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이 현지 자동차기업을 대상으로 전기차 관련 인센티브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은 BMW 전기차 'i4'.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이 미국과 같이 강력한 전기차 지원 정책을 시행해 중국 자동차기업의 시장 지배력 강화를 막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BMW와 폴크스바겐 등 유럽 주요 자동차기업이 인센티브를 노려 전기차 생산과 판매를 적극 확대한다면 이들을 고객사로 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3사가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로이터는 17일 “유럽 자동차기업이 BYD 등 중국 경쟁사와 대결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유럽연합 차원에서 강력한 정책적 지원을 실행해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분석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벨기에 소속 비영리기관인 환경연구단체 T&E는 이날 유럽의 친환경차 전환 속도가 부진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고 유럽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에서 상반기에 판매된 전체 차량 가운데 전기차 비중은 11%로 시장 예상치인 13%를 다소 밑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현지 자동차기업들이 전기차 출시 및 판매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 점이 이유로 지목된다.
반면 BYD와 그레이트월모터스 등 중국 자동차기업의 유럽 내 전기차 판매량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유럽 전기차 판매량 가운데 약 5%는 중국산 차량으로 집계됐다. T&E는 2025년까지 중국산 전기차 비중이 18% 안팎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전기차 등 친환경차 생산업체에 보조금을 주는 등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는 점이 현지 자동차기업의 유럽 진출 확대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유럽연합과 유럽 주요국 정부는 전기차 생산과 판매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자동차기업들이 판매 확대에 속도를 내야 할 충분한 동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T&E는 “유럽 자동차기업들의 소극적 전략은 결국 중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전기차를 앞세워 진출을 확대하며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유럽 전기차시장의 주도권이 자칫하면 중국 등 해외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셈이다.
T&E는 유럽연합이 해외 경쟁사의 공세를 방어하는 데 효과적 정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중장기적으로 경제와 주요 산업 주도권을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유럽연합이 중국이나 미국과 같이 당국 차원에서 자동차기업들의 전기차 출시 확대를 이끌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다.
중국 정부는 올해 들어 전기차 등 친환경차 생산과 판매에 제공하는 보조금 지급 기간을 연장하며 BYD를 비롯한 자국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BYD는 정부 지원에 힘입어 내수시장에서 판매량을 크게 늘린 데 이어 올해 안에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에 전기차를 출시하고 유럽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시행해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며 현대차를 비롯한 글로벌 자동차기업의 미국 내 공장 투자 및 전기차 생산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과거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등 친환경 정책에 가장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전기차 활성화 정책 측면에서는 주요 국가에 뒤처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부터 유럽연합이 추진해 온 기후위기 대응 법안에는 전기차 지원에 관련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량을 20배 이상 늘린다는 계획을 내놓고 200억 유로(약 28조 원)에 이르는 전기차 보조금 정책도 언급했다.
여전히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단계에 불과했지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을 계기로 정식 입법과 시행 절차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의 전기차 지원 정책은 자연히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등 유럽 주요 자동차기업을 전기차 배터리 고객사로 둔 한국 배터리3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해당 기업들이 인센티브를 노려 전기차 생산을 확대한다면 자연히 유럽 내 배터리공장을 운영하며 충분한 공급 능력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한국 배터리업체가 수혜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3사는 모두 헝가리 등 유럽에 대규모 배터리공장을 운영하며 꾸준히 증설 투자를 벌여 현지 고객사에 대응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전기차산업 육성 정책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는다면 한국 배터리3사가 선제적으로 공급 기반을 구축한 성과를 봐 실적을 크게 늘릴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CATL 등 중국 배터리업체도 중장기적으로 유럽 고객사 수요 확보를 노려 독일 뮌헨에 대규모 배터리 생산공장을 신설하는 등 한국 배터리업체와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배터리3사는 이미 대부분의 유럽 자동차기업과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역량을 인정받았고 충분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유럽 전기차시장에서 현지업체들의 영향력이 커져 중국 자동차기업들의 진출이 어려워질수록 한국 배터리3사도 중국 경쟁사와 대결에서 유리해지는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T&E는 “유럽연합은 미국 수준의 전기차 지원 정책을 통해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에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며 “전기차가 보조금에 힘입어 가격 경쟁력을 갖춰내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권고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