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왼쪽)가 2007년 첫 아이폰을 소개하는 장면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당시 모습. <애플><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Think Different(다름을 생각하라).”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극단적으로 얘기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어딘지 닮은 구석이 있는 위 두 문장은, 각각 애플이 2000년 전후 브랜드 및 제품 광고에 내걸었던 슬로건과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에서 임원들을 향해 내놓은 말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와 이건희 전 회장의 경영 철학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두 회사의 사업 전략과 방향성에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유명한 표현으로 남게 됐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해당 슬로건을 소개하는 행사에서 ‘기본으로 돌아가겠다’는 목표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전체 제품 가운데 70%를 과감히 포기하고 30%의 핵심 프로젝트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마케팅의 핵심 목표가 결국 회사의 정체성과 가치를 보여주는 일에 있다며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데 기여하겠다는 뜻을 ‘Think Different’라는 슬로건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스티브 잡스의 선언 이후 출시된 일체형 컴퓨터 ‘아이맥(iMac) G3‘은 유선형 디자인과 다양한 색상, 투명한 케이스 등으로 이전까지 흰색 박스 형태에 그치던 컴퓨터 디자인의 고정관념을 깬 제품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순차적으로 출시된 맥북과 아이팟, 아이폰 등 상품에도 그의 확고한 경영 철학이 반영돼 애플이 한동안 세계 전자업계 최고의 혁신기업이라는 명성을 얻는 데 기여했다.
이건희 전 회장이 한국의 주요 임원과 해외 주재원을 독일 프랑크프루트로 긴급하게 불러 내놓았던 신경영 선언은 삼성전자 임직원은 물론 한국 사회 전반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그가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꼽히던 삼성전자 및 계열사를 ‘암에 걸린 환자’로 비유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은 삼성전자 제품의 높은 불량률과 비효율적 의사결정 체계, 조직문화 등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바꿔내지 않으면 삼성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품질 개선에 집중하고 첨단 기술력 강화에 더욱 집중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Think Different’와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스티브 잡스와 이 전 회장의 발언은 결국 애플과 삼성전자의 역사에 중요한 변곡점이자, 두 경영자의 스타일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띠게 됐다.
그리고 지금, 애플은 팀 쿡 CEO의 리더십 아래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이전과 다소 성격이 다른 기업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2년 말 이재용 회장의 승진으로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를 맞으며 다시 한 번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됐다.
▲ 팀 쿡 애플 CEO(왼쪽)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팀 쿡은 스티브 잡스가 병환으로 사망하기 약 6주 전인 2011년 8월 애플 CEO로 취임했다. 후임자로 애플을 이끌어 갈 만한 능력을 스티브 잡스는 물론 이사회와 주주들에 충분히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는 애플이 자체 공장과 물류창고 운영을 중단하고 모든 제품을 위탁생산업체에 맡기는 지금의 사업 구조를 구축한 인물이다. 이를 통해 전 세계에서 급증하는 애플 상품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고, 애플의 외형 성장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그러나 ‘혁신가’라는 이미지를 굳힌 스티브 잡스와 달리 팀 쿡은 하드웨어 및 사업 운영 전문가였던 만큼 시간이 지나며 애플이 혁신 동력을 잃고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된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아이폰을 선보이며 시장에 안겼던 충격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용 회장은 이건희 전 회장이 입원한 2014년부터 사실상 삼성의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후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는 등 여러 부침을 겪는 가운데도 삼성전자의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신사업 진출을 주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보였다.
이 회장이 삼성전자의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의료기기와 LED, 바이오와 2차전지, 태양광을 제시한 것과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반도체 파운드리를 비롯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1위 달성을 목표로 내놓은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동안 이 회장이 수감 상태로 경영에 참여하기 어려웠거나 정기적으로 재판에 출석해야 해 해외 출장 등 일정을 원활히 소화하지 못했던 만큼 이러한 구상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 제약이 따랐다. 하지만 이제는 회장 취임을 통해 확실하게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된 만큼 미래 성장을 위한 전략이 더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용 회장과 팀 쿡은 각각 이건희 전 회장과 스티브 잡스의 기업 철학을 승계하면서도 이를 삼성전자와 애플의 현재 사업 구조 및 시장 상황 등에 맞춰 바꿔내고 이를 뒤이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요 수익원인 반도체, 애플의 핵심으로 꼽히는 아이폰은 각각 선대 회장과 스티브 잡스가 초반부터 주도적으로 키워낸 사업에 해당한다. 이 회장과 팀 쿡은 결국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넘어설 확실한 신성장동력을 찾아내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셈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애플은 모두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 및 경제적 리스크 확대, 기존 사업의 성장 둔화 등으로 어려운 입장에 놓이고 있다. 과거의 성공에 기댈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철저히 바꾸라’는 이 회장의 말과, 스티브 잡스의 슬로건 ‘Think Different’가 두 기업에 모두 더욱 절실한 교훈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용원 기자
[편집자주]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및 국가 경쟁력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경제팀에서 연재하는 [삼성의 라이벌] 기획은 삼성전자와 주요 라이벌 기업 사이의 경쟁 판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삼성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 이러한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진단한다.
2부- 삼성 vs APPLE
(6) 삼성전자가 애플 반도체 위탁생산할까, ‘프레너미’ 관계 주목
(7) 스티브 잡스의 'Think Different', 이건희의 '철저히 바꿔라'
3부 - 삼성 vs INT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