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수년째 적자를 감수하고 대규모 투자를 벌여온 전기차 배터리사업에서 성과를 확인하는 데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주요 국가의 전기차 관련한 정책이 바뀌고 배터리 원재료 가격도 하락하면서 삼성SDI가 마침내 전기차 배터리사업을 성장동력으로 키워낼 수 있는 사업환경이 갖춰지고 있다.
 
삼성SDI, 전기차배터리 '인고의 시간' 끝이 보인다

▲ 전영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11일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에 기대어 난립하던 중소 배터리업체들이 자금난을 겪기 시작하며 생산라인 가동을 점차 중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그동안 세계 전기차시장에서 선두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두고 현지 배터리업체들에 막대한 생산 투자금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100여개에 이르는 중국 배터리 상장기업 가운데 52개 업체가 지난해 순손실을 내며 사업을 운영하기 어려운 수준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 정부는 2019년부터 일정 주행거리를 확보한 전기차기업에만 배터리 보조금을 제공하는 새 정책을 내놓는 등 뒤늦게 부실 기업을 솎아내고 보조금 규모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삼성SDI가 이런 시장 변화에 수혜를 볼 수 있는 대표적 기업으로 꼽힌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를 핵심 성장동력으로 꼽고 수년 동안 연구개발과 공장 증설에 막대한 투자를 벌였다. 하지만 투자 성과를 확인하는 데 아직 고전하고 있다.

정 연구원은 삼성SDI가 전기차 배터리사업에서 지난해 영업손실 3030억 원을 본 데 이어 올해도 영업손실이 278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배터리업체의 난립으로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며 전기차 배터리의 수익성은 떨어진 한편 코발트 등 배터리 원재료의 공급 부족이 심각해져 배터리 원가 부담도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정책 변화로 배터리기업들이 경쟁에서 대거 이탈해 원재료 확보 경쟁이 완화되는 등 업황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광물 전문매체 마이닝닷컴에 따르면 최근 배터리 핵심 재료인 코발트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보였던 3월과 비교해 33% 이상 떨어졌다. 니켈과 리튬 등 다른 원재료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SDI는 과거에 원재료 가격 상승을 반영하지 못해 올해 상반기까지 전기차 배터리사업에서 큰 손실을 봤지만 이런 상황은 점차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배터리 가격에 반영하는 식으로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며 "원재료 가격도 하락하고 있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이 최근 시행한 환경 규제에 맞춰 완성차기업들이 전기차 생산 목표치를 높이고 있는 점도 유럽 매출 비중이 큰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사업 성장에 힘을 실을 수 있다.

중국 전기차 보조금 축소와 유럽의 전기차 보급 유도 등 세계 각국의 정책 변화로 삼성SDI가 전기차 배터리사업에서 매출과 수익성을 모두 높이기 유리한 시장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삼성SDI, 전기차배터리 '인고의 시간' 끝이 보인다

▲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솔루션.


정 연구원은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 확대는 전체 이익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며 "2019~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가파른 성장세가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SDI가 배터리 기술력을 앞세워 다양한 고객사의 수요에 대응할 능력을 갖춘 점도 사업 확대에 특히 유리한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삼성SDI는 영국 재규어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수주했는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각형 배터리가 아닌 소형 기기에 주로 쓰이는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원통형 배터리의 생산능력과 밀도를 높이는 기술에서 모두 가장 앞서 있다. 전기차시장으로 공급분야가 확대되면 다른 배터리기업과 차별화된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SDI의 원통형 배터리는 과거 중국 전기차업체와 미국 테슬라의 에너지저장장치(ESS)에 공급된 적이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