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40년 이상 간호사들의 숙원사업이었던 ‘간호법’이 하반기 국회를 통과할지 관심이 쏠린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처리에 힘을 주고 있지만 법안 통과를 단독으로 저지할 수 있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이 가져가면 입법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간호사 업무 확대 ‘간호법’ 다시 쟁점화,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가 변수

▲ 26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타위법안(다른 상임위에서 의결된 법안) 112건의 안건을 상정 의결하고 있다. 이날 전체회의 안건에 간호법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회사진기자단>


6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방선거가 끝난 뒤 선거 전 쟁점이 됐던 법안들의 처리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서도 갈등이 첨예했던 간호법 제정을 둘러싸고 이를 찬성하는 민주당과 반대하는 국민의힘 사이 치열한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애초 180석 가까운 거대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간호사 처우 개선의 시급함을 주장하며 법안에 힘을 실으면서 법안 통과가 유력하게 점쳐졌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쟁점법안 통과에 부담을 느낀 정치권이 처리를 미뤄둔 사이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민주당은 21대 상반기 국회에서 의석수와 법사위원장, 국회의장을 모두 확보해 사실상 입법 독주가 가능했지만 하반기에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이 가져가기로 합의했던 터라 법안 통과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국회 입법절차는 상임위-법사위-본회의 의결 순서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법사위는 각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의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권을 갖는다. 상임위에서 만든 법안이 다른 법률과 충돌하거나 조문 사이 모순이 없는지를 살피는 것인데 법사위는 이 권한을 내세워 실질적으로 쟁점법안 통과를 막는 관문 역할을 해왔다.

법사위를 책임지는 법사위원장이 작정하고 법안 처리 지연 전략을 쓰면 법안 처리가 하세월이 될 수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칫 다수 의석의 이점을 누리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은 앞서 합의했던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주지 못한다는 태도로 최근 선회했다. 전반기 법사위원장은 민주당, 후반기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기로 했던 전반기 합의가 무효라는 것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29일 “후반기 원구성 법적 주체는 엄연히 현재 교섭단체 대표들이다”며 “권한 밖의 일을 전반기 원내지도부가 했다고 해서 이것을 의무적으로 승계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히지만 민주당이 6·1 지방선거 패배의 여파 속에 법사위원장 자리를 사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일 “민주당이 지난해 보궐선거부터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까지 연거푸 패배한 이유는 민주당 자신에 있다”며 “선거 패배 이후 민주당 안에서 혁신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그러려면 지도부 인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해왔던 오만의 정치와 결별해야한다”며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주는 게 그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상반기 국회에서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 통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만큼 하반기 국회에서는 민주당의 입법 저지를 벼르고 있다.

현재 간호법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에 묶여있다. 5월17일 복지위에서에서 국민의힘 의원 전원 퇴장 속에 법안이 의결됐다. 5월26일 법사위에 상정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심의 안건에서 빠졌다.

간호법은 간호사협회가 1977년부터 제정을 요구해온 숙원사업이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임금 및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간호사의 업무 범위 명확화 △적정 간호사 확보와 배치 처우 개선 △간호종합계획 5년마다 수립 및 3년마다 실태조사 △기본지침 제정 및 재원 확보 방안 마련 △간호사 인권침해 방지 조사 △교육의무 부과 등이 포함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곳 가운데 25개국이 의료법과 별도로 간호법 등을 시행한다. 미국에서는 간호사가 독자적 약 처방과 의료기관 개원까지 할 수 있다. 국회에 올라온 간호법 개정안에 이러한 내용까지 담기지는 않았으나 일단 법이 제정되면 추후 법 개정으로 간호사 업무 범위가 넓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간호법 제정은 간호사협회와 의사협회, 간호조무사협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갈등이 첨예하다. 간호사협회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시 총파업을 불사하겠다며 제정 촉구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의사협회와 간호조무사협회는 지난 상임위 통과를 ‘날치기’라고 몰아세우며 법안 통과 저지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먼저 간호사협회는 우리나라 간호사 증가율이 연평균 5.1%로 OECD 평균(1.2%)보다 4.25배 높은 반면 열악한 처우에 의료현장에 있는 간호사 비율은 OECD 최하위권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3월 말 기준 전체 간호사 면허자 48만1443명 가운데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임상 간호사는 50.9%에 불과했다. OECD 평균(68.2%)을 크게 밑돈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지난달 30일 언론에 보낸 자료에서 “간호인력 문제가 불거진 지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며 “간호 인력을 늘리고 처우를 개선해 간호사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은 거의 없이 간호대학 신·증설을 통해 땜질식 대책만 세우다보니 오히려 인력문제가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우리나라 간호사의 노동강도는 외국과 비교하면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에 달하는 살인적 노동강도”라며 “간호사들은 밥 한 끼 제때 먹지 못하고 화장실에 갈 여유조차 없이 환자들을 돌보다 보니 방광염과 위장병을 달고 산다”고 호소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이러한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했다. 만성적 간호사 부족에 전담병원 등에서 병실이 있어도 중환자실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간호협회에서는 간호법의 국회 통과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나선 가운데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 제정을 끝까지 막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정근 의사협회 부회장 겸 간호단독법 저지 비상대책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지난달 중순 언론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보건의료관계법을 제정하는 것은 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것은 물론 반드시 사회적 합의를 전제해야한다"며 "그런데 간호법은 국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습적으로 상정·의결되는 등 졸속으로 추진됐다”고 주장했다.

김이연 의사협회 홍보이사는 “간호법은 의사는 물론 간호법의 이해당사자라 할 수 있는 간호조무사 단체의 의견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아직 간호법 제정안이 완전히 저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동향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사협회가 가장 크게 문제를 삼는 부분은 간호법의 첫 조항이다. 이 법의 1조는 국민이 간호혜택을 받는 장소로 의료기관과 함께 지역사회를 같이 언급한다. 현행 치료행위는 의료기관인 병원에서만 가능하다. 

이 법안에 따르면 간호사들의 지역사회 방문 간호가 가능해져 병원의 간호사 구인난을 불러올 수 있다고 의사협회는 주장한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확대되면 간호조무사 등의 업무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사회적 지위를 악화시키고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회장은 지난달 보도자료를 통해 "간호법 적용 대상이 지역사회로 확대되면서 장기요양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는 일자리를 잃거나 간호사의 보조인력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고 바라봤다. 임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