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 정보제공 요청과 대규모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 물류대란 사태 해소 등 여러 현안을 계기로 미국 바이든 정부와 소통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북미 법인 총괄 겸 CEO를 맡은 최경식 부사장이 미국 정부의 다양한 요구사항에 협력하면서 삼성전자를 향한 적극적 지원을 얻어내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끄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Who] 삼성전자 북미총괄 최경식, 미국정부 지원 끌어내기 고심

▲ 최경식 삼성전자 북미법인 총괄 부사장.


삼성전자 관계자는 18일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정보 요구와 관련해)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 사안이 삼성전자뿐 아니라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사이 관계, 글로벌 반도체시장 판도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9월 말에 삼성전자와 인텔, 대만 TSMC 등 글로벌 반도체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화상회의를 열고 11월 초까지 반도체 재고와 유통, 고객사 수요 등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의 반도체 수급문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이와 관련한 회의를 주재할 정도로 미국 정부 차원에서 큰 관심을 두고 있는 현안이다.

미국 정부는 정보제공 요구의 표면적 이유로 미국기업들의 안정적 반도체 수급을 꼽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산업 주도권 경쟁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반도체기업을 우군으로 확보하려는 게 진짜 목적이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반도체기업에 정보제공을 요구한 것은 결국 중국에 반도체 공급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일 수 있다”며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더 늘리도록 하는 계획도 추진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미국 정부가 이런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삼성전자와 같이 미국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반도체기업이 미국 정부의 정보제공 요구를 완전히 거절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에 참석해 “미국 정부의 반도체기업 정보제공 요청에 기업의 자율성, 정부의 지원성, 한미 사이 협력성을 바탕으로 두고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측에서 기업의 자율성을 언급한 것은 결국 당사자인 삼성전자도 미국정부와 직접 소통하는 등 노력을 통해 반도체 관련된 정보공개 여부와 범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최경식 부사장이 북미 법인 총괄로 삼성전자의 여러 미국시장 현안에 대응하는 역할을 책임진 만큼 이런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소통을 주도하는 데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에 약 370억 달러를 들여 새 시스템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내놓았는데 아직 미국 정부와 세제혜택 등 지원 방안을 논의하느라 투자처와 시기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미국 정부는 궁극적으로 미국 기업들의 안정적 반도체 수급과 내수경기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그런 만큼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투자를 통해 미국 정부가 원하는 내용을 약속하며 강력한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

최 부사장은 최근 바이든정부에 긴급한 현안으로 떠오른 로스앤젤레스(LA)항 물류대란 사태 해소에도 삼성전자가 적극 기여하기로 하며 원만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삼성전자는 인력충원 등 수단을 통해 LA항 컨테이너 하역작업 속도를 앞당기기로 했는데 미국 이외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미국정부와 정식으로 협의해 물류대란 해결을 약속했다.

최 부사장은 미국정부 관계자들과 간담회에도 직접 참석해 삼성전자가 미국 소비자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미국 현지공장을 통해 고용창출 등 경기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가 아직 출범 초기인 만큼 삼성전자가 이처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미국시장에서 입지를 키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 부사장은 삼성전자 북미지역 전략기획팀장과 마케팅팀장을 거쳐 무선사업부 북미수출그룹장, 북미영업그룹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 연말인사에서 북미법인 총괄 겸 CEO에 올랐다.

마케팅과 영업전문가로 북미시장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와 삼성전자 사이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 북미 법인은 미국 정부 등에 소통을 담당하는 대외협력팀 조직도 산하에 두고 있어 최 부사장이 소통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가 새 성장동력으로 앞세우는 반도체 파운드리분야에서 구글과 테슬라, 엔비디아, 퀄컴 등 대형IT기업을 잠재고객으로 둔 만큼 미국시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정보제공 요구를 삼성전자와 협력 강화의 기회로 삼고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 과정에서 적극적 지원도 받는다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미국 정부가 한국 기술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반도체분야 정보를 삼성전자에 요구하는 데 따른 우려도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김홍걸 무소속 의원은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정보제공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미국 정부에) 주는 것보다 받는 게 적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