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솔 기자 limhs@businesspost.co.kr2021-05-18 16: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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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란(오른쪽) 이창완 삼성디스플레이노조 공동위원장이 18일 충남 아산의 삼성디스플레이 아산2캠퍼스에서 열린 노조 집회에 참석해 성명문을 읽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직도 노동조합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김정란 이창완 삼성디스플레이노조 공동위원장은 18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2캠퍼스에서 열린 노조 집회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날 아산2캠퍼스 정문에서는 한국노총 산하 삼성디스플레이노조 출범 후 첫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삼성디스플레이 노동자를 비롯한 노조 관계자 99명이 참석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방역지침으로 제한된 집회인원 한도를 꽉 채운 것이다.
집회현장 근처에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은 팻말과 현수막이 걸렸다. 임금 인상, 성과급 지급기준 공개 등에 관한 요구가 많았다.
하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바로 ‘소통의 부재’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회사가 노동자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노조를 외면하고 노사협의회만을 단일 창구로 삼고 있다는 비판이 눈에 띄었다.
노사협의회는 회사에서 노동자와 사용자를 대표하는 인원이 모여 구성한 조직을 말한다. 노동자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노조와 비슷하지만 쟁의권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이 다르다.
삼성디스플레이노조는 회사가 올해 임금인상률을 비롯한 여러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노사협의회와 협의하고 있으며 노조의 의견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공동위원장은 이번 집회가 열린 배경을 두고 “그동안 회사와 8차례 교섭했지만 전혀 진전된 내용이 없었다”며 “회사가 노조협의회와 도출한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니 더 이상 교섭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노조는 임금인상률 6.8%를 요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임금인상률 요구안을 협상으로 조정할 생각이 애초 있었지만 현재로선 그럴 수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회사에서 노사협의회와 결정한 임금인상률 4.5% 이외에 다른 대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삼성디스플레이 아산2사업장 현판 주위에 삼성디스플레이노조 깃발이 걸려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노동계에서 삼성의 노사협의회 관련한 비판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성그룹 노조대표단은 올해 2월 서울 중구 고용노동부 서울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그룹이 노사협의회를 불법적으로 지원하고 운영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위원 선출 등에 사측이 개입하는 등 노사협의회 운영에 관여해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삼성 측은 “노사협의회는 노동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적법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상생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조합활동을 보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집회 현장에 나온 노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노조는 “삼성디스플레이는 노사협의회를 앞세워 ‘노노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노조의 고유 권한인 임금교섭에서 태만을 부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원들에게 가장 민감한 성과급도 집회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는 EVA(세후영업이익에서 자본비용을 뺀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성과급(OPI)을 지급한다.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이 EVA에 관해 대략적 개념만을 공지했을 뿐 성과급에 작용하는 세부 기준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직원들이 어떤 기준으로 성과급을 받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불만은 올해 초 SK하이닉스에서도 논란이 됐다. SK하이닉스는 결국 구성원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성과급 산정기준을 EVA보다 알기 쉬운 영업이익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하지만 노조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성과급과 관련한 개선방안을 검토하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노조에서 임금인상안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호봉 및 연봉 관련 자료도 제대로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 삼성디스플레이 아산2캠퍼스에 놓인 노조 팻말. <비즈니스포스트>
이처럼 ‘소통 부족’에 관해 노사의 의견이 평행선을 그리면서 삼성디스플레이 사상 첫 파업의 가능성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는 시선이 노조 내부에서 나온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노조는 2400여 명 규모로 전체 직원의 10분의 1을 조합원으로 모았다. 파업이 실행될 경우 회사는 생산활동에 영향을 받는 일이 불가피하다.
이미 노조는 법적 절차를 거쳐 파업 등에 필요한 쟁의권을 확보해 놨다. 4~7일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활동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91.4%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또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가 14일 삼성디스플레이의 2021년 임금교섭에서 ‘조정중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김 공동위원장은 “회사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며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권리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노조원들은 “투쟁!”이란 구호로 호응했다.
이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무노조경영’을 철폐하겠다고 밝힌 뒤 거의 1년째 되는 날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6일 경영권 승계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하면서 “삼성의 노사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노사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삼성 측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뿌리깊다. 개인별 성과급 등을 빌미로 회사에서 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행사의 콘셉트인 ‘우산집회’도 이런 우려에서 비롯됐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모두 우산을 들었다. 공개적 노조활동을 꺼려 우산으로 얼굴을 가려야 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취지였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노조의 이번 집회에 관해 입장문을 내고 "노조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중앙노동위 조정기간 연장을 요청했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조만간 교섭이 재개돼 상호 이해와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임금협상을 마무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
▲ 18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2캠퍼스에서 열린 노조 집회 참가자들이 우산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