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꺼내든 행정수도 이전 이슈의 대응전략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김 위원장은 국면전환용이라며 일축했지만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충청지역 민심을 직접 자극하는 사안인 데다 여론이 긍정적 흐름을 보이자 통합당에서도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적극 참여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민주당이 제안한 '수도 이전 특별위원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행정수도 이전은 뜬금없는 논의"라며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문제와 인천 상수도 유충 문제, 집값 폭등 문제 등이 생기니까 이슈를 전환하기 위해 제기한 문제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생각도 주 원내대표와 비슷하다.
김 위원장은 23일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니까 급기야 내놓는 제안"이라며 "과연 정상적 정책인가 의심스럽다"고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김 위원장과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행정수도 논의 자체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힘을 쏟는 것으로 보인다.
주 원내대표가 23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당분간 의견 표명을 자제해줘야 민주당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당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당내에서부터 파열음이 나오고 있어 김 위원장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정진석 통합당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행정수도 이전으로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역 균형발전을 이뤄내려면 굳이 지금의 세종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분산의 효과를 더 넓은 인근 지역까지 확대하는 것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당내 최다선인 5선 의원으로 야당 몫 국회 부의장으로도 내정됐는데 통합당에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행정수도 완성보다 더 진전된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당내 대선주자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24일 “기왕에 논의를 하려면 이번엔 제대로 하자, 행정수도 완성 논의를 충청도지역 모두를 살리는 방향으로 확대하자”며 통합당이 행정수도 이전 논의를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당내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놓고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답답한 일일 것으로 보인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행정수도 이전을 꺼내든 20일까지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부동산 문제,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의혹 등 연이은 악재를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통합당이 제21대 총선에서 대패를 당한 이후 모처럼 민주당을 향해 제대로 공세를 펼칠 기회를 잡은 듯 했다.
김 위원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2021년 4월 치러지는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놓고 "현재로서는 유리한 것 같이 보인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며 '별 볼일 없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라 국민의 시선을 끌면서 정국 주도권이 다시 민주당에 넘어간 모양새가 돼버렸다.
김 위원장을 더욱 고민스럽게 만드는 대목은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무작정 반대하고 외면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점이다.
국가의 수도 기능을 옮긴다는 중대한 의제인 데다가 지방에서 지지를 받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지역인 충청권의 민심과 딱붙어 있는 사안이라 반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이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참여를 결정하기도 어렵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한번 논의가 시작되면 사실상 모든 정국 이슈를 덮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개헌 논의까지 이어지면 2021년 재보궐선거는 물론 2022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 이 이슈가 지속될 수 있다.
민주당 실정 비판은 물론이고 통합당의 혁신을 국민에게 알려 집권세력으로 인정받는 일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된다. 무엇보다 통합당이 아무리 잘 대응하더라도 압도적 원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논의의 주도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점도 곤혹스러운 지점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고민이 더 깊고 길어지게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