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시지탄이다. 진작 그렇게 나섰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넥슨을 비롯한 게임업계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자율공개를 확대하려는 행보를 보이는 점과 관련해 이렇게 평가했다.
자율공개 확대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이용자의 신뢰를 되찾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이용자들이 일정 확률로 구매한 가치보다 많거나 적은 아이템을 얻는 것을 말한다. 뽑기 형식 외에 강화와 합성 소재 등도 확률형 아이템으로 볼 수 있다.
게임사들은 뽑기 방식의 확률형 아이템 확률을 자율적으로 공개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여러 게임사의 게임에서 강화·합성을 둘러싼 확률 문제 등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 의원이 모든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게임산업진흥법 전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정치권에서도 이번 논란이 화두로 떠올랐다.
게임법 전부개정안의 취지는 무엇인지, 게임업계가 확률형 아이템 등 각종 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등을 이 의원에게 들어봤다.
-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게임법은 제정된 시 십몇 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정비된 적이 없다. ‘바다이야기’ 사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법안인 만큼 진흥의 탈을 썼지만 사실상 규제법이기도 하다. 게임이 비대면시대에 걸맞은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법체계를 정비하기 위해 발의했다.
전부개정안에는 전체 8장, 무려 92개나 되는 조문이 있다. 그만큼 개별 조문도 정밀하게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이용자‧학계‧개발자‧업계‧관련 종사자 등 게임과 연관된 사람들의 의견을 각각 경청하겠다.”
- 게임법 개정과 관련해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게임 개발에 편한 환경을 만들되 사행성 요소는 없도록 하고 이용자의 권익을 지키는 쪽으로 게임정책 방침을 세웠다.
이와 관련해 현재는 게임법 전부개정안의 심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이끄는 쪽에 방점을 두고 움직이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도 이 의원의 뒤를 이어 확률형 아이템에 관련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컴플리트 가챠’(여러 조각의 아이템을 모두 뽑아야 다른 아이템이 완성되는 방식)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의 게임 5종을 대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의뢰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해 이 의원은 같은 방향성 아래 확률형 아이템 문제에 접근하는 사람이라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이 의원은 “국산 게임을 적이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려는 것은 아니고 환부만 도려내면 된다”며 규제 움직임이 지나치게 확산되는 데는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0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게임업계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이 게임에 따라 계속 변동되는 만큼 공개하기 힘들다거나 영업비밀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자율규제 인증을 받은 게임이라면 확률형 아이템이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대중에게 확률형 아이템 결과물의 개별 구성비율 등이 공개된 데다 접근도 제한되지 않았다. 이 정보에 접근한 사람에게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거나 비밀 유지 약정을 체결하지도 않았다. 게임사가 정보공개에 이의를 제기한 적도 없다.
물론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게임업계와도 적극 소통해 타당한 요청은 받아들이겠다. 일회성이 아니라 여러 차례 만나면서 요청하는 내용을 빠짐없이 듣겠다.”
- 게임 이용자들이 확률형 아이템 논란 등과 관련해 ‘트럭 시위’에 나서고 있다.
“게임 이용자가 과거와 달리 점점 집단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응집해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국회는 학계나 업계의 목소리만 들어왔는데 이제 이용자의 목소리도 청취해야 한다.”
-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불거지면서 게임업계를 향한 부정적 시선도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확률형 아이템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결과는 게임의 본질이다. 문제는 확률형 아이템 모델이 ‘페이 투 윈’과 만났을 때다. 페이 투 윈은 캐릭터 능력치나 핵심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행위와 이것을 유도하는 게임구조를 말한다.
페이 투 윈 아이템을 확률형 아이템 모델로 획득하도록 강제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 문제다. 강한 페이 투 윈 아이템을 더욱 낮은 확률로 얻도록 유도하면서 이용자의 사행심도 자연스럽게 부추겨진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게임업계도 확률형 아이템 사업모델에만 매달릴 수 없다. 산업 전반의 발전과 소비자 친화적 수익모델의 개발에 성공해야 ‘게임은 문화이자 종합예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의원은 이전에는 게임과 크게 관련 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러나 확률형 아이템 논란의 전면에 서면서 그의 행보 역시 게임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그는 게임을 향해 일회성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게임에 관련된 법안과 정책 정비에 지속해서 정성을 쏟겠다고 했다.
- 게임 관련 현안에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대 국회 시절 게임 관련 질의를 하면서 관심이 생겼다. 게임의 문화·산업적 가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대면이 일상화된 시대에서는 게임의 영향력도 커지게 된다. 그래서 21대 국회 들어 게임과 e스포츠 관련 문제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 중국의 판호 재개 움직임이나 게임업계 연봉 인상 등 최근 흐름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문화체육관광부가 판호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여러 루트를 통해 중국에 문제제기를 하고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한적이나마 2020년 말 판호 발급이 성사된 것은 이 같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게임업계 연봉 인상은 비대면시대에 콘텐츠 수요가 급증하면서 게임사의 매출 증가로 이어진 결과로 본다. 게임업계가 직원들을 위한 노력을 보이는 만큼 이용자에게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길 바란다.”
- 게임업계 관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나는 게임을 무조건 규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2020년 발의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게임 등급분류 간소화법만 봐도 알 수 있다.
게임법 개정안에는 이용자가 제기하는 정당한 의견과 불만 처리 의무화, 중소·인디 게임사업자 지원, 해외 게임사의 국내 대리인 지정 등 다양한 진흥안도 들어갔다.
게임산업의 진흥을 지원하되 이용자를 보호하면서 업계가 건전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법안과 정책을 만들겠다. 함께 협력하길 바란다.”
이상헌 의원은 울산과학대를 졸업한 뒤 울산 흥사단 대표, 울산신문사 대표 등을 맡으면서 ‘독도 지킴이’ 활동을 벌였다.
2018년 6월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당선되면서 20대 국회에 입성했다. 민주당 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울산 북구에서 승리했다.
21대 총선에서도 지역구를 지키며 울산 북구의 첫 민주당 재선의원이 됐다. 21대 국회에서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