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서 노태우 정부 평가도 이제 역사에 맡겨졌다.

금융시장에서는 금리자유화와 외국인 주식투자 허용 등이 이뤄져 시장 자율성과 개방성이 증대된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노태우정부 평가도 역사에 맡겨져, 금융시장 자율과 개방 확대는 긍정적

▲ 노태우 전 대통령.


정부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과오가 있음을 인정하나 국가에 공헌한 대목을 고려했다고 한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번 장례를 국가장으로 해 국민들과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예우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고인은 제13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국가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금융·자본시장에서도 노태우 정부 때 이뤄진 진전이 여럿 존재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금융자율화를 통해 금융시장의 자유와 개방을 확대하는 정책을 폈다. 스스로 회고록에서 금융자율화를 확산한 점을 꼽기도 했다.

대표적 정책이 금리자유화다. 이전까지 정부는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금리를 직접적으로 규제해왔다.

이 때문에 공금리와 실세금리 차이가 커 은행들은 대출 일부를 예금으로 강제하는 소위 ‘꺾기’ 관행이 만연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12월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금리를 결정하도록 하는 금리자유화조치를 처음 단행했다. 대출금리는 전면 자율화하고 일부 시장성 예금상품금리도 자유화했다. 

하지만 물가상승으로 급격히 금리가 높아지자 이듬해 곧바로 금리규제에 나서며 사실상 정책을 거둬들였다가 1991년 단계적 금리자유화 계획을 발표하며 연착륙을 시도했다. 금리자유화는 2004년에 완전히 마무리가 돼 금융기관의 자율적 금리경쟁의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다만 당시 기업어음(CP) 금리 우선자유화 등 정책경로의 오판이 기업부실로 이어져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일부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계 보험회사에게 국내 보험시장을 개방한 것도 노태우 정부였다. 이전에도 외국계 보험사 지점은 존재했지만 1988년 한국과 미국 보험협상이 타결돼 합작법인 설립이 가능해졌다.

이듬해인 1989년 동부애트나생명(현 DB생명), 동양베네피트생명(현 동양생명), 코오롱매트생명(현 메트라이프생명), 한국푸르덴셜생명(현 푸르덴셜생명), 고려CM생명보험 등이 설립됐다.

외국계 생명보험사들은 국내에서 활발히 영업하며 2007년 합계 시장점유율이 20%를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10%대로 낮아져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보험시장 매력이 감소해 외국계 보험회사의 국내시장 이탈 움직임도 나타난다. ING생명(현 신한라이프), 우리아비바생명(현 DGB생명), 알리안츠생명(현 ABL생명) 등이 회사를 매각했고 최근 라이나생명도 매각이 결정됐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12월 자본시장 국제화의 단계적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자본시장 개방에도 나섰다. 

1990년 외국인투자 펀드와 해외증권 발행 등 간접개방, 1991년 전환사채 등 해외증권의 국내주식 전환 허용을 거쳐 1992년 외국인의 직접투자 허용까지 임기 중 증시 개방의 속도를 냈다.

개방 초기에는 외국인 지분 한도가 10%로 설정되는 등 제한이 많았으나 점차 규제가 완화돼 현재는 대부분 종목의 투자한도가 폐지됐다.

2000년대 중반 국내증시의 외국인 투자비중은 40%대 중반까지 이르기도 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소 낮아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외국인 상장주식 보유비중은 28.1% 수준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