는 민주노총 청년 활동가들을 향해 시위 종료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근로시간 개편안에 반발하는 MZ노조를 설득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정부는 근로시간 개편안에 청년층이 호의적일 것이라 기대했지만 사회적 대화의 한 축으로 주목받는 MZ노조가 반대하자 이 장관은 부랴부랴 윤 대통령의 수정 보완 지시를 수행하게 됐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근로시간 개편안과 관련한
이정식 장관의 행보를 놓고 '만 5세 입학' 정책 혼선 논란으로 사퇴했던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떠올리게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사회적 논쟁이 불가피한 사안을 놓고 섣불리 정책을 추진하다 거센 반발에 부딪혀 여론수렴에 나서는 모습이 만 5세 입학 사태와 닮은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 추진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 장관은 이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근로시간 관리 우수 사업장 노사 간담회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근로시간 개편안 발표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지적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있는 것"이라면서 "주무 부처로서 중심을 잡고 챙기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날 MZ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를 만나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와 간담회는 22일로 예정돼 있었지만 만남을 앞당겼다.
윤 대통령이 전날 근로시간 개편안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자 긴급히 마련된 자리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장관은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개최하려던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 대책 발표 브리핑도 미루기로 했다.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근로시간 개편안을 보완할 예정인 만큼 근로시간 개편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 대책도 일단 연기하기로 한 것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
윤석열 정부는 충분한 공론화 없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을 추진했다가 국민 반발에 부딪혀 철회도 모자라 부총리까지 사퇴한 교훈을 잊었느냐"며 "대통령은 언제나 말로 때우기 바쁘고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우왕좌왕할 뿐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8월
박순애 전 부총리는 아동이 공교육 제도로 들어오는 시기를 앞당겨 지역이나 가정 여건에 따라 발생하는 유아기 교육격차를 줄이겠다며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정책을 꺼냈다. 하지만 공론화 절차가 없었던 터라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이에 박 전 부총리는 정책 추진 의사를 밝힌 지 나흘 만에 6개 교육단체와 간담회를 열고 정책 철회 가능성을 내비쳤다. 결국 박 전 부총리는 학제개편안 발표 뒤 열흘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고
윤석열 정부는 이주호 부총리를 임명할 때까지 3개월 간 교육 주무부처 수장 공백을 겪어야 했다.
이 장관은 근로시간 개편에 따른 장시간 근로와 공짜 야근 가능성을 향한 우려를 해소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이날 근로시간 기록·관리 우수 사업장 노사 간담회에서 "근로시간 유연화가 이른바 포괄임금제와 만나 장시간 근로를 심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현장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입법예고 기간 중 청년 등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적극 찾아가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개편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밑바탕이나 다름 없는 정책이다.
정부가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등 기존 노조들과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그나마 정부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MZ노조마저 설득하지 못하면 노동개혁의 첫걸음부터 어그러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장관이 여론 다잡기에 총력을 다하려는 이유다.
대통령실 역시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이날 오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 정책 핵심은 MZ 근로자 등 노동 약자의 권익보호"라면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노동 약자의 의견을 더 세밀하게 청취한 후 방향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와 야권이 근로시간 개편안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이 장관이 이를 넘어서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정책협의회에서 "노동부 장관이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한 지 일주일 만에 대통령은 재검토를 지시하고 국무총리는 69시간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는 지경"이라며 "주 69시간 근로 시간개편안 자체를 완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도 전날 브리핑에서 "
윤석열 대통령이 개편안을 보완 검토하겠다는 것 자체가 이 무리수에 문제점이 있음을 자백하는 꼴"이라면서 "아예 개편안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