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한국의 칩4 참가를 놓고 이해득실을 면밀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없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정부가 ‘칩4’로 일컬어지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 참여를 두고 이해득실을 면밀히 계산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한국이 칩4에 참가했을 때 미국의 첨단산업 공급망에 편입된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중국에 세운 반도체공장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등 리스크 요인이 크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14일 정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조만간 칩4 예비회의에 참석해 미국 정부와 가입 조건 등 세부내용을 조율한 뒤 최종 참여 여부와 관련한 확답을 준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칩4란 미국 주도로 한국, 일본, 대만 4개국이 힘을 합쳐 안정적으로 반도체를 생산하고 공급망을 형성하기 위한 경재동맹이다.
반도체 원천기술과 설계에서 강점을 갖춘 미국, 반도체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과 대만, 반도체 소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이 서로 상호보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국은 칩4를 통해 중국의 ‘반도체 굴기(진흥)’에 타격을 주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최대 교역상대인 중국과 관계도 염두에 두고 칩4 참여를 결정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철저히 국익에 따라 칩4 가입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12일 ‘사드와 반도체 등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의 선택을 요구 받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의 외교 원칙과 기준은 철저하게 대한민국의 국익”이라며 “불필요하게 어떤 나라와 마찰을 빚거나 오해를 가질 일 없도록 늘 상호 존중과 공동 이익을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정부는 현재 칩4에 참여했을 때 국내 경제나 기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칩4에 참가했을 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미국의 첨단산업 공급망에 편입될 수 있다는 점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다수의 반도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자국 기술 통제로 외국의 반도체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중국은 소비시장으로서 가치가 있지만 생산을 못 하는 상황에선 소비시장도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도 “한국이 칩4에 참가했을 때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진입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는 7월 말 자국 반도체 장비업체인 램리서치와 KLA 등에 14나노 이하 반도체 제조가 가능한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통보하는 등 메모리반도체에서도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YMTC와 같은 중국 기업은 미국의 반도체 장비 없이는 업계 선두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따라올 수 없는 만큼 국내 반도체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호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칩4에 참여했을 때 국내 기업에 큰 실익이 없을 것이란 시각도 만만치 않다.
칩4의 장기적 목표가 미국 내 제조업 역량 강화인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는 미국 기업이자 경쟁사인 인텔과 마이크론 등이 집중적으로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칩4는 미국 제조업 및 공급망 안정을 위한 협의체 성격을 띄고 있어 칩4 수혜는 미국 기업에 집중될 것”이라며 “칩4의 한국 참여는 국내 반도체 기업 주가에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칩4에 참여했을 때 중국으로부터 받을 보복의 수위에 있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국내 반도체 수출의 60%는 중국(홍콩 포함)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중국이 만약 한국산 반도체 수입을 막는다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다.
이미 중국은 2016년 한국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를 결정하자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 전례가 있다.
도현우 연구원은 “특히 삼성전자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과 SK하이닉스 우시 D램 공장에 대한 중국 정부의 규제가 가능하다”며 “이는 국내기업의 비용 증가로 연결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하지만 중국의 실질적 보복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중국의 한국산 반도체 수입 규제는 자충수가 될 것이란 이야기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4일 OBS에 출연해 “중국이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에 제재를 가할 경우 자국 전자산업이 위태로워지는 것”이라며 “따라서 반도체 분야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보복을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정부도 중국과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칩4에 참여하겠다는 방침을 여러차례 밝히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칩4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칩4의 내용·수준·방식 등에 따라 (중국의 보복) 가능성은 달라질 것으로 본다”며 “칩4 예비회의에서 바람직한 방향성에 관한 우리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