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2-10-31 14:27:59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서울 한복판에서 15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온 이태원 참사에 오세훈 서울시장의 위기대응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오 시장은 지난 8월 수해피해에 이어 약 70여 일 만에 더 큰 사회적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국가 재난으로 떠오른 이번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하기 위해 3선 시장으로서 리더십을 보이는 게 어느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 이태원 참사에 오세훈 서울시장의 위기대응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오세훈 시장이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을 찾아 현장을 살핀 뒤 이번 참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은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오 시장은 방명록에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고 남기며 참담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주말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는 이날 오전 집계 기준 사망자 154명을 포함해 303명의 인명피해가 나와 2014년 세월호 사고(사망자 304명) 이후 최대 규모 인명 사고로 기록됐다. 압사사고만 놓고 보면 1996년 부산공설운동장(사망자 67명), 2005년 상주시민운동장(사망자 11명) 등 이전 피해를 훌쩍 뛰어넘어 역대 최악의 참사가 됐다.
서울에서 발생한 대형사고로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가장 큰 참사다. 삼풍백화점 사고 때는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이 발생했다.
이태원 사고로 수백 명의 피해자가 나오자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뒤 처음으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사고 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인 오 시장이 이번 사고의 수습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 시장은 이번 주 외부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사고 수습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은 사고가 발생한 29일 밤 당시 해외출장을 나가 있어 비판여론이 나오기도 했으나 사고 소식을 접한 뒤 출장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귀국해 비교적 기민한 대응을 보여줬다.
오 시장은 30일 오후 4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5시40분쯤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았다. 그는 사고 현장을 방문하고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서울시 전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 방안을 정부와 논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시청을 방문해 오 시장에게 사망자 유가족과 지자체 담당자 1:1 매칭을 30일 밤 안으로 완료해줄 것을 당부하자 오 시장은 유족별로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31일부터 진행될 장례 절차 진행에 소홀함이 없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1일 유가족과 서울시 전담공무원 매칭이 완료됐다고 밝혔다. 308명의 직원이 24시간 동안 2교대로 유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서울시와 서울시 소속 25개 자치구는 관내 식당과 술집의 영업 자제를 유도하는 등 후속 대책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각 자치구는 이번 주에 열기로 예정된 대형 행사 대부분을 취소하거나 축소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9일 밤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현재 사망자 신원 확인과 부상자 병원 이송 작업이 마무리되고 사고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오 시장은 앞으로 부상자 회복과 지자체 차원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더욱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행사 주최자가 없어 책임소재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다만 과거 사고 사례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상황과 비교했을 때 지자체장으로서 오 시장에게 좀 더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삼풍백화점 사고 당시에는 조순 서울시장은 취임식을 현장에서 치를 정도로 임기를 막 시장하던 때라 책임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 이태원 참사는 오 시장의 임기 중 벌어진 사고인데다 사고 당일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만큼 행정능력을 보여줬어야 한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서울시는 이번 이태원 핼러윈 축제와 관련 별도의 안전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서울시의 안이한 대응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정치권에서도 쓴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 본부장을 맡은 박찬대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뉴스킹박지훈입니다 인터뷰에서 “용산구청, 서울시, 경찰의 안전관리 대책이 예년도에 비해서 많이 미흡했던 것 같다”며 “그동안 해오던 대로만 관리를 했어도 피할 수 있거나 막을 수 있던 참사라는 생각에 상당히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번 이태원 사고와 다소 차이는 있으나 많은 인원이 몰리면서 발생한 유사 사례로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도 언급이 된다. 2014년 10월17일 판교신도시 유스페이스 광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인원이 건물 환풍구 위에 올라갔다가 환풍구가 붕괴돼 16명이 사망한 사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성남시장으로서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져야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사고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여론을 반전시켰다.
사고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분당구청에 임시로 마련한 경기·성남 합동 사고대책본부를 밤새 지키며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와 장례, 법률 자문, 심리 치료, 장학금, 생계 지원책 등을 직접 챙겼다. 이 대표는 2016년 유족들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오 시장은 서울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지자체장이지만 그간 재난 대응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지난 8월 수해피해가 발생하자 과거 2011년 수해피해에 속수무책이었던 일로 얻은 오명인 ‘오세이돈’이 다시 소환되기도 했다. 이번 사고 대처를 통한 위기대응 능력 입증이 더욱 절실한 까닭이다.
오 시장은 이날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서울시청으로 복귀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조금 상황을 정리하고 수사 결과도 나온 다음에 제 입장을 말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