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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김남형 기자 knh@businesspost.co.kr 2022-07-01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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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우상호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다.

20대 대선과 6·10 지방선거까지 연이은 패배를 극복할 발판을 마련하고 내홍에 빠진 당을 수습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계파색이 옅어 차기 당권을 둘러싼 친명계(친이재명계)와 반명계(반이재명계)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적임자로 꼽힌다.

1962년 12월12일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서울 용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생 때 시인과 국어교사를 꿈꾸는 문학도였으나 군복무 중 선거에서 자유롭게 투표하지 못하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학생운동에 나설 것을 결심했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 서울지역 대학생 집회와 시위를 이끌었고 이한열 민주국민장 집행위원장도 맡았다.

출판사업을 하면서 청년운동에 참여하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에 '젊은 피'로 영입됐다. 서울 서대문구갑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대문갑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19대~21대 총선에도 당선되면서 4선 고지를 밟았다.

20대 국회에서 첫 원내대표를 맡아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 이탈표를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고, 20대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합리적 사고와 소탈한 매너를 지닌 달변의 정치인이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상대책위원장 올라 선거 패배 수습 임무 맡아
우상호는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대선과 지선의 연이은 패배로 수렁에 빠진 민주당을 수습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민주당은 2022년 6월7일 의원총회를 열어 우상호를 비대위원장으로 추인했다.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우상호를 추천했고 이에 의원들이 사실상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비대위원으로는 초선의원 대표로 이용우 의원, 재선 대표로 박재호 의원, 3선 대표로 환경부 장관 출신의 한정애 의원이 참여했다.

원외 인사로는 김현정 원외위원장협의회장이 비대위에 포함됐으며 당연직으로 박홍근 원내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이후 민주당 중앙위원회는 6월10일 비대위 인준안을 통과시켰다. 전체 중앙위원 625명 가운데 72.32%인 452명이 투표했으며 찬성 419명(92.7%), 반대 33명(7.3%)으로 집계됐다.

비대위 공식출범 이후 여성·청년 몫 비대위원으로 지방선거에서 최연소 도의원으로 당선된 서난이 전북도의원이 선임됐다.

우상호는 8월28일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를 선출할 때까지 당을 이끈다. 민주당은 6월17일 전당대회준비위원회를 출범하고 전대 준비에 착수했다.
[Who Is ?]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이재명 의원이 2022년 6월24일 충남 예산군 덕산리솜리조트에서 열린 '새롭게 도약하는 민주당의 진로 모색을 위한 국회의원 워크숍'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시장 두 차례 도전
우상호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장관 후보로 오르내렸다.

문재인 정부 첫 통일부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오른 바 있으나 일축했다. 그 뒤 문재인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에는 조명균 장관이 임명됐다.

2020년 6월 들어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물러났고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내고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은 우상호이인영 의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유력한 후임 통일부 장관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우상호는 또다시 입각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이인영 의원이 통일부 장관에 올랐다.

우상호는 내각에 참여하는 대신 서울시장에 두 차례 도전했다.

우상호는 2018년 1월21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도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서울시장에 출마하려 한다"고 말하며 서울시장 도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7년 말부터 민주당 후보 적합도 조사를 비롯해 다자 구도와 각 정당 후보의 가상대결 등 모든 경우의 수를 전제로 한 여론조사에서 항상 1위를 차지했다. 박원순 시장의 아성에 도전하려던 당내 주자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출마를 접었고 우상호와 박영선 의원, 박원순 시장의 3파전 구도가 굳어지면서 박 시장으로 '당심 쏠림' 현상이 가속화했다.

이에 우상호와 박영선 의원은 30%대 득표율로 2위를 확보한 상태에서 박 시장의 득표율을 50% 이내로 묶은 뒤 결선투표에서 진짜 승부를 낸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구상은 박 시장의 압승으로 무산됐다.  

민주당이 4월18일부터 4월20일까지 권리당원 ARS투표(50%)와 휴대폰 안심번호 여론조사(50%)로 경선을 실시한 결과 박 시장은 66.3% 지지율로 승리했다. 박영선 의원은 19.6%, 우상호는 14.1%를 각각 기록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문 사건 및 사망 이후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열리자 우상호는 다시 서울시장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경선에서 30.44% 득표에 그쳐 69.56%를 얻은 박영선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패배를 당했다. 박영선 후보조차 본선에서 오세훈 후보에게 완패를 당하면서 향후 우상호가 서울시장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서울시장에 당선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비례대표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훗날 당선 이후 각종 문제가 밝혀지면서 논란 끝에 제명된 양정숙 의원과 김홍걸 의원의 비례대표 공천을 걸러내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주도
우상호는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탄핵정국으로 이어지자 우상호는 초반부터 진영 대결로 가면 보수진영이 결집하고 탄핵소추안에 필요한 새누리당 내 40석이 넘어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우상호는 "정의당처럼 탄핵과 하야 움직임을 같이 갈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직접 약속하는 2선 후퇴 등 절충안을 제시하는 온건적 전략을 폈다. 진영 대결 인상을 주지 않도록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 측에도 물러서 있는 게 좋겠다고 전했고 문 전 대표 쪽도 납득했다.

이러한 우상호의 전략은 촛불집회와 맞물려 시너지를 냈다. 문재인 전 대표의 거국내각 제안이 거부되자 촛불집회 규모가 급속도로 불어났다. 친박계에 불만을 품고 있고 국정농단의 책임을 공유하기 싫어한 비박계는 우상호와 협상했다. 여기에서 도출된 절충안인 조기하야 요구를 청와대가 거부하자 민주당은 결국 탄핵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2016년 12월2일 탄핵소추안 상정이 불발되고 다음날 촛불집회에 230만여 명이 나오는 등 촛불민심이 거세졌다. 

우상호는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중요한 역할을 다른 정당에 대부분 양보했다.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은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진행하고 헌법재판소를 담당할 탄핵소추위원단장은 비박계인 권성동 의원이 맡겠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탄핵의 상징적 장면을 넘겨주는 대신 탄핵안 가결을 위한 표 계산에 집중했다. 

12월9일 기준 국회 구성은 새누리당 128석, 더불어민주당 121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7석이었다.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00명이 찬성해야 탄핵안이 가결된다. 우상호는 의결 당일 당 지도부에 222표 내지 226표가 확보됐다고 보고했다. 결과는 234표가 나왔다. 민심의 압박을 못 이긴 새누리당 의원들이 추가로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됐다. 

우상호는 이에 앞서 백남기 농민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열릴 수 있도록 힘썼다.

2016년 9월12일 국회에서 백남기 농민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2015년 11월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 현장에서 고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은 지 304일 만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백남기 청문회'를 열겠다고 처음 선언한 것은 우상호 원내지도부 출범 직후인 2016년 5월26일이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까지 야3당이 합의했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그해 8월 대우조선해운 구조조정 문제가 국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권 실세들이 청와대 서별관에 모여 구조조정 문제를 졸속으로 합의했고 부실을 야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우상호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협상을 벌여 최경환 의원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서별관 청문회' 증인에서 제외하는 대신 백남기 청문회를 여는 것으로 합의했다. 당시 민주당의 정치적 실익이 크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의외의 결과라는 반응과 더불어 민주당의 무능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백남기 청문회의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청문회장에 출석한 강신명·이철성 전현직 경찰청장은 혐의를 부인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기까지 전개된 과정을 볼 때 백남기 청문회는 '촛불혁명'의 징검다리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4.13 총선으로 민주당이 오랜만에 다수당이 된 데다 대선을 한 해 앞둔 시점이라 누가 원내대표가 되는지에 관심이 쏠린 선거였다.

우상호는 1차 투표에서 경쟁자인 우원식 의원에게 4표 차로 졌으나 이어진 결선 투표에서 63 대 56 일곱 표 차로 역전승을 거뒀다. 

우상호는 원내대표로서 초선의원들이 활동할 공간도 열어줬다. 

통상 3선 이상은 원내대표나 상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재선의원은 상임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는데 이 과정에서 입법 우선순위를 정하는 재량권이 주어진다. 반면 초선의원들은 당내 중진과 계파, 당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거수기'역할에 그친다는 지적이 있다. 

우상호는 의원 선수에 상관 없이 대정부 질의나 국정감사를 이끌어갈 대표 의원을 배당하는 '의원책임제'를 실시했다. 이에 따라 20대 국회 활동에 민주당 의원 중 53명에 이르는 다수 초선의원들이 자발성을 지니고 참여하면서 주요 태스크포스(TF)나 국정조사에서도 초선의원들이 활약할 수 있게 됐다. 대정부 질문이나 국정감사에서 고민한 부분을 입법하라고 권장했기에 법안의 완성도가 올라간 것도 긍정적 변화로 평가받았다.

우상호는 박근혜 정부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을 통과시켜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2016년 9월24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가결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이자 헌정사상 여섯 번째로 국회에서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이 통과된 것이다.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 통과는 20대 국회의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4.13 총선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된 이후 처음으로 다수 야당이 정부 여당에 승리를 거둔 사건이었다. 국민의당이 당론을 정하지 않은 가운데 우상호는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함께 해임 건의안을 발의하고 주도했다.

해임 건의안 통과 뒤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재수 장관이 버티며 물러나지 않아 해임 건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국무위원은 모두 스스로 물러났던 전례가 깨졌지만 이 시기 이후 국정감사가 시작됐고 국정농단 의혹 사건이 불거졌다.

△정계에 입문해 서대문구에서 연세대 동문 이성헌과 여섯 차례 맞붙어
우상호는 1988년 총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평화민주당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를 앞두고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에 '젊은 피'로 영입됐다. 서울 서대문구갑 지역에 출마해 득표율 45.16%를 얻었지만 연세대 81학번 동문인 이성헌 신한국당 후보(47.01%)에게 밀려 낙선했다. 

우상호는 4년 뒤인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대문갑에서 이성헌 의원과 다시 맞붙었다. 이성헌 후보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총선 직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로 후폭풍이 불어 전세가 역전됐다. 우상호는 46.06% 득표율을 얻어 이성헌 후보를 2.25%포인트 차이로 제치고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18대 총선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에 치러진 데다 당시 서울 전역에서 뉴타운 공약 바람이 불면서 이성헌 후보가 현역인 우상호를 상대로 약 8% 차이의 격차를 보이며 설욕에 성공했다. 

이후 19대 총선에선 수도권에서 MB 심판론이 대세가 돼 우상호가 현역인 이성헌 후보를 8.73%포인트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리며 국회에 재입성했다. 

20대 총선에선 이성헌과 우상호의 다섯 번째 맞대결이 성사됐다. 서로 2승2패를 주고 받으면서 누가 3선 고지에 먼저 깃발을 꽂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당 사무부총장을 지낸 이성헌 후보는 친박 인사임을 강조하면서 집권여당 3선의 힘을 강조했다. 반면 다른 선거구와 달리 국민의당 후보가 없어 사실상 야권 단일후보인 우상호는 박근혜 정부 심판론으로 맞불을 놓았다. 결과는 우상호 후보(54.88%)가 두 자릿수가 넘는 넉넉한 격차(14.61%포인트)로 3선 고지에 올랐다.

우상호는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첫 원내대표를 맡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21대 총선에서 우상호와 이성헌의 여섯 번째 맞대결이 성사됐다. 4년 전과 비교해 이상헌 후보의 득표율(41.64%)이 소폭 상승했지만 우상호가 53.24%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6월항쟁 이끌어
우상호는 군부독재에 마침표를 찍은 6월항쟁의 주역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우상호는 원래 학생운동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대전역 후 운동권과 멀어지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 운동권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는데 우상호는 이례적으로 군 복무 중에 학생운동을 결심하고 제대 후 오연호 현 오마이뉴스 대표의 소개로 사회과학 세미나에 참여했다. 문학 친구였던 시민사회활동가 박래군씨가 먼저 학생운동에 뛰어들면서 우상호에게도 영향이 갔다고 한다.

1987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어 학생운동 문화를 바꾸었다. 화염병과 투석전 중심에서 다수가 참여하는 온건한 운동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이에 강성 지하서클로부터 고초를 겪기도 했다. 운동권 사람들과 전두환 대통령 이야기를 하던 도중 전두환 대통령도 잘한 점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동료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했다. 학생회장이 된 우상호가 학생운동을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전환시키자 학생들의 참여가 급격하게 늘었다. 

전두환 정권이 4.13 호헌조치를 내놓자 야당, 시민사회, 학생운동이 강경해지는 가운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졌다. 이에 서울의 학생운동 진영은 대규모 집회를 추진하고 집회 전날인 1987년 6월9일 예비집회를 열었는데 이때 우상호의 대학 후배인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사망했다.

이후 6월항쟁 과정에서 우상호는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대규모 시위를 이끌었다.

비전과 과제
[Who Is ?]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022년 6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우상호는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지방선거 참패로 내홍에 빠진 당을 수습하고 쇄신을 추진해야 한다.

전당대회 전까지 비대위원장을 맡았는데 책임과 역할에 비해 기간이 짧은 편이다. 당의 쇄신 작업과 선거 결과 평가 외에도 전당대회 준비까지 해야 하는 만큼 우상호의 역할이 막중하다.

계파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비대위원장의 의사 결정 하나하나는 각 계파의 유불리에 따라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어느 계파가 차기 당권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당대표가 공천권을 확보하는 2년 뒤 총선에서 친명계(친이재명계)와 반명계(반이재명계)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

이에 당내 86그룹의 핵심인물인 우상호는 계파색이 옅고 4선 중진 의원으로서 무게감 있어 차기 당권을 둘러싼 친명계와 반명계 사이 갈등을 조정하는 데 적임자로 꼽힌다.

20대 대선 때 총괄선대본부장으로서 대선 패배에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우상호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긴 했지만 정세균 전 국무총리, 문희상 전 국회의장,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 등 당내 원로들과 이광재 전 의원, 김부겸 전 총리 등의 중진급 인사들이 모두 비대위원장직을 거부하면서 우상호가 비대위원장을 맡게 됐다. 당내 86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2024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86용퇴론'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이다.

비대위 이후 우상호의 정치 활동이 이어질지 여부는 미지수다. 비대위 성과에 따라 향후 행보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상호는 2021년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경선에 나오면서 22대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다만 서울시장 경선에서 결국 떨어졌고 선거 때까지 시간이 많은 만큼 불출마를 번복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정계를 은퇴하기에는 이른 나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평가/사건사고
◆ 평가
[Who Is ?]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16년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며 방청석에 있던 세월호 유가족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대표적 586운동권 세대 정치인으로 '586세대의 맏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강성파라기보다 합리적 중도파로서 어느 특정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행보를 걸어왔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특유의 소탈함 덕분에 언론과 관계도 매끄러운 편이다.

2004년 이라크 파병 반대 결의안에 서명했다가 철회하며 운동권 후배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

조리 있는 말솜씨와 촌철살인의 멘트로 유명한 달변가로 손꼽힌다.

1998년 국민회의 고건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으로 시작해 야당 대변인을 8번이나 했다.

대변인은 언론 노출도가 올라가는 장점이 있으나 높은 업무강도 때문에 여러 번 하는 경우가 드물고 지역구 국회의원이 여러 번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덕분에 당을 위해 희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대변인을 자주 해 다른 정치인과 달리 유연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86그룹 가운데 언론과 폭넓게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인사다.

대변인을 하며 '칼을 찌르되 비틀지 않는다'는 격언을 마음에 품었다고 한다. 이는 상대의 자존심까지 짓밟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우상호의 달변 능력은 그가 시인을 꿈꾼 문학도 출신이라는 것으로도 설명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인을 꿈꿨고 연세대 국문과 재학 시절 오월문학상 시 부문 당선, 윤동주 문학상 수상 등으로 예비시인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대학진학 당시 여고 국어선생님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무척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고 회고한다. 친척들의 도움으로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으며 대학에서도 아르바이트와 공사판 노동 등으로 학비를 벌었다.

대학 진학 초기에는 운동권을 멀리했다고 한다. 당시 스스로를 "회색지대에서 방황하는 소시민"이라고 평가했다.

배우 우현씨와 안내상씨가 연세대 재학 시절 운동권 동료이자 친한 친구였다. 

우상호가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있는 사진에 연세대 총학생회 사회국장이던 우현씨가 나란히 서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고 배은심씨는 우상호를 친아들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우상호는 1991년 결혼을 하고 나서 우현씨, 안내상씨와 신혼셋방에서 한동안 함께 살았다고 한다.

우현씨가 무한도전 못·친·소(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 페스티벌 시즌 2에 출연해 1등을 하자 우상호는 "얘가 못생겼나?"하고 말했다. 우상호는 단 한 번도 우현씨가 못생겼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배우 안성기씨가 이종사촌 누나의 남편(매형)이고 스님 전문 배우로 불리는 박병호씨가 외삼촌이다. 외삼촌 전부인(외숙모)이 배우 정혜선씨인데 1975년 시점에 이미 이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취미는 독서다.

◆ 사건사고
[Who Is ?]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아래 오른쪽)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아래 가운데)가 2016년 9월23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상정을 앞두고 말다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역수칙 위반 논란
우상호가 동료 국회의원과 구청장 등 10여 명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놓고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어겼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던 우상호는 2021년 2월4일 서울 신도림역에서 1호선 지하화 관련 정책 발표를 한 후 민주당 의원 및 구청장 10명과 손잡고 'X자 악수'를 하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 방역수칙 위반 논란이 일었다.

당시 방역수칙에 따르면 코로나 19 거리두기의 핵심 수칙 가운데 하나가 '신체접촉(악수 혹은 포옹 등)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상호는 1월31일 광운대역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촬영했다. 

이와 관련해 우상호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다가 논란이 커지자 "부주의했다"며 사과했다.

보궐선거 패배 다음날인 4월8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5명과 함께 술을 마신 사실이 확인되면서 '5인 이상 집합금지' 방역수칙 위반 논란이 제기됐다.

우상호를 포함한 4인 일행에 다른 일행이 합석한 형태였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방역수칙을 어긴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자 식당 사장이 우상호 측에 제자리로 돌아가달라고 요청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우상호는 "동행인과 함께 지나가는데 '우상호를 좋아한다'며 앉아서 한 잔 받으라고 해서 5분 있다가 나왔다"고 해명했다.

다만 선거 다음날 보궐선거 경선 후보의 처신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농지법 및 장사법 위반 의혹
2021년 6월7일 국민권익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가족 816명의 최근 7년 동안 부동산 거래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우상호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됐다. 

우상호는 2013년 6월 경기도 포천시에서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겠다고 농지취득 자격증명을 발급받아 취득한 농지에 곧바로 어머니 묘지를 조성했다.

묘지는 거리 제한 등 다양한 제약 사항이 있어서 거래허가를 받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우상호가 손쉽게 묘지를 조성하기 위해 '농업 경영' 목적의 농지취득 자격증명을 발급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농업 경영 목적으로 농지를 사놓고 곧바로 묘지를 조성한 행위는 농지법 위반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우상호를 비롯해 문제가 제기된 의원 12명에게 자진 탈당을 권유했지만 우상호는 "어머니 묘지로 쓰기 위해 구입한 농지로 계속 농사를 지어와 위법 소지가 없다"며 탈당을 거부하고 당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8월19일 경찰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당 활동을 재개했다.

△송승헌씨 병역연기 요청 파문
2004년10월27일 우상호는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일부 의원들과 함께 배우 송승헌씨가 드라마 '슬픈 연가'에 출연할 수 있도록 신체검사 및 입영일정 연기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병무청에 제출했다. 송승헌씨는 병역비리가 밝혀져 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우상호는 "일본에서 30억 가량 유치한다고 들었기에 내가 주도했다"며 "송승헌씨가 군대를 안 가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한류 열풍을 생각해 2~3개월 정도 못 기다려주나"라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우상호를 거세게 비난했다. 우상호는 2004년10월31일 홈페이지에 "탄원서를 낸 것은 한류 열풍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이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정치인들이 추진하는 정치행위, 정책이 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더라도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고 해명했다.

△새천년NHK 사건
2000년 5월17일 광주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행사 전야제 당시 '새천년NHK'라는 가라오케에서 여성 접대부와 동석해 '술판'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대중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 사건은 임수경 당시 의원이 인터넷에 올리며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당시 참석자는 민주당의 김민석, 송영길, 장성민, 정범구, 김성호, 이종걸, 이상수, 김태홍 의원이었으며 시인 박노해씨와 우상호도 합석했다. 임수경 의원이 올린 글에 따르면 술에 취해 욕을 하는 등 추태를 부린 핵심인물이 우상호였다.

임수경 의원은 386의 기반이 광주라며 이들의 술자리를 비판했다. 시민들은 이들에게 이메일과 전화 등으로 격렬하게 항의했고, 386 정치인 그룹은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우상호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가운데)이 1987년 8월22일 이한열 열사 49재 행사 때 연세대학교 앞 경의선 신촌철교 앞에서 이한열 열사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우상호 의원 홈페이지>

1987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부의장을 맡았다.

1994년 도서출판 두리 대표와 월간 ‘말’지 기획위원을 맡았다.

1997년 비디오그래픽스 전무이사를 맡았다.

2001년 미국 콜로라도주립대학교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2004년 제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에 당선돼 원내부대표를 맡았다.

2006년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맡았다. 18대 총선 낙선 이후 통합민주당에서 원외대변인을 맡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해 원내부대표를 맡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3선 고지에 올랐고, 같은 해 5월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4선에 성공했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4.7서울특별시장보궐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22년 더불어민주당 제20대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거대책본부장으로 활동했다.

2022년 6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 학력

서울 숭례초등학교를 나왔다.

광운중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9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배우자 이현주와 두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 상훈

◆ 기타 

2022년 3월31일 국회공보 제2022-31호에 따르면 우상호는 9억1599만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1983년 1월 입대해 1985년 6월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저서로 '촌놈'(2004),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면'(2016)을 냈다.

어록
[Who Is ?]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과 문재인 전 대표가 2017년 2월11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이가 없다. 드디어 헌법에 정해진 삼권의 시대를 넘어서서 법무부가 또 하나의 권부로 등장했다. 4권분립의 시대가 왔다. 어떻게 정부 부처가 국회를 상대로 이런 소송을 걸 수 있나 하는 점에서 '한동훈 법무장관 위세가 대단하구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오만함은 결코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위헌심판 소송을 취하할 것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법무부는 권부가 아니다. 한동훈 장관 정신 차리시라." (2022/06/29, 수사·기소 분리(검찰청법·형사소송법 일부개정안)를 두고 법무부가 헌법재판소 심판을 청구한 것과 관련해)

"(여권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 눈치 보면서 살살 기었다는 방향으로 몰고 가고 싶은 모양이다. (해당 사건은) 북한 눈치를 본 게 아니라 오히려 북한을 굴복시킨 것이다. 우리 국민이 북한 군인에게 희생됐고, 항의했고, 사과를 받았다. 그걸로 마무리된 사건 아니냐.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냐." (2022/06/17,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수박'이란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히 안 두겠다. 어떻게 같은 구성원에게 그러는가. 심지어 공당의 대표라는 분에게 수박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모멸이다." (2022/06/12, 기자간담회에서 당내 계파 비하 표현을 금지하겠다고 경고하며)

"이번 서울시장 출마는 마지막 정치적 도전이다. 다음 자리를 위한 디딤돌로 삼지 않겠다. 어떤 경우에도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하고 이번 선거에 모든 것을 걸겠다." (2020/12/13, 국회 소통관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카투사는 원래 편한 곳이라 의미 없는 논란이다. 카투사는 육군처럼 훈련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편한 보직이라 어디에 있든 다 똑같다. 카투사에서 휴가를 갔냐 안 갔냐, 보직을 이동하느냐 안 하느냐는 아무 의미가 없는 얘기다." (2020/09/09,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병역 특혜' 의혹과 관련해)

"약간 모욕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무슨 자리를 놓고 정치 기득권화가 돼 있다고 말한다. 386 물러나라는 이야기를 공격적으로 하지는 않아도 자꾸 그런 뉘앙스들의 기사가 나오면 대표적인 사람이 임종석, 이인영, 우상호이지 다른 사람이 있나? 그러니까 마음속으로 '진짜 그만둘까'라는 생각들이 나오는 것이다. (2019/11/18,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당 안팎에서 나오는 '86그룹 용퇴론'과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사실 야당에서는 '코드 인사'라고 하지만 우리도 두려워하는 분이다. 왜냐하면 우리 말도 잘 안 듣는 분이니까. 이 분이 알아서 이 사회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일만 해주시면 된다." (2019/06/18,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윤석열 검찰총장 내정 인사와 관련해)

"철새는 직항하는 철새가 있고 경유하는 철새로 나뉘는데 이언주 의원은 경유형 철새다. 자유한국당 가고 싶으면 바로 가면 되는데 이 사람은 국민의당을 통해서 바른미래당, 자유한국당을 가고 있다." (2018/11/16,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자유한국당 입당설과 부산 영도 출마설이 나오는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을 비판하며)

"탄핵을 성공시키고 정권교체까지 완성한 순간 6월항쟁이라는 미완의 승리에 30년 만에 종지부를 찍는 느낌이 들었다. 학생운동 때는 6월항쟁의 한가운데 있었고 국회의원이 돼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는 자리에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두 개의 큰 정변을 온몸으로 겪었다. 이게 내 운명인가 싶었다." (2017/10/25,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한 시사인 인터뷰에서)

"요즘 TV 프로그램을 보니 긴 말을 몇 글자로 줄이는 게 유행이더라. 저는 우씨라서 이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반기문 전 총장을 향해 '우하하' 웃지 않을 수 없다. 반 전 총장이 정치교체를 이야기하는데 박근혜 사람을 이명박 사람으로 바꾸는 게 어떻게 '정치교체'냐. 그것은 '정치교대'일 뿐이다." (2017/01/17,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정권을 재택근무 정권이라고 규정하겠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카피가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 침대는 집무실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2017/01/11,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에서 정상적으로 집무를 봤다는 소명자료를 낸 데 대해)

"헬스트레이너가 오전에 관저에 있었다면 대통령에게 헬스 요가를 시킨 거지 왜 업무가 기억이 안 나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차가운 바다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대통령은 몸매를 가꾸려고 헬스를 했다. 그것을 숨기려고 입을 안 여는 것은 아닌가? 정말 이 세력은 용서가 안 된다." (2017/01/06,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관한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의 탄핵심판 진술에 대해)

"저런 식으로 하니까 망하지." (2016/10/31, 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한 뒤 여야 교섭단체(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의 원내대표들과 정세균 국회의장이 회의를 열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퇴장하자 이를 비꼬며)

"이번에 당 대표 안 나가시나. 개나 소나 다 나가던데." (2016/07/20,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당시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과 우연히 만나 농담을 던지며)

"아니, 벗고 난리 치는 게 무슨 표현의 자유입니까." (2015/09/10,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대상 국정감사에서 인터넷 개인방송의 음란성을 지적하며)

"종편(종합편성채널)은 '종일편파방송'의 준말인 것 같다. 방통위의 재승인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편파적으로 방송을 하는 게 아닌가? 방송 패널 구성도 70% 이상이 여당 성향이다." (2014/10/14,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대상 국정감사에서 최성준 방통위원장에게 '종편 재승인'을 놓고 질의하며)

"최양희 미래부 장관 후보자의 전원주택 잔디밭에 고추가 심겨져 있다. 잔디가 채소인가? 최 후보자는 잔디를 먹을 수 있나? 농지에는 잔디를 심을 수 없다." (2014/07/07, 국회에서 열린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최 후보자의 농지법 위반 의혹을 제기하며)

"이명박 정권은 환관들의 천국." (2012/07/06,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추진의 책임을 지고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사임한 데 대해)

"우린 대한민국 정치 동반자였으며 은밀한 공범이었다. 이제 그 공범관계를 청산한다. 한국 정치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정치인과 언론 모두 책임이 있다. 그래서 정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2010/08/04, 807일간 맡았던 민주당 대변인을 그만두며)

"선거에서 진 뒤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논평을 낸 게 모두 다섯 번이다. 이번에는 꼭 선거 승리 논평을 한 번 내고 싶다.” (2009/10/26, 2009년 10·28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에게 돈 주는 기술로는 정태수 전 한보 회장이 역대 최고였다. 그와는 스치기만 하면 돈이 들어와 있다는 일화들이 전해진다. 권노갑 전 고문은 어디서 돈이 들어오면 후배 정치인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일명 '정거장형'이었고 정대철 민주당 고문은 돈을 나누는 '분배형'이었다." (2009/03/31,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자신의 블로그에 '정치인에게 돈 주는 기술'이라는 글을 올리며)

"그러면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이 대통령은 일본 사람이냐." (2008/02/27,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청문회에서 청와대가 '유인촌 장관은 전북 완주 출신'이라고 발표했는데 유인촌 장관이 서류상 출생지는 전북이지만 56년 동안 서울에 산 서울 사람이라고 해명하자)

"당이라고 하는 곳은 일시적 사랑으로 들르는 러브호텔이 아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끌고 가야 할 가정 같은 곳이다." (2008/01/16, 유시민 의원이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고 진보정당을 창당하자)

"나는 촌놈 출신이고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 내내 고생했다. 작은형이 자살한 이후 어머니의 유일한 꿈은 내가 잘되는 것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이를 악물면서 '너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내 성장 과정의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원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었다." (2004/01/25, '촌놈-어느 386세대의 성장 보고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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