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2-10-05 16: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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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최근 10년 간 국회 국정감사 단골소재를 꼽으라면 ‘론스타’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악연을 맺은 지 20년, ISDS(투자자-국가 사이 분쟁 해결절차) 다툼을 벌인 지 10년이 지나는 동안 국회 국감장에서 론스타 이슈는 수없이 다뤄졌다.
▲ 6일 국회 정무위의 금융위 국감에서 론스타 사태가 집중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은 이전과 달라 보인다.
2012년 론스타가 제기한 ISDS의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판정이 8월 말 나왔고 판정문 역시 9월 말 공개됐기 때문이다.
국회는 그동안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판정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제한적 정보만 가지고 론스타 문제를 다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판정 결과와 판정문을 앞에 놓고 행정부와 본격적으로 진실 공방을 벌일 수 있게 됐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6일 정무위의 금융위원회 국감에서 2011~2012년 론스타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매각 협상 과정에서 모피아(재무부처의 고위관료 출신 인사들을 마피아에 빗대어 부르는 말)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집중 추궁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민주당 정무위 의원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몇몇 의원들은 론스타 관련 질의를 위해 태스크포스(TF)까지 꾸리고 국감을 준비하고 있다”며 “론스타 사태의 진실과 모피아 책임자를 밝히기 위한 질의 전략을 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시민단체와 마찬가지로 ISDS 중재판정 결과로 한국정부가 론스타에 3천억 원이 넘는 돈을 세금으로 물어줘야 하는 사태의 근본 원인을 조직을 지키기 위한 모피아의 보신주의에서 찾고 있다.
론스타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모피아가 지적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국감은 론스타 ISDS 관련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중재판정문 전문이 공개된 뒤 처음 열린다는 점에서 큰 차별점을 지닌다.
판정문을 비롯한 정부의 론스타 ISDS 관련 정보공개 여부는 그동안 론스타 사태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정부는 2012년 론스타의 ISDS 중재신청 이후 중재판정부가 양측에 비밀유지 의무를 부과했고 관련 자료가 공개되면 중재판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론스타 사태를 파고든 시민단체는 물론 론스타 사태에 관심을 지닌 의원들도 제한된 정보를 놓고 근거가 다소 빈약한 추측성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9월 말 법무부의 판정문 전문 공개로 진실 규명에 한 발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예고편은 이미 시작됐다.
론스타 사태는 전날 국무조정실과 국무총리비서실 등을 상대로 한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황운하 민주당 의원은 “판정문을 보면 중재판정부는 외환은행 매각 사건을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과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공모해 외환은행 매각 가격을 부당하게 깎고 론스타는 손해를 한국정부에 청구하는 구조라고 판단했다”며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에게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황 의원은 “판정문 853항을 보면 ‘하나금융 회장과 금융위원장은 오랜 친구였다. 그들은 최고 상위 단계에서 정부를 정교하게 다뤘다’고 적혀 있다”며 “중재판정부는 하나은행 회장과 금융위원장을 사실상 공모관계로 인정했다”고도 덧붙였다.
6일 정무위 국감에 출석하는 론스타 관련 증인과 참고인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정무위 국감에는 김승유 전 회장이 증인으로 신청됐고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참고인으로 나온다.
김 전 회장은 모피아 책임론의 핵심 당사자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 교수는 시민사회에서 오랜 기간 론스타 사태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김 전 회장과 전 교수가 공식석상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으로 알려졌다. 증인과 참고인은 국감장에서 서로 공방을 주고받지 않지만 김 전 회장과 전 교수가 한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묘한 긴장감을 일으킬 수 있다.
전 교수는 최근 민주당 정무위 의원들이 공동 주최한 ‘론스타 사태 진실, 무엇을 밝혀야 하나’ 토론회에서 가설을 전제로 모피아와 하나금융, 론스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론스타 사태가 일어났다는 ‘모하론 동맹 가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번 국감을 시작으로 궁극적으로 국회 청문회나 국정감사 등을 통해 론스타 사태의 진실을 밝히고 국가에 손실을 안긴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11년 론스타가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지분 매각을 협상할 당시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을 맡아 론스타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이번 론스타 국감 역시 소득 없는 정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4일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의사진행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전날 국감에서 국무조정실이 국감을 앞두고 만든 내부자료인 ‘국정감사 상임위별 주요 쟁점’ 문서를 공개하며 정부 답변의 부적절성을 비판했는데 여기에는 론스타 관련 내용도 포함됐다.
김 의원은 “문서를 보면 ‘론스타 관련 공무원 책임론’과 관련해 ‘취소신청을 검토 중인 현 단계에서 책임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음’ 이렇게 적혀 있다”며 “단심제인 ISDS에서 졌으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지 정부가 책임을 지지 말자고 하는 것은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국정감사 상임위별 주요 쟁점 문서는 국무조정실이 각 부처에서 국감 현안을 모아 정리한 뒤 다시 각 부처로 배포한 내부자료로 비공식 통로를 통해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각 정부부처에 국무조정실이 만든 모범답안 형식의 문서가 전달된 만큼 김주현 위원장을 비롯한 다른 피감기관 수장들도 문서에 담긴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는 주장을 똑같이 펼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실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전날 론스타 진상규명과 관련한 질문에 “정부는 중재판결 결과가 부당하다고 보고 취소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며 “취소소송 중에 국내에서 구상권을 행사하거나 책임을 묻는 과정은 유리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일관성 있게 대답했다.
이와 관련해 야당과 시민단체는 정부의 취소소송 결과를 기다리다 보면 또 다시 몇 년이 흘러 책임자 처벌과 구상권 행사를 위한 공소시효가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