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정치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청와대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대선 행보를 두고 부글부글 끓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일 CBS라디오 '김종대의 뉴스업'에 출연해 “윤 전 총장 선언문을 보면 문재인 정부를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비판을 했다”며 “본인의 정치철학을 밝히기보다는 그동안 몸 담았던 정부에 관해 비판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처음 하는 출마 선언으로서 예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28일 최재형 감사원장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이례적으로 "감사원장의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최재형 감사원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고 유감을 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이들은 임기가 보장된 사정기관의 장으로서 그만큼 문 대통령이 신뢰를 보내며 일을 맡겼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김기표 전 반부패비서관과 같은 '인사사고'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김기표 반부패비서관은 개발차익을 노린 도시개발구역 주변 '맹지' 구입 의혹과 65억 원 규모의 상가를 구입하기 위해 53억 원가량을 대출한 '영끌 빚투' 논란까지 더해져 사실상 경질됐다.
김 비서관은 도덕성·자질의 문제로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에 구멍이 났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청와대 인사라인에 대한 책임론을 꺼낼 정도다.
하지만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은 단순한 인사검증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몸담았던 정부에 등을 돌리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임기를 보장한 법 취지를 거슬렀기에 법률적 문제도 안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일단 이들이 '정치적 야심'을 품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유력 대선후보로 지지율이 오르자 정치중립과 임기제의 입법 취지를 스스로 깨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6월28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정치권으로 직행하게 되면 감사원장이나 총장으로 있으면서 행했던 많은 일들이 중립적 권한 행사로 평가가 되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재해석되고 재평가된다”며 “특별히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 독립성이 요구되는 직위들만 행정부 수반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임기제를 두고 있는 것인데 입법 취지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렇게 본다 해도 문 대통령과 참모진이 책임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인물을 낙점한 당사자인 만큼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한 셈이 된다.
따라서 청와대가 이들의 정치행보를 비판하는 것은 돌이켜보면 제 발등을 찍는 일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을 임명한 당사자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6월27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해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감사원장·경제부총리 등 요직을 지낸 인물들이 야권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것을 두고 "애초에 감사원장이나 검찰총장을 제대로 검증해서 임명해야 하는데 제대로 검증된 건지 자기성찰이 필요하다"며 "반성해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6월29일 아시아경제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의 행보를 두고 "청와대의 인사시스템 뿐 아니라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며 "우리가 비판하면 너희들이 임명해놓고 왜 비판하느냐고 할 것이며 '그럴 줄 몰랐다'고 하면 우리가 무능했음을 자백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정당하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과 월성원전 사건 등을 수사하는데 문재인 정부가 이를 가로막으면서 핍박했다는 것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월성원전 감사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판을 들어야 했다.
정웅석 서경대학교 교수(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는 6월28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진 않지만 왜 이런 상황이 왔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감사원도 월성 원전을 감사하는 과정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검찰도 수사의 책임자들이 인사조처됐다”고 말했다.
'정권의 핍박'이라는 분석에는 시대적 변화라는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권위주의 정부 아래에서 검찰과 감사원은 청와대의 의중을 벗어난 수사와 감사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청와대는 검사출신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을 직접 '관리'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이래 청와대는 검찰의 독립을 보장하면서 거리를 뒀고 검찰은 점차 청와대에 칼을 겨누는 일이 잦아졌다. 노무현 정부에서 강금실 법무장관 임명을 두고 벌어진 항명사태를 일컫는 '검사와 대화'가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의 원칙주의에서 원인을 찾는 시선도 있다.
법과 원칙을 따지면서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법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줄 것이라 기대했고, 선을 넘었다고 판단됐을 때 꺼내든 카드도 검찰총장 징계라는 법률 절차였다.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윤 전 총장을 발탁했다. 당시 기수 파괴 인사로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첫 감사원장이다. '30년 판사 경력'을 높게 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진보적 인사가 아니라는 얘기는 임명 당시부터 나왔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6월29일 아시아경제 인터뷰에서 "최재형 전 원장 인사청문위원장이었던 우상호 의원이 인사 때부터 도저히 우리와 맞지 않아 '왜 이런 사람을 보냈을까' 당혹스러웠다고 한다"며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청와대 내부에 쓴소리를 해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1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새아침'과 인터뷰에서 “시스템에 개선, 보완 여지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 레드팀의 역할을 좀 더 강화해 국민 눈높이에 맞추도록 노력할 것이다”며 “대통령도 능력도 능력이지만 이제는 국민 눈높이에 더 방점을 두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해 그렇게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성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